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종합병원의 VIP 특실 내부. 드넓은 공간에 응접세트가 갖춰져 있는 등 일반 병실과 크게 다른 모습이다. VIP 특실은 호텔급 시설 외 전담 경호원, 전담 셰프 등 호텔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진다(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
국내 유명 병원들은 저마다 ‘개인 맞춤 요리사’ 등 독특한 고급화 전략을 내세우며 VIP 특실 경쟁에 나서고 있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병원 측에서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환자 유치를 하고 싶어 하는 VIP 특실이지만 유명인사가 아닌 일반인들은 사전에 특실 진입이 차단되는 경우도 있다. 병원마다 VIP 특실은 10여 개 이내로 한정돼 있고 갑자기 들이닥칠지 모를 전직 대통령이나 기업 총수들을 위해 최상위 특실은 예의상 비워놓는다는 것이다.
“아프면 다 똑같은 인간이라지만 VIP 특실을 이용하는 인사들한테만큼은 이 말이 비껴 가는 것 같다.”
7년차 VIP실 전담 베테랑 수간호사인 이 아무개 씨의 설명이다.
이 간호사에 따르면 과거엔 주로 유명 인사들이 병원 특실에서 주로 안락한 요양을 하다 퇴원했다면 최근에는 ‘특별한’ 사정 때문에 입실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반영하듯 몇몇 병원 VIP 특실에는 6~7명이 참석할 수 있는 대리석 인테리어의 컨퍼런스룸과 주방 등이 갖춰져 있다. 환자가 요양을 해야 하는 병실에 고급 회의실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 높으신 분들에게 VIP 특실은 병을 고치는 곳이 아니라 ‘양형’을 고치는 곳이라는 말이 있다. 구치소에 들어갔다가 질병을 호소하며 VIP 특실에 입원한 후 특실 내 컨퍼런스 룸에서 전담 변호사들을 만나 다음 재판을 위한 전략을 세운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전문의 김 아무개 씨는 한 유명 정치인 A 씨의 일화를 소개했다. A 씨는 3선 국회의원으로 권력형 비리로 구치소 수감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원인 모를 통증이 있다고 호소하는 바람에 긴급히 서울의 한 병원 VIP 특실로 이송됐다.
당시 A 씨를 담당했던 김 전문의는 “이런 사람들 중 일부는 통증은 호소하는데 원인은 발견되지 않는 식이다. 구치소에서 나오고 싶어 별의별 수를 다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얼마나 무례하던지 의사들을 아랫사람 다루듯이 했다”며 불쾌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의사들을 세워두고 컨퍼런스 룸에서 변호사들과 회의를 하는 일은 예사였다. A 씨의 경우 3~4일 정도 머무르다 서류가 어느 정도 준비되자 모든 검사를 거부하고 자의 퇴원했다. 애초부터 질병이 없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동석한 또 다른 전문의는 “예전에 ○○빌딩 회장도 이런 식이었다”고 덧붙였다.
A 씨와 같은 거물급 정치인들이 VIP 특실에 입원하면 해당 층 전체가 비상이 걸린다. 20여 명의 수행원들이 VIP 특실 옆방인 B급 VIP실 3~4개를 잡아 놓고 수시로 ‘주인’을 모시는 통에 병원 분위기가 삼엄해진다는 것이다.
재벌도 VIP 특실을 이용하는 단골손님들이다. 수련의 시절 전문의들이 맡은 재벌들을 상대해 봤다는 이 아무개 씨는 “연차가 높은 전문의들이 주로 재벌 VIP 환자들을 맡는데 그네들의 세상은 너무나 별나서 같이 지내다보면 의사인 나조차도 정신이 이상해질 지경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전문의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재벌들의 ‘이상한’ 병원 생활을 귀띔했다. 그는 “언론에서만 보던 그룹 총수, 1세대 재벌, 5공 시절 잘나갔던 퇴역 장군 등 연로한 나이의 거물 인사들이 요양차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함께 데리고 오는 정체불명의 여인들의 실체를 알면 다들 깜짝 놀랄 것이다. 정체불명의 여인들은 대개 20~25세 정도의 젊은 여성들로 웬만한 연예인 급 이상의 미모를 가졌다”고 말한다.
이 전문의는 “환자가 휠체어를 타고 있든 누워있든지 간에 항시 옆에서 손을 꼭 부여잡고 도통 놓고 있지를 않아서 ‘할아버지를 정말 사랑하는 손녀딸인가보다’ 싶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돈을 주고 산 ‘여자친구’였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털어놨다.
그에 따르면 유명 재벌급 환자에게 이른바 ‘몸 공양(供養)’을 위한 젊은 여성을 중개해주는 마담뚜가 존재하고, 이들은 VIP 환자들의 취향에 맞춰 연예인, 유흥업소 종사자들, 모델 출신 등을 소개해준다고 한다. VIP 중에는 고령의 환자들이 많아 종종 미모의 40대 여성이 투입되기도 한다.
또한 이런 여성은 매일 아침 환자 가족에게 음악 감상, 산책 등 환자와의 할 일을 보고해야 한다. 이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는 이 전문의는 “가족들이 그 여성을 부하 직원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떤 귀부인은 자기 남편 옆에 붙어 있는 젊은 여성에게 ‘회장님 몸 공양 잘해드려라’라는 말까지 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남편이 젊은 처자의 기를 받아 회복할 수 있으면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는 투였다. 일반인의 기준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한번은 조연 전문으로 유명한 연예인 B 씨(여)가 VIP실 수간호사들에게 “외부적으로 인기 있는 톱스타보다 나처럼 재벌들에게 사랑받는 ‘보좌진’들이 소속사에서 더 대접받는다”고 자랑을 해댔다는 것이다. 당시 그 얘기를 직접 들었다는 한 수간호사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연예인이 최근 모 토크쇼에 나와서 자신을 둘러싼 소문이 억울하다며 우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황당했다. 모 총수가 입원했을 때 옆에서 손 잡아주고 자리를 지키는 것을 똑똑히 봤다. 예쁘니까 세상이 다 속아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몸 공양 여성들을 직접 목격했다는 의료계 관계자들을 적잖게 만날 수 있었지만 이런 여성들이 실제로 존재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직접 유명 간병 업체 4곳에 찾아가 “큰 어르신이 ○○ 병원 VVIP 실에 입원하실 예정인데 간병해줄 아가씨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이들 업체 중 2곳에서는 “지금은 마땅한 처자가 없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국내 빅5 병원 일부 관계자는 “몸 공양 도우미는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다. 이런 질문에 답변하는 것 자체가 병원 이미지에 손상이 될 것 같다. 대부분의 VIP 특실은 특실답게 환자들이 철저한 보안 속에서 건전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