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달라는 것인데 대기업 정보를 개인의 과세정보라는 이유로 거절하고 있다.”(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민주통합당 김현미 의원 측)
“개인의 과세 정보는 어떤 경우에도 공개될 수 없고 이는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국세청 관계자)
국감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국회의원들과 국세청이 자료 공개 여부를 놓고 조용하지만 뜨거운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해마다 국감 시즌이면 항상 벌어지는 일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그 강도가 사뭇 다르다. 의원들은 “세무조사 자료를 신청해서 한 번도 받아들여진 적이 없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는 상태. 반면 국세청도 “의정활동을 이유로 내세우며 무조건적으로 달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맞받고 있다.
더구나 이번에 공방전의 핵심은 다름 아닌 삼성전자 세무조사 자료다. 기재위 소속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이번 국감에서 삼성전자의 탈세 의혹을 주요 쟁점 중 하나로 내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지난해 7월부터 국세청이 실시해 마무리한 삼성전자 세무조사 내역에 대한 자료 요청을 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7년 정기조사에 이어 지난해 7월부터 4년 만에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받고 사상 최대인 4600억 원대의 추징금을 통보받은 바 있다. 삼성전자는 당시 강하게 반발했지만 일단 과징금을 납부하고 이의제기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국세청은 자료 공개는 법률 위반 사항이라며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재위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민주통합당 김현미 의원실 측은 “국세청에 삼성전자 세무조사 내역에 대한 자료 요구를 했으나 개인의 과세 조항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국감을 위한 국회의 자료 요청에 국세청이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국회 내에서는 “국세청이 삼성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국세청은 이에 대해 “삼성을 편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세 조항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법률 위반”이라고 밝혔다. 국세청 기획재정담당관실 관계자는 “현행 국세기본법 제81조 13항에 따르면 세무공무원은 업무상 취득한 과세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며 “더구나 개별과세 정보는 기밀에 해당된다. 아무리 국회에서 원한다고 하더라도 특정 개인의 정보를 제공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현행 법안에 명시되어 있듯이 개별 납세자의 인적사항이 제거된 전수 자료나 통계자료에 대해서는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국세청 조사기획과 최종환 서기관은 “세무조사 사실 자체도 확인해주지 않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례도 있었다. 만약 해당 기업에서 세무내역을 공개한 것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라도 제기하면 그걸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국세청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 기재위에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다. 한 기재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의 과세정보를 개인의 것으로 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국세청에서 의도적으로 자료를 주지 않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해당 부서 담당자에 대한 고발조치를 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 차원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공론화가 시작되고 있다. 국세청에 대한 자료요구 절차부터 간소화하는 국세기본법 개정 법률안이 최근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민주통합당 측은 “현행 국세기본법은 국회 소관 상임위의 의결이 있어야 자료를 제공하도록 되어있어 국회의원이 직접 요구할 경우 이 조항을 근거로 거부하는 실정이다. 매번 자료요구를 위해 상임위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국감, 국정조사 또는 인사 청문 등을 위해 요구하는 경우’ 자료제공을 하도록 하는 내용을 추가한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국감이 얼마 남지 않았고 국세청이 완강하기에 삼성전자 세무조사 자료가 공개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러나 공개 여부를 둘러싼 공방전 자체가 국감 쟁점으로 부각될 경우 정치권의 거센 재벌개혁의 불똥이 국세청으로 튀고 중간에 낀 삼성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드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함께 국감 증인 채택 논의도 한창 진행되고 있어 재계의 긴장감은 더해지고 있다. 경제상임위 소속 야당 의원들 사이에선 이미 “재벌 총수를 증인으로 출석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높은 상황이다. 기재위뿐 아니라 정무위, 환노위 등에서도 증인 채택 여부를 두고 여야 간 신경전이 치열하다. 정무위 소속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재벌 총수를 포함해 현재 각 의원실에서 신청한 증인 수만 100명을 훌쩍 넘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국감장에 불려올 증인 신청 명단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은 물론 정몽구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통합당 의원실 관계자는 “여야에서 신청한 증인수가 워낙 많아 조율하는 중이다. 대기업 총수의 경우 공감대가 높기 때문에 그 수가 더 많아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