▲ 이학수 부회장(왼쪽), 윤종용 부회장 | ||
이학수 부회장과 윤종용 부회장 간의 미묘한 경쟁적 기류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업계 인사들은 “회장 비서실 출신인 이학수 부회장과 삼성전자 출신인 윤종용 부회장의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삼성은 비서실(구조본)의 권한이 다른 그룹들보다 크다. 때문에 ‘구조본 임원이 계열사 사장보다 더 힘이 좋다’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다. 실제로 구조본 임원급이 계열사 사장 부사장으로 나가는 경우는 흔하다. 하지만 돈 잘 버는 계열사일 경우 구조본에서도 함부로 ‘휘어잡지 못한다’는 게 정설이다. 특히나 삼성전자의 경우 90년대 중반 이후 기업내용이 초특급 슈퍼스타가 된 이후 어느 정도 자율경영권을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계열사처럼 구조본의 입김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이 점에서 삼성전자의 윤종용 부회장과 삼성전자 소속이지만 구조본의 실세이자 삼성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꼽히는 이학수 부회장의 미묘한 역학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삼성전자가 빛날수록, 이건희 회장의 ‘영도력’이 빛날수록 두 사람 관계는 더욱 주목받게 됐다. ‘비서실 말뚝’이라 불릴 정도로 이 회장의 오랜 가신으로 군림해온 이 부회장과 삼성전자 현업부서에서 생산부장 등을 거친 전형적인 ‘전자맨’ 윤 부회장의 태생적 한계는 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었다.
최근 이들의 갈등을 증폭시킨 원인은 S-LCD 사업으로 전해진다. S-LCD 사업 손실규모를 둘러싸고 책임공방이 벌어진 게 단초라는 것이다.
S-LCD는 삼성전자가 일본 소니와 각각 50% 지분을 투자해 만든 합작법인이다. S-LCD는 지난해 2136억 원의 손실을 입었는데 2004년 손실액이 255억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년 새 적자폭이 10배 가까이 뛰어오른 셈이다. 삼성과 소니는 7세대 LCD 라인에 이어 8세대 라인까지 S-LCD를 통해 합작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S-LCD 사업에 대한 회의론은 사업 초기단계에서부터 거론됐다고 한다. 삼성이 사업 초기 단계에서 합작한 적은 있지만 선도기술을 갖춘 상태에서 다른 누구와 합작을 한 적이 없다는 내부 문화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합작대상이 일본 소니라는 점이 논란거리였다는 전언이다. 삼성이 천신만고 끝에 일본 전자업계를 따라잡은 반면 소니는 침체 끝에 결국 ‘푸른 눈의 CEO’ 하워드 스트링거를 전문경영인으로 받아들이는 굴곡을 겪었다.
S-LCD 비판론자들은 ‘합작법인을 통해 소니가 세계무대에서 다시 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반면 삼성은 손실만 입었을 뿐 얻은 게 없다’는 목소리를 내는 중이라고 한다. 브라운관 시대의 패자 소니가 LCD 시대의 개막에 채 준비를 못 끝내고 있는데 삼성과의 합작으로 큰 부담 없이 LCD시대에 합류하고 ‘브라비아’라는 브랜드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누릴 기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론의 중심에 윤종용 부회장이 서 있다는 것이 최근 불거진 이학수-윤종용 알력다툼설의 출발점이다.
▲ S-LCD를 주도한 이재용 삼성 상무. | ||
소문처럼 윤 부회장이 S-LCD에 비판적 견해를 갖고 있다면 윤 부회장과 갈등국면에 있는 이 부회장 입장에선 ‘윤 부회장이 이 상무를 비난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일이다. 대기업 정보 담당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선 ‘이 부회장이 이 상무를 빌미로 윤 부회장을 밀어내려할 것’이란 소설 같은 이야기마저 오르내릴 정도다.
일부 재계 인사들은 S-LCD 비판론에 대해 “소니가 전세계적으로 가진 유통망을 삼성이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가가치가 높다”는 평을 내놓기도 한다. 삼성 측도 S-LCD의 지난해 손실액이 2136억 원이었던 것에 대해 ‘초기 투자비용이 커서 아직 손해가 날 뿐이며 호전되고 있다’는 식의 언급을 수차례 해온 바 있다.
그러나 S-LCD가 삼성에 주는 긍정적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이학수 부회장과 윤종용 부회장 간 갈등의 골이 얕아질 거라 보는 재계인사들은 많지 않다. 지난해 ‘삼성공화국’론이 불거지면서 삼성의 구조조정본부(구조본) 내 실세들끼리 한바탕 책임공방을 벌였던 바 있다. 홍보팀과 법무팀에 대한 비판론이 거셌지만 구조본을 총괄했던 이학수 부회장에 대한 논란도 심심치 않게 재계인사들 사이에 오르내렸다.
주요 재벌기업 정보팀 관계자들은 “올 초 삼성이 구조본을 축소개편하는 굴곡을 겪었지만 옛 구조본 조직의 수장이었던 이학수 부회장이 아직도 삼성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1966년 삼성에 입사해 초기부터 전자사업 발전을 주도해왔다고 자부하는 윤 부회장과 그를 따르는 인사들 입장에선 이 부회장 중심의 조직 체계에 부정적 정서를 품을 수도 있다는 지적.
재계인사들의 관심은 이학수-윤종용 알력설이 두 사람 간의 본격적인 힘겨루기로 치달을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재계인사는 “이건희-이재용 부자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커버린’ 이학수 부회장이 윤종용 부회장 밀어내기를 시도할 것이란 내용의 정보가 대기업 정보라인에 흘러 다닌다”고 밝힐 정도다.
한 재계 인사는 “이재용 상무의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면 전 회장을 모시던 가신들 중 일부만 남고 대부분 물러나는 것이 관례다. ‘포스트 이건희’시대를 대비한 내부 알력은 계속될 것”이라 평했다. 이재용 상무를 둘러싼 삼성 내부의 대규모 권력다툼이 벌어질 가능성도 열려있다는 것. 삼성은 기본적으로 오너 지배체제다. 오너를 능가하는 슈퍼스타는 있을 수 없는 것. 때문에 일각에선 내년초 삼성 정기 인사에서 파란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설왕설래하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