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톱4 바라봤지만 수은법 개정안 입법 지연으로 업계 시름…선진국 수준의 수출금융제도 필요
#폴란드 수출로 경쟁력 높아졌지만 위기감 고조
올해 K-방산의 출발은 좋지만 국내 방위산업계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폴란드와 대규모 방산 수출 계약으로 글로벌 톱4를 바라보던 K-방산이 한국수출입은행(수은) 개정안 입법 지연으로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다. 2022년 하반기 폴란드와 약 17조 원에 달하는 방산수출계약을 체결하면서 K-방산은 새로운 시대로 진입했다. 특히 K-방산은 2022년 폴란드와 기본 수출 계약에 이은 1차 이행 계약으로 글로벌 방산 업계를 놀라게 했다. 단순 계약에 그치는 게 아니라 기존 납기를 몇 개월 이상 앞당기는 등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조기 출고 성과를 올렸다. KAI(한국항공우주산업)가 만들고 있는 FA-50 경공격기의 경우 폴란드와 수출계약을 체결한 지 1년 3개월 만에 폴란드 수출형 FA-50GF(Gap Filler) 12대 납품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현대로템의 K2 전차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그리고 한국형 다연장로켓포인 천무도 계획 대비 수개월을 앞당겨 폴란드에 인도 중이다.
폴란드와 1차 방산수출계약으로 국내 방산업체의 상황도 달라졌다. 2022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 방산업체는 위기라고 할 만큼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다. 수출은 더뎠고 국내 군 소요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전 세계적으로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가 강조되면서 무기를 만드는 방위산업체는 투자 기피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방위산업체에 대한 인식도 변했고, 폴란드와 대규모 방산수출계약을 맺으면서 국내 방위산업체는 기사회생했다. 특히 2022년과 지난해 영업실적 개선과 더불어 대규모 인력확충과 함께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폴란드 수출이 있다. 국산무기가 경쟁국 대비 규모의 경제를 갖추면서 해외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끌어올린 덕분이다. 이제 국내 방위산업체들은 내수에서 수출 중심으로 체질변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폴란드와 후속 계약을 맺지 못한다면 이러한 변화는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수출금융 지원 안 되면 추가 수출 무산될 수도
폴란드와 후속 계약은 30조 원 이상에 달한다는 것이 국내 방위산업계의 전망이다. 우선 K2 전차는 820여 대, K9 자주포는 460여 문에 달하며 천무를 비롯해 장갑차와 각종 탄약까지 포함되어 있다. 1차 계약의 두 배에 해당한다. 폴란드와 후속 계약은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수출금융지원이다. 지난해 12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 군비청과 K9 자주포 등을 추가 수출하는 26억 달러(약 3조 4474억 원) 규모의 2차 실행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2차 실행계약과 관련해 “수출금융지원을 전제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으며, 올 상반기까지 수은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한다. 국회와 업계 등에 따르면 수은 자본금 한도 확대를 기본 골자로 하는 수은법 개정 발의안 3건이 모두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반년 넘게 계류 중이다. 해당 안건은 2020년 정성호 의원과 지난해 윤영석·양기대 의원이 각각 발의한 수은법 개정안으로 수은의 자기자본금 한도 15조 원을 최대 35조 원까지 늘리자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정책금융 지원을 바탕으로 진행돼야 할 폴란드 후속계약은 좀처럼 진전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정책금융기관인 수은의 자기자본금 한도가 터무니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통상 정부 간 계약(G2G) 성격이 강한 방산이나 인프라, 원전 등 대형 프로젝트는 수출 규모가 워낙 커서 수출국에서 구매국에 정책금융이나 보증, 보험을 서는 것이 일반적인 국제관례다. 수은법상 수은이 특정 개인 및 법인에 대한 신용공여는 자기자본의 40% 한도로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수은의 법정 자기자본금은 15조 원 수준으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5월 납입자본금 잔액 소진율이 98.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로 수출 금융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음에도, 2014년에 8조 원에서 15조 원으로 확대된 이래 근 10년간 법정자본금 확대가 없었던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폴란드 1차 이행 계약의 2배 이상에 달하는 후속계약 체결을 위해서는 수은의 자기자본 한도 확대가 필수요건으로 뒤따랐다.
#정쟁과 선거에 발목 잡힌 K-방산
소관 상임위인 국회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에서는 지난해 11월 위 3개 개정안의 병합심사가 보류된 이후 논의조차 착수되지 않고 있다. 김포의 서울 편입 이슈 등 각종 민생 법안에 우선순위가 밀리고 있어서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절차상 적어도 2월 초중순에는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수은법 개정안에 대한 심사와 의결이 선행돼야 4월 총선 전인 3월 본회의 때 데드라인으로 개정안 통과가 가능할 것이라고 촉구한다.
특히 총선을 고려한 민생 법안 처리로 인해 수은법 개정안이 후순위로 계속 밀릴 경우 지난해 수출 효자로 떠오른 K-방산의 글로벌 톱4 진입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수은법 개정과 관련해 방위산업계 관계자는 “최근 폴란드 총선 결과로 인해 수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이런 때일수록 적기 수출 금융 지원에 대한 우리의 확신과 의지를 구매국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방위산업 특성상 한번 때를 놓치면 국제 경쟁력에서 돌이키지 못할 만큼 도태될 수 있어 조속한 수은법 개정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쟁국들은 방산수출 특화 금융지원 체계 운영
수출금융지원은 폴란드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국산무기체계 계약을 앞두고 있는 동유럽 및 중동국가 그리고 동남아 국가의 대부분이 수출금융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 국가는 도입금액의 50% 혹은 100%에 대한 수출금융지원을 요청하기도 한다. 반면 해외시장에서 K-방산과 경쟁하는 미국, 프랑스, 스웨덴, 러시아, 중국의 경우 일찍이 방산수출에 특화된 금융지원 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지원형태가 대규모화, 패키지화되고 있는 추세다.
산업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미국은 해외군사재정지원(FMF) 제도, 러시아와 중국은 초장기(30~50년), 초저리(1% 미만) 금융지원 그리고 프랑스는 방산, 항공 등 국가전략산업에 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이드라인이 아닌 별도의 자체 신용등급 제도 등을 적용해 수출금융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방산수출 특성상 초기 이윤이 적더라도 무기수출 이후 수십 년간 수리, 정비, 성능개량을 통한 추가적인 이윤 확보가 가능하다. 수은법 개정과 함께 우리나라도 선진국 수준의 방산수출금융 제도가 필요한 상황이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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