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4일 현대캐피탈은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공동으로 HK상호저축은행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HK상호저축은행이 결의한 제3자 배정 방식 유상증자에 MBK파트너스가 802억 원(지분 39.9%), 현대캐피탈이 372억 원(지분 18.5%)을 투자해 지분 58.4%를 가진 대주주가 되는 것이다.
MBK파트너스가 단순 지분투자자를 자임한 데 반해, 현대캐피탈은 HK상호저축은행의 경영 실무를 담당하게 된다.
현대캐피탈은 현대카드와 함께 현대자동차그룹 금융업의 양대 축이다. 법인은 다르지만 정태영 사장이 두 회사의 공동대표를 맡아 금융부문을 지휘하고 있다. 정 사장은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둘째 사위로 기아자동차 사장 출신이다.
현대캐피탈은 현대자동차 할부판매에 대한 여신업무를 맡고 있다. HK상호저축은행을 인수하게 되면 여신업무 외에 수신업무도 가능해져 종합적인 금융업무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단순 짐작도 가능하다. 1금융권 은행은 공정거래법상 인수가 불가능하지만 제약이 없는 상호저축은행을 인수해 손쉽게 여·수신 업무도 가능하게 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상호저축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캐피탈이 수신기능이 없어 저축은행을 인수하면 시너지효과가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겠지만, 금융사가 금융사를 인수했을 때는 사세확장이라는 의미도 클 것”이라고 조심스런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자금조달원이 다양해지고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는 얘기다. 소비자금융 부문으로 대부업무를 하는 현대캐피탈이 역시 서민금융 시장을 상대하는 상호저축은행 인수가 그럴 듯한 시나리오로 떠오르는 것이다.
현대캐피탈은 2004년 미국 GE그룹의 소비자금융 부문에 1조 원을 투자했으며 GE캐피탈(현재 GE머니)은 현대카드의 지분 48%를 인수하면서 GE 금융부문과 제휴를 맺고 있다.
합작을 전후해 현대캐피탈은 전세담보대출 직장인대출 등 상품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소비자 금융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GE 소비자금융 부문이 현대캐피탈과 통합되면서 GE는 기업금융 부문만 남았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GE와 합작하면서 현대캐피탈이 소비자 금융시장에 대한 GE머니의 영업노하우에 대해 상당한 프리미엄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소비자금융의 한국브랜드였던 GE머니는 대부업 쪽에 상당한 노하우를 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일각에선 GE와의 합작 이후 현대캐피탈의 소액대출 광고가 국내에 진출한 일본계 대부업체의 광고만큼이나 눈에 많이 띄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때문에 현대캐피탈이 ‘고리대금업’이라는 여론 때문에 제대로 공략 못하는 사이 일본계 대부업체가 판을 치고 있는 대부시장에 어떤 식으로든 치고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대기업이 고리대금업까지 하느냐’는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기 전에는 섣불리 대들기 힘든 점도 있다.
하지만 HK상호저축은행 인수 건에 대해 현대캐피탈 측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산업자본의 금융자본화’로 보는 시각에 대해선 더욱 부정적이다.
HK상호저축은행을 인수하더라도 상호저축은행을 자금조달 창구로 이용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법적으로도 금융기관이 대주주에 대여해줄 수 있는 한도가 조달자금의 20% 이내로 묶여 있는 등 제도적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HK상호저축은행 경영참여는 금융기관에 대한 경영컨설팅을 시도하는 첫 케이스로 볼 수 있다는 것이 현대캐피탈의 설명이다. “금융기관으로서는 최초로 국내외 펀드가 한국 금융 회사에 투자할 경우 마케팅과 리스크 관리 등 금융사업에 대한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는 것을 신규사업으로 준비해 왔고, MBK파트너스의 이번 HK상호저축은행 인수가 그 첫 번째 사례”라는 것.
현대캐피탈·현대카드가 대규모 적자를 탈출해 지난해부터 흑자로 돌아선 위기관리 경험을 살리면서 기업체에 대한 컨설팅 업무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는 2004년 각각 4067억 원, 2183억 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가 2005년부터 적자를 탈출해 4041억 원, 637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현대캐피탈 2412억 원, 현대카드 770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연말까지 두 회사 전체 6000억 원의 순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경영컨설팅 첫 사례가 왜 HK상호저축은행이 된 것일까. 현대캐피탈 측은 “재무구조가 좋고 수익도 많이 나서 몸값이 높은 회사보다는 경영이 어려운 회사에 투자를 해서 정상화시키면 투자자로서의 수익은 더 높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HK상호저축은행은 자산규모 2조 원, 지점 수는 업계에서 가장 많은 13개를 거느리고 있다. 올해 초까지 업계 1위였지만 경영권 분쟁 등 파행을 거치며 솔로몬상호저축은행에 1위를 내주었고, 최근에는 제일상호저축은행에도 뒤진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최근 1, 2대 주주 간의 법적 분쟁이 끝나가고 있고, 경영권이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는 상태다. 자기자본비율이 낮아 잠재부실이 있었지만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비율이 3.3%에서 11%대로 크게 올라가 업계 최고치가 될 것이라고 한다.
한편 현대자동차그룹 측도 이번 HK상호저축은행 인수와 관련해 그룹의 금융업 확대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입장이다. 현대자동차 측은 “단순하게 그런 시각도 존재할 수 있지만 과거 GE와의 제휴처럼 대규모 투자도 아니고, 그룹 전체 규모에 비해서는 작은 부분이기 때문에 금융자본 확대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다”라고 입장을 전하고 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