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강성 지지층 영향력’ 확대, 국민의힘 ‘윤심 물갈이 공천’ 우려…3지대 빅텐트 성사 여부도 변수
“총선 공천은 각 지역 및 비례대표 후보자를 선정해 정당 내부 질서를 확립하는 절차다. 공천이 미흡하면 정당 내부 단결력이 떨어지고 조직력이 약해질 수 있다. 내부적으로 공정하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본선거에 가서 상대 후보들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도 중요하다. 공천이든 본선거든 1등만 살아남기 때문에 1등들 사이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후보를 고를 수 있는지 여부가 가장 큰 과제다.”
한 선거 전문가는 총선 공천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이런 요소들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처럼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일”이라면서 “본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준비 단계가 바로 공천”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대선은 전국 유권자 표를 단순 계산하면 되지만, 총선은 각 지역구별로 승자가 나온다”면서 “이론상으로만 따져보면 지역구별로 1표씩, 총 253표가 앞서면 지역구를 싹쓸이할 수 있다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단순계산이지만, 굉장히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면서 “각 지역구별 정치 지정학을 고려해 전국적으로 힘 조절을 잘하는 것이 총선 승리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통상적인 지역구 선거에선 정부에 대한 호감도, 각 정당 지지율 등 ‘바람’이라고 불리는 요소가 90% 정도 영향을 미친다”면서 “인물론이 10%를 차지하는데, 그 10%가 승부를 가를 수 있고 그 10%에 대한 전국적인 판을 까는 절차가 공천”이라고 했다.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은 본격적인 공천 절차에 돌입했다. 제22대 총선 공천은 그 어느 때보다 디테일이 요구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정치 쇄신 요구가 높고, 내부적으론 계파 간 힘겨루기가 워낙 치열해 시스템 공천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다. 정당 지도부는 각자 준비한 ‘혁신 카드’를 내밀며 기선 제압에 나섰다. 공천 실무를 총괄하는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는 내부 기준에 따라 전국 정치 지도에 ‘최선의 수’를 포진하려는 절차에 착수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서로 각자 다른 색깔을 가진 공관위원장을 선임했다. ‘고려대 교수’ 출신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두 공관위원장은 전공이 다르다. 먼저 민주당 공관위원장은 1952년생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다. 전공은 정치학이다. 경북 경주 출생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학계에 몸담은 그는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등에서 핵심 자문가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2024년 1월 1일 임 위원장이 민주당 공관위원장으로 발탁됐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1월 5일 민주당은 15명 규모 공관위를 발족했고, 1월 12일 1차 회의를 진행했다. 국민의힘보다 한 발 빠르게 공관위를 출범하며 총선 채비에 돌입했다. 조정식 사무총장, 김병기 수석사무부총장, 이재정 전국여성위원장이 당내 공천위원으로 선임됐다. 현역 의원 3명을 제외한 나머지 12명은 모두 외부 인사로 채웠다.
국민의힘은 1960년생 정영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공관위원장으로 내세웠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대법원 판사까지 지냈던 중량감 있는 법조인 출신이다. 1월 5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정 위원장을 공관위원장으로 내정했다고 밝혔다. 1월 11일 공천관리위원 인선을 마치면서 공관위가 발족했다.
국민의힘은 공관위원을 10명 선임했다. ‘친윤’으로 인재영입위원장직을 겸하고 있는 이철규 의원이 공관위에도 합류했다. 이를 놓고 정가에선 뒷말이 무성하게 나오기도 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사무총장과 이종성 의원이 당내 인사로 공관위원 직을 수행하게 됐다. 나머지 7명은 외부인사로 채워졌다.
거대 양당 ‘공천 사령부’ 구성을 놓고 정가에선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한 야권 관계자는 “정치학자 출신인 임혁백 교수가 공관위원장으로 나서면서 민주당 정체성을 기반으로 정치적 유연성까지 고려한 공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출했다. 다만 비명계 일각에선 임 위원장이 이재명 대선캠프에서 활동했던 이력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정영환 공관위원장이 법관 출신이다 보니, 공천 시스템을 혁신하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공정성 시비 및 후보 도덕성 등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심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비윤계를 비롯한 여권 내부에선 ‘또 법조인이냐’는 견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검사 출신 한동훈 비대위원장, 판사 출신의 장동혁 사무총장에 이어 또 다시 판사 출신이 공관위원장으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공관위 구성 콘셉트로 민주당이 ‘유연성’, 국민의힘이 ‘공정성’을 화두로 던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각 정당이 국회의원 후보자를 선정하는 기준과 원칙은 공천룰로 표면화하는 양상이다. 민주당은 ‘국민참여공천’을 제시했다. 여론조사 등을 통해 국민이 제시한 평가 기준을 공천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1월 18일 박희정 민주당 공관위 공동대변인 브리핑에 따르면 당헌 당규 정체성 15%, 기여도 10%, 의정활동 능력 10%, 도덕성 15%, 면접 10% 등 60%를 차지하는 평가 항목을 정량화할 전망이다. 여기에 여론조사 40%를 반영하는 방식이다.
