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지주는 예금보험공사가 지분 77.97%를 가진 최대주주다.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와 재경부의 영향권에 있는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공기업의 성격이 강한 셈인데, 공기업의 경우 CEO가 연임한 전례가 없다 보니 황 회장의 경우도 연임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황 회장 취임 이후 우리금융지주의 실적이 좋아 연임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경영인은 실적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금융지주와 은행을 분리해 각각 다른 CEO를 선임할 수도 있는데, 황 회장이 은행장만 연임하는 시나리오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황 회장이 이헌재 인맥이라는 구설수에 올랐던 점, 김재록 게이트 연루 의혹을 받았던 점, 한나라당의 공천으로 서울시장 출마설에 오르는 등 금융가에선 이례적으로 ‘정치면’, ‘사회면’ 출연 전력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황 회장은 지금까지 이런 위기 상황들을 잘 처리해 오면서 잡음들을 정리해 왔다. 오히려 최근에는 우리금융그룹 내부에 강도 높은 개혁 주문을 연발하면서 경영인으로서 적극적인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우리금융지주는 황 회장이 취임한 이후인 2004년부터 1조 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내고 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순이익이 1조 원을 넘어서고 있다.
황 회장은 올해 초 “다른 은행이 벨트 아래를 때리면 나도 ‘뒤통수’를 치겠다”며 은행권 영업전을 주도하는가 하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라’는 의미에서 영업본부장들에게 단검을 선물하며 투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적극적인 공격 경영으로 우리은행은 상반기 중 은행 자산을 20조 원이나 불리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신한지주가 LG카드를 인수하자 ‘2위권 싸움은 지금부터’라며 이슈 선점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금융지주 주변에선 벌써부터 차기 우리금융지주 회장 후보 하마평이 나돌고 있다. 대대로 은행권 수장이란 자리는 행장 본인만 잘한다고 해서 결정되는 자리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하마평에 오른 인물은 현대증권의 김지완 사장. 부국증권 출신의 김 사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1년 선배로 노 대통령과 상당히 가까운 선후배 관계로 알려져 있다. 정계에서는 내년 대선 정국과 맞물리다 보니 김 사장이 우리금융지주로 오지 않겠느냐는 추측성 전망도 있다. 김 사장은 노조와의 관계도 상당히 좋은 데다 특히 올해 노사관계 등 ‘외곽의 돌발 변수 관리’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황 회장이 올해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 공천으로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돌았던 것을 현 정부가 껄끄러워할 가능성도 있다.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을 분리해 김 사장이 지주사 회장으로, 황 회장을 우리은행장으로 가는 구도는 코드가 맞지 않아 힘들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있다.
한편 우리투자증권의 박종수 사장이 금융지주 회장을 노린다는 얘기도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박 사장은 황 회장의 서울대 무역학과 5년 선배다.
황 회장이 연임을 하지 못할 경우 삼성그룹으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시각도 있다. 다른 정부기관 산하 금융기관으로 갈 수도 있지만 불확실한 정부기관보다는 삼성이 더 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이 황 회장을 신뢰하고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삼성으로 간다면, 직급으로 봤을 때 삼성증권보다는 삼성그룹의 금융업종의 핵심인 삼성생명 사장 자리에서 금융업종을 총괄지휘할 가능성이 더 크다.
게다가 삼성이 언젠가는 은행업에 진출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금도 삼성이 돈이 모자라 은행 인수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과 전자를 양대 축으로 하는 삼성 입장에선 황영기 카드가 쓸 만하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이 금융업을 계열 분리하고 우리금융 그룹을 인수한다는 시나리오도 금융계에 돌기도 한다. 삼성으로서는 이를 위해 황 회장의 연임을 바랄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은행의 대주주인 예보가 매각보다는 기업은행과의 합병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높여야 한다는 정부 시나리오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황 회장은 기업은행보다는 하나은행과의 합병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알려진다. 8월 말 황 회장은 “장차 우리은행이 하나은행을 먹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하나은행을 자극한 바 있다.
9월 들어 황 회장은 신한은행을 강도 높게 자극하는 등 더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임기 말을 앞둔 시점이다 보니 황 회장의 최근 발언들이 황 회장의 거취와 맞물려 회자되기도 한다.
지난 9월 7일 황 회장은 우리은행 월례조회에서 “신한은행이 아닌 우리은행이 은행권 내 확고한 2위다. 일부에서 은행권 내 2위를 헷갈려 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자산규모로 볼 때 우리가 2위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이 LG카드 인수를 계기로 ‘국민-신한’의 2강 체제가 거론되는 것에 대해 직접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황 행장은 “8월 말 현재 우리은행의 신탁을 포함한 총대출은 91조 원으로 신한은행 85조 원보다 많고 총예금도 85조 5000억 원으로 신한은행 81조 8000억 원과 차이가 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민은행이 외환은행 인수협상에서 실패할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또 LG카드를 실사 중인 신한금융지주가 LG카드 노동조합의 실력저지에 막혀 차질을 빚고 있는 점도 변수다. 황 회장은 이에 대해 “외환은행 인수 과정도 가변적이고, 카드업도 가변적”이라고 언급했다.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인수가 검찰 수사 결과 무산되고, 신한은행의 LG카드 인수도 실사 후 가격협상 과정에서 차질을 빚어 은행권 M&A 구도가 우리은행에 유리하기를 바라는 속내를 비친 것으로 보여지는 대목이다.
황 회장이 그리는 금융권의 큰 그림은 황 회장이 연임했을 때라야 가능한 것이다. 최근의 황 회장의 행보가 연임을 염두에 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의욕만큼은 그만둘 기세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황 회장이 한 번하고 그만둘 것이라면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우리금융지주 측은 이런저런 연임 관련 소문들에 대해 “어차피 다 추측성일 뿐이다. 회장 거취와 관련해서는 예보가 결정할 일이지 우리가 할 말은 없다”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