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정부에서는 전·현직 경제부처 수장들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켰다. 왼쪽부터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 김중수 한은 총재, 최중경 전 지경부 장관. 일요신문DB |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멘토’로 알려진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이다. 이명박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강만수 회장은 장관 취임 직후 기재부 출입기자들과 오찬을 함께하면서 “정부가 환율정책을 주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해 시장을 뒤집어 놓았다.
법률규정상 외환정책은 정부가 책임지되 한은이 위임받아 외환업무를 운용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2004년에 정부가 환율방어를 하려고 파생상품에 손을 댔다가 2조 원의 손실을 낸 뒤 환율정책을 사실상 한은이 주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강만수 회장의 발언은 한은으로부터 환율정책을 빼앗아오겠다는 것으로 해석돼 시장을 혼란에 빠뜨린 것이다.
고환율 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셀 때는 기자간담회에서 “환율 상승이 수출에 큰 효과를 주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에게 환율 하락은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경상수지 관리가 거시정책의 최우선 목표”라고 말해 환율 상승을 더욱 부추겼다. 강만수 회장은 약속했던 기자간담회 시간이 넘어가는 것에 아랑곳없이 자신의 설명을 계속하는 스타일이여서 당시 기재부 간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들이 그대로 기사화되고 논란이 거듭되자 강만수 회장은 ‘1진 기자실’을 부활시키는 방안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기재부에는 1진 기자실과 2진 기자실이 따로 있었다. 당시 장관과 차관 등은 각 언론사 고참급 기자가 상주하는 1진 기자실을 찾아가 기사를 쓰지 않는 조건으로 속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1진 기자실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기자실 통폐합 과정에서 사라졌다. 강만수 회장은 논란되는 발언이 기사화되지 않도록 간부들과 기자들 간 비밀(?)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1진 기자실을 다시 만들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안에 대해 기자들이 기자실 체제가 이미 변화한 만큼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없던 일이 됐다.
강만수 회장의 설화는 1진 기자실을 만든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강만수 회장은 2008년 11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종합부동산세와 관련해 “헌법재판소와 접촉해본 결과, 일부 위헌 판결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대별 합산은 위헌으로 갈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해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정부가 헌재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 탓이었다. 기재부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말실수라며 방어막을 쳤지만 야당에서는 해임건의안까지 내놓을 정도로 일이 커졌다. 논란이 지속되면서 결국 강만수 회장은 기재부 장관에서 물러나고 윤증현 장관이 그 뒤를 이었다.
강만수 회장 다음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발언을 많이 한 이는 김중수 한은 총재다. 김중수 총재는 앞에서 언급한 ‘야근 축복론’외에 지난 6월 한은 62주년 창립기념식에서 “2류이면서 1류 조직을 바라지 말라”고 한은 직원들을 독려했다가 논란만 초래했다. 김 총재는 이명박 정부 초대 경제수석을 지냈지만, 쇠고기 파동이 벌어지자 자진사퇴 형식으로 경질됐다가 한 달도 안 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특임대사로 부활했을 정도로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 깊은 인물이다.
그는 한은 총재로 내정된 2010년 3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물가와 성장 가운데 최종선택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다.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해 한은 독립성 논란에 불을 붙였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 경제구조를 개혁했던 국제통화기금(IMF)이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했던 것이 한은의 독립이다. 그만큼 한은은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가지고 물가안정(즉 화폐가치 안정)을 추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김중수 총재의 발언 탓인지는 몰라도 기준금리를 정하는 금융통화위원이 1명 모자란 상태가 1년 이상 지속됐고, 지난해 고물가에도 기준금리 인상시기를 놓치면서 시장의 불신을 자초했다. 한은 직원들의 불신이 깊은 탓인지 ‘김중수 총재가 OECD 대사 때 아끼던 직원들은 자신이 키우던 개를 잘 돌보던 사람들이었다’라는 식의 악의적 이야기마저 한은 내부에서 돌 정도다. 하지만 김중수 총재는 임기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실언 때문에 자리를 보존 못할 일은 없다.
지난해 정전사태로 물러난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강만수 회장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연이 닿아 있다. 고환율 논란 당시 기재부 차관자리에서 물러났지만 필리핀 대사에 임명됐고, 이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최중경 전 장관은 지경부 장관 당시 기름값과 동반성장을 놓고 여러 차례 설화를 불러일으켰다. 기름값이 폭등할 때 “정유사들이 국민경제상황, 물가가 어려운 상황을 생각해서 좋은 결정을 해달라”고 말해 정유사들의 기름값 자진(?) 인하를 끌어냈고, 정운찬 전 동반성장위원장과는 수차례 논쟁을 주고받았다.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은 설화를 일으켰다가 비판을 받고 있는데 반해 이명박 대통령과 거리가 멀었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별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윤증현 전 장관은 강만수 회장이 기재부 장관에서 물러난 2009년 2월 경제정책 사령탑을 맡아 2년 4개월간 한국 경제를 이끌어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1974년 9월∼1978년 12월) 이후 최장수 장관에 이름을 올렸다.
윤 장관은 국회의원들로부터 정책이 오락가락한다는 질책을 받았을 때 “그래서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하지 않느냐”고 받아쳤지만 설화가 되기는커녕 공격하던 국회의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시장 신뢰가 높고 실언이 없는 장관이다 보니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주눅이 든 셈이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