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의 현대저축은행 본점.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전국민주금융노동조합 현대증권지부(위원장 민경윤)는 지난 26일 소식지를 통해 지난해 11월 현대저축은행(옛 대영상호저축은행) 인수 과정이 부실투성이였다고 성토했다. “인수하는 데 실사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며 “올해 안에 유상증자를 하지 않으면 파산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현대증권이 현대저축은행을 사들인 것은 지난해 11월. 현대증권은 당시 “증권업무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는 뜻에서 대영상호저축은행을 960억 원에 인수해 현대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불과 5개월 만인 지난 4월 현대증권은 추가로 드러난 부실을 털기 위해 보통주 1000만 주(500억 원)를 출자해 현대저축은행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현대증권 노조는 “이마저도 부족해 추가로 1000억 원의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노조 관계자는 “설사 현대증권이 1000억 원을 출자한다 해도 현대저축은행의 부실 규모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추가로 2000억 원을 더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곧바로 유상증자 저지 투쟁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대증권 측은 “인수 과정에서 실사를 했으며 유상증자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가 아무것도 없다”고 부인했다.
노조와 사측의 공방만 봐도 현대저축은행이 현대증권, 나아가 현대그룹에 얼마나 큰 짐이 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인수 당시 현대증권이 기대한 시너지효과는커녕 애물단지가 된 형국이다.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할 입장이다.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한 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속앓이를 하고 있는 셈.
▲ 서울저축은행 본점이 입주해 있는 서울 강남구 학동로 POBA강남타워.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그럼에도 서울저축은행의 재무 상태가 앞으로도 크게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웅진그룹으로서는 뼈아픈 부분이다. 메워도 메워도 서울저축은행의 부실이 계속 터져 나왔다. 결국 자본잠식률이 무려 96%에 이르러 상장폐지 위기에 처했다. 업계에서는 서울저축은행의 상폐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웅진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초래하는 데 서울저축은행도 큰 원인이 됐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기업가치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인수한 극동건설이 휘청거리고,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태양광사업이 타격을 받은 것이지만 서울저축은행을 실제 금액 700억 원가량을 투입해 인수한 것과 이후 약 3000억 원을 더 쏟아 부은 것도 웅진그룹 유동성 위기에 큰 원인이 된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금융업을 전문으로 하는 금융지주사들도 부실 저축은행 인수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지경이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4대 대형 금융지주인 국민·신한·우리·하나지주가 인수한 저축은행 중 우리금융저축은행을 제외하고 모두 올해 상반기에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일하게 우리금융저축은행만 1억 4000만 원의 이익을 기록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워낙 부실한 저축은행을 인수했기에 정상화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지주계열 저축은행들은 자본적정성 면에서 모두 양호한 수준을 보여 현대저축은행과 서울저축은행의 예와 구별된다. 그러나 대형 금융지주마저 저축은행을 꾸려나가기가 쉽지 않은 터에 일반 기업이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해 정상화시키고 시너지 효과를 보기는 더 어려워 보인다.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한 기업들의 속앓이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