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여 명으로부터 영화 투자 자금 모은 뒤 탕진…불투명한 영화 투자 생태계 근본적 개선 목소리 높아
최근 란저우시 공안국은 4개 영화사 직원들을 무더기로 검거해 검찰로 사건을 이송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일반인들을 상대로 영화 투자 자금을 모은 뒤, 이를 빼돌린 혐의다. 간판은 영화사였지만 과거 범죄 조직에 몸담았던 이들이 만든 회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직원들 대부분이 1990년대 생으로 젊은 편에 속했다.
이들이 투자한다고 밝힌 영화는 모두 12개다. 이 중엔 이미 개봉된 영화도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돈은 이 영화에 투입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돈이 유흥비 등 일당들의 개인적 용도로 탕진됐다. 실제 영화에 투입된 돈도 있긴 했지만 소액에 불과했고 이마저도 흥행엔 실패했다.
공안당국이 제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것은 2021년 말부터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서야 수사 결과를 공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피해가 광범위해 사례를 수집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또 일당들의 수법도 교묘해 수사진들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공안국 관계자는 “투자금을 받으면 이를 3~5단계의 세탁을 거친다. 투자자들을 모으는 방법도 SNS 등을 통해 비밀리에 이뤄진다. 지금까지의 사기 사건과는 차원이 다른 수법들이 동원됐다. 은폐성, 위해성 등을 감안하면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면서 “지금도 자신들이 투자했던 영화사가 진짜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3000여 명의 피해자 중 가장 많은 피해액은 700만 위안(13억 원)이다. 피해자마다 액수는 천차만별이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생계가 곤란해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노인 피해자가 많았는데, 이들은 자신의 연금을 투자해 향후 노후가 불투명해졌다. 또 학자금을 날렸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범죄 일당들은 인터넷 플랫폼을 구축한 뒤 사전에 허가받은 자들만 접속하도록 했다. 생방송을 통해 영화 투자와 관련된 홍보, 수익 배분 등을 강의했다. 투자로 이익을 봤다는 경험담도 소개됐다. 이는 일당들이 동원한 ‘바람잡이’에 불과했다. 방송이 끝나면 이 인터넷 플랫폼은 ‘폭파’됐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50대 남성 장 아무개 씨는 2020년 6월경 지인 추천으로 한 단체 채팅방에 참여했다. 주로 투자와 관련된 정보가 오갔는데, ‘선생님’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투자자 한 명이 영화 투자 제안을 했다. 유명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였고 감독과 함께 찍은 사진도 보여줬다. 흥행 성적에 따라 최대 3배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장 씨는 130만 위안(2억 4000만 원)을 투자했다.
최근 한 방송에서 얼굴을 가리고 출연한 장 씨는 이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장 씨는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날이었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너무 큰 손실이다. 나는 투자로 제법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사실이 알려질까 너무 두렵다. 이런 구덩이에 빠지다니, 너무 창피하다”고 했다.
장 씨는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것 같다고 했다. 일당들의 수법이 워낙에 치밀했기 때문이다. 장 씨는 “합성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영화 감독과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촬영 장소에도 데리고 갔다. 내가 투자한 돈이 어떻게 영화 제작에 쓰이는지 매일 투명하게 공개해줬다. 모두 가짜였지만 말이다. 영화와 내 투자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가족들과 부둥켜안고 울었다”라고 말했다.
공안당국은 대부분의 피해자가 장 씨 사례와 비슷하다고 설명하면서 영화 투자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한 대형 영화사 관계자는 “영화는 자본과 직결되는 사업이다. 제작을 위해 돈이 필요한데, 이런 투자 과정은 상당히 불투명하다. 그래서 범죄와 자주 연결되곤 한다. 이번 건은 아예 사기이지만, 실제 투자를 했다 낭패를 본 개인 투자자들이 제법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영화사 관계자는 “흥행이 보장된 영화는 개인이 끼어들기 힘들다. 기존 영화 투자자들이 지분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개인이 투자할 땐 흥행을 장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범죄자들은 이 부분을 적극 파고든다. 투자를 받은 돈 중 극히 일부만을 영화 제작에 쓴 뒤, 추후 흥행 실패를 핑계로 돈을 돌려주지 않는 일도 빈번하다”고 했다.
중국의 영화 산업은 많은 발전을 이뤄왔지만 투자 부문에 있어선 명확한 ‘룰’이 없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영화계의 병폐 일부분이 드러났을 뿐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영화인들은 이를 계기로 자금 조달 등 영화 투자 생태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영화 제작자는 투자 정보를 정확히 공개하고, 자금 집행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 장 씨처럼 사기 당한 것을 부끄러워해 숨기는 이들도 많다고 파악된다. 그럴 필요가 없다. 피해자들은 적극적으로 공안에 신고해주길 바란다. 그래야 범죄 집단을 일망타진할 수 있고, 또 다른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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