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 증권사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거래를 자주 유발시켜 과도한 선취수수료를 취하고 있다. 지하철 플랫폼과 여의도 증권사 야경사진 합성. |
증권사 지점의 가장 큰 수익은 거래와 관련된 수수료다. 투자자가 수익이 나건 안 나건 투자금액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챙긴다. 그래서 거래를 자주 유발시킨다. 올랐으니 팔라, 떨어졌으니 손절매하라는 식이다. 이러다 보니 주가 변동성이 적은 대형주보다는 중소형주가 주로 추천된다. 겉으로는 장기투자를 권하지만, 사실 지점 직원들로서 고객들이 한 종목에 장기투자만 한다면 낭패다.
한 증권사 직원은 “월급 가운데 기본급보다 성과급의 비중이 더 크다. 매달 일정금액 이상의 약정을 맺지 못하면 성과급을 받을 수 없다”며 “그렇다고 고객수가 아주 많거나, 관리자산이 크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직원들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다수 직원들이 일정 고객들의 관리자산을 자주 회전시켜 약정금액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금융위기 전 D 증권사에서는 한 고객이 지점 직원에 1억 원을 맡겼다가 잔액이 2000만 원이 남았는데, 그 이유가 투자손실이 아니라 수수료로 8000만 원이 빠져나간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고객 쥐어짜기에 극단적인 예다.
이는 펀드에서도 마찬가지다. 장기투자를 유도한다는 이유로 선취수수료 제도가 도입됐지만, 이를 악용해 자주 펀드 갈아타기를 권하는 수법이다. 즉 펀드 수익이 나면 다른 펀드로 갈아타게 해 선취수수료를 더 챙기는 방법이다. 또 한때 은행권을 중심으로는 계열 자산운용사 펀드 판매실적을 인사고과에 반영하기도 했다. 고객을 위한 조언이 아니라 계열사 배를 불리기 위한 조언을 한 셈이다. 은행 지점장을 거친 금융권의 한 인사는 “관료적인 은행조직에서 인사고과만큼 무서운 무기가 없다. 본점에서 특정 펀드의 판매실적을 인사평가에 반영하겠다고 하면 열일 제쳐놓고 그 펀드를 팔 수밖에 없었다”고 기억했다.
# 등쳐먹기
한국거래소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9월 17일까지 국내 증권사들이 코스피시장에서 가장 많이 순매도한 20개 종목의 분석보고서 1970건 가운데 매도 의견을 낸 보고서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주식을 사들이라는 매수 의견이 1920건으로 97.5%를 차지했다. 증권사들이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은 내다팔면서 고객들에게는 되레 주식을 사라고 권한 것이다. 고객 주머니를 턴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가 기업공개(IPO)다. 주간증권사가 되면 상장과정에서 공모가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 같은 공모주간 업무를 해주고 받는 수익은 공모총액의 일정비율이다. 공모총액이 늘면, 쉽게 말해 공모가가 높으면 더 많은 수익이 나는 셈이다. 여기서 얻은 수익으로 증권사 투자은행(IB) 업무 담당 직원들은 성과급을 받는다. 이러다 보니 2009~2011년 사이에 상장된 종목 가운데 공모가를 웃돈 종목보다는 공모가를 밑도는 종목이 더 많다. 대형 금융사 공모를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주간사를 따낼 때부터 철저히 저자세일 수밖에 없다. 공모규모도 어마어마하고 해당 기업계열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공모가 수준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 훔쳐먹기
언뜻 등쳐먹기와 비슷해 보이지만 불법성이 심해 강력한 규제와 단속이 필요한 수법들도 있다. 이른바 선행매매와 내부정보 활용이다. 가장 최근에 문제가 된 경우는 증권사 직원들의 불법적인 투자다. 지난 9월 24일 금융감독원과 감사원에 따르면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한국증권금융, 동부증권, IBK투자증권, 예탁결제원 전·현직 직원들이 규정을 어기고 몰래 주식이나 선물·옵션거래를 하다가 적발돼 올해 들어 제재를 받았다.
금융투자업계에 종사하는 임직원은 일반 투자자보다 고급정보에 접근할 가능성이 커 유혹에 빠지기 쉬운 만큼 법과 회사 내규 등에 의해 투자에 통제를 받는다. 물론 증권회사 직원의 거래라고 해서 모두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증권사가 회사 정보를 악용해 투자한 경우가 문제다. 가장 대표적인 게 펀드나 증권사 또는 기관투자자가가 매수·매도하려는 정보를 먼저 얻어 그보다 앞서 투자하는 경우가 가장 심각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로 본인 명의가 아닌 차명계좌가 활용되는 데,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다.
또 다른 경우는 증권사 직원이 특정 세력과 짜고 고객들을 현혹하는 경우다. 작전세력들이 이미 싼값에 매수해 놓은 주식을 유망종목인 양 고객들을 현혹해 주가를 끌어올리는 수법인데, 이 역시도 불법이다. 최근의 일부 테마주에서 대주주들이 엄청난 차익을 실현한 게 화제가 됐는데, 만약 불법적인 거래가 있었다면 이 범주에 해당된다.
한때 문제가 됐던 투자자문사들의 주식투자도 만약 증거가 발견됐다면 이 범주에 해당한다. 2010년과 2011년 자문형랩으로 엄청난 자금이 몰려들면서 투자자문사들이 자기자본으로 사놓은 종목들의 주가가 급등했다. 고객 돈으로 자사가 보유한 주식을 산 것이다. 자문형랩이 법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자문’을 할 뿐 투자 책임은 고객에게 있기 때문에 선행매매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이후 금융당국은 고객의 투자의사결정을 사실상 좌우하는 투자자문사들의 자기자본 주식투자에 대한 감독을 강화했다.
증권가에서 최고경영자까지 지낸 한 인사는 “증권가만큼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적고, 단기성과에 최고경영자들이 목을 매는 곳도 없어 보인다. 고객의 개념은 없고 어떻게 하든 근무하는 곳에서 돈을 많이 벌까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높은 연봉 덕분에 고급인력이 몰렸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탐욕을 충족시키는 수법도 날로 지능적이 되고 있다. 이 같은 탐욕의 악순환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금융투자산업은 후진적인 수준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