임혁백 공관위원장은 국민참여공천과 관련해 “국민이 공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공천 기준을 정하는 것”이라면서 “여론조사, 유튜브, 홈페이지 등을 통해 약 50만 국민 의견을 물어 공천 기준을 정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참여공천과 관련해 당 내부에선 ‘개딸’ 등 조직력이 강한 강성지지층 영향력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민주당 공관위 공동대변인 김병기 의원은 “강성 지지층 의견이 과다 반영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채점을 함부로 할 수 없도록 계량화할 것”이라면서 “투명성과 합리성을 강화하면 그 점을 방지하고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도 공천룰을 발표했다. 국민의힘은 여론조사 반영 방식에 지역별 차이를 뒀다. 수도권, 충청권, 호남 등 승부처 혹은 험지로 꼽히는 지역에선 당원 20%, 일반시민 80% 비율로 여론조사를 반영하기로 했다. 당내에선 민주당 지지자의 고의적 역선택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여기에 동일지역구 3선 이상 중진 의원 및 현역 의원 하위 평가 30%에 대한 감점이 반영될 전망이다. 정치신인 및 청년에겐 각각 7%와 15% 가산점이 주어진다. 사실상 현역 물갈이에 가까운 비율이다. 이 때문에 당내 중진들이 술렁이는 기류다. 정영환 국민의힘 공관위원장은 “실제 컷오프 규모는 10%보다 더 나올 수 있다”면서 대폭 물갈이 가능성을 숨기지 않았다.
여기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나설 것이라고 소개하거나, 서울 마포을 지역구에 ‘조국흑서’ 저자 김경율 국민의힘 비대위원이 출마한다고 소개하며 공격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국민의힘이 ‘시스템 공천’을 천명한 상황에서 한 위원장 입맛에 따라 단수공천, 전략공천이 공공연하게 언급되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비윤계와 영남 중진들 사이에선 한 위원장이 ‘정치 혁신’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친윤계 및 대통령실 출신, 검사 출신 등을 전면 포진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비윤계 의원은 “공천 룰 발표 후 한 위원장이 김경율 비대위원을 언급하면서 현역 의원들이 비상 모드다. 현역 의원을 날린 자리에 친윤을 공천하겠다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내세운 ‘국민참여공천’을 향해 날을 세웠다. 윤희석 국민의힘 선임대변인은 “(민주당이) 국민참여공천이라는 포장지를 씌웠지만, 이 역시 강성 지지층을 공천 과정에 포함해 ‘친명 결사 옹위대’를 결성하겠다는 얕은 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하태경 의원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친명횡재, 비명횡사냐”고 민주당 공천시스템을 비판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내건 ‘시스템 공천’은 윤심 공천이라며 맞받아쳤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시스템 공천이 윤심 공천이냐”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스스로 세웠던 바지 대표마저 내쫓고 측근을 비대위원장에 앉히더니 공천을 떡 주무르듯이 하느냐”고 비판했다. 권 대변인은 “이럴 거면 시스템 공천이라는 말을 애초부터 꺼내지 말았어야 한다”면서 “어떻게 포장해도 결국 윤심 공천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국민을 기만한 걸 사과하라”고 했다.
거대 양당이 상대방을 향해 ‘특정계파를 위한 공천’이라는 비판 카운터를 주고받는 양상이다. 거대 양당 주류가 공천을 좌지우지할 것이란 관측이 팽배해지면서 후보들 움직임도 분주한 모습이다. 지역의 예비 후보들은 ‘친윤’ 혹은 ‘친명’ 색깔이 짙은 ‘내부 공관위원’에 줄을 댈 수 있는 루트를 찾아보느라 분주한 기류가 포착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진윤’ 혹은 ‘진명’이라 불리는 막후 실세가 공천 로드맵을 어떻게 설계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역 정치인들의 궁금증도 증폭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런 가운데, 거대 양당이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있다. 바로 제3지대 빅텐트다. 이번 총선에선 ‘좌우합작’을 표방한 제3지대 정당이 등장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필두로 제3지대가 뭉칠 경우를 계산하면 공천방정식은 더 복잡해진다.
앞서의 정치권 관계자는 “거대 양당 공천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공천에 불복하고 떨어져 나오는 인물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면서 “지역별로 각자 다른 시나리오 낙수효과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은데, 진영 정치 타파를 명분으로 내세운 제3지대 정당이 그 낙수를 받아낼 그릇이 된다면 거대 양당이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고 점쳤다.
이미 민주당에서는 공직후보자 검증위원회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최성 전 고양시장 등을 비롯해 설주완 전 민주당 법률위 부위원장 등이 제3지대행을 결정한 상황이다. 공천이 시작되면, 거대 양당에서 ‘탈락자’들의 이탈 움직임이 가속화 돼 총선 정국 태풍의 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이번 총선 공천에서 민주당은 ‘친명계’ 여부가 이슈로 부각될 것이고, 국민의힘은 ‘친윤계’인지 혹은 ‘검사 출신’인지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라면서 “각 당 주류세력 공천 통과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당내 갈등은 심화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채 교수는 “아마 공천 과정에 따라 거대 양당을 이탈해 제3지대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면서 “양당 공천 이탈자가 제3지대로 모이는 현상이 펼쳐질 수 있다”고 했다. 채 교수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공천 경쟁으로 인해 정치권 전반에 걸쳐 네거티브 캠페인이 수위가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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