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일본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3명 중 1명꼴로 앞으로 시간치료를 적용하겠다고 응답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국제적으로 보면 시간치료는 연구가 시작된 지 2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분야다. 하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항암제 투여량, 투여속도를 시간에 따라 조절하는 의료용구도 보급될 정도로 꽤 알려져 있다. 약 투여시간 및 효과 등 시간치료의 구체적인 방법과 원리, 생체리듬을 찾는 법을 <NHK> 보도를 중심으로 살펴봤다.
8년간 류머티즘을 앓은 70세 여성 A씨. 손가락 관절에 염증이 생기고 뼈가 변형돼 통증이 매우 심하다. 약은 꾸준히 먹었는데 도통 효과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시간치료를 받게 됐다. 복용한 약은 같은데 투약 시간만 바꾼 것.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2번 복용하던 약을 밤 9시에 먹는 것으로 바꾸면서 아픔이 없어지고 증세도 상당히 완화됐다.
같은 약인데 복용하는 시간에 따라 효과가 다른 이유는 뭘까? A 씨의 치료를 담당한 일본 사세보중앙병원 원장은 “인간의 생체 리듬을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류머티즘은 병의 원인물질인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분비량이 새벽 3시 절정에 이르고, 병상은 이른 아침에 극심하다. 그러므로 밤 9시에 약을 복용하면 효과를 극대활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장기와 조직세포에는 규칙적인 생체리듬을 기억하는 시계 역할을 하는 이른바 ‘시간유전자’가 들어있다. 이런 메커니즘을 통틀어 체내시계라 하는데 이에 따라 24시간 생체리듬이 변화한다. 시간치료는 체내시계와 생체리듬을 고려하여 투약함으로써 약이 지니고 있는 효과를 최대로 끌어내고자 함이다.
B 씨(33)는 3년 전 생긴 대장암이 간으로 전이되었는데 간의 암 크기가 커서 수술조차 어려웠다. 때문에 항암제를 투여하여 암을 작게 만드는 치료를 재작년 말부터 시작했다.
이전까지 줄곧 낮에 투여하던 항암제를 밤에 자고 있을 때 투여하는 것으로 바꾸는 시간치료를 했고, 투여량은 1.5배로 늘렸다. 그 결과 간에 전이된 암의 크기가 작아져 수술로 제거할 수 있게 됐다. B 씨는 “머리가 전보다 적게 빠졌다”며 “수술을 빨리 받을 수 있게 되어 살았다”고 증언한다.
정상적인 간세포는 항암제를 분해할 수 있는데 이 능력은 주로 낮보다 밤에 뛰어나다. 본디 항암제는 암세포 공격을 막아내지만 동시에 정상세포도 손상시키므로 많은 양을 투여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밤중에 항암제를 투여함으로써 정상세포가 받는 항암제의 영향을 조금이나마 경감하고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또 최근에는 대장암 항암제를 새벽 4시경 최대치로 투여하는 사례가 보고됐다. 낮에 일정한 시간을 정해 항암제를 투여하는 것보다 소화기관 장애, 혈소판 감소 등 부작용이 5분이 1이나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다.
이밖에도 시간치료가 적용되는 병은 많다. 우선 고혈압을 보자. 고혈압의 시간치료에서는 먼저 하루의 혈압 변화를 파악해야 하는데, 야간 혈압이 낮에 비해 얼마나 내려갔는지가 포인트다. 일반적으로 혈압은 낮에 높고 밤에는 낮다. 그런데 밤에도 혈압이 내려가지 않아 낮과 비슷한 수치인 환자는 동맥경화가 일어나기 쉽다. 그래서 이런 이들은 통상 아침과 낮에 먹는 강압제를 자기 전에 먹어서 혈압을 낮추고 뇌경색 리스크를 떨어뜨린다.
기관지 천식이나 기관지염 치료제로 널리 쓰이는 테오필린(Theophylline)도 자기 전에 먹는 게 좋다. 천식 환자는 동이 트는 새벽에 발작이 일어나기 쉽다. 따라서 자기 전에 약을 먹어두면 새벽에 효과도 나타나고 약의 안정성도 높다.
알레르기성 비염은 성별, 연령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환자들이 이른 아침 6시에 증상이 악화된다. 그래서 메퀴타진(Mequitazine) 성분이 든 항히스타민제를 밤에 복용하면 아침에 복용하는 것보다 콧물, 코막힘에 효과적이다.
필요 이상의 지방성분이 혈액에 있다가 염증을 일으키는 고지혈증 환자는 저녁에 약을 복용하는 게 좋다. 체내 콜레스테롤 합성이 한밤중 2시경 활발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 시간치료 연구는 그 역사가 매우 짧지만 유럽에서는 관련 의료기구가 보급될 정도로 꽤 알려져 있다. 일요신문 DB |
물론 이와 같은 시간치료는 아직까지 연구단계이며 개인에 따라 증상, 약효가 다양하여 모든 환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의사와의 상담 없이 스스로 판단하여 약 복용 시간을 바꿀 경우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위험하다.
하지만 병의 예방 및 건강관리 차원에서 시간치료를 충분히 이용해볼 수는 있다. 체온, 혈압, 적혈구, 백혈구 등 생리기능이 활발해지는 생체리듬은 하루 중 최고 시간대가 정해져 있다. 또 최고 시간으로부터 12시간이 지나면 최저 수치를 보인다(그림 참조). 이를테면 위산 분비량은 저녁 8시경에 최대수치가 되는데 자정 즈음 되면 소화성 궤양이 악화된다. 소화성 궤양이 있는 이는 이때 꼭 쉬어야 한다. 야간 근무를 하는 이는 소화성 궤양 등 발생률이 눈에 띄게 높다는 보고도 있다.
밤샘이 잦은 이들은 협심증이나 심근경색과 같은 관상동맥질환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혈관 속에서 피가 뭉치는 혈전을 녹이는 능력 ‘선용능’은 최대수치를 나타내는 시간대가 저녁 7시 경이다. 이 시간대로부터 12시간여가 지나면 선용능이 최저로 떨어지고 오전 9~10시 경 심근경색이 일어나기 쉽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밤에 일하면 면역력 ‘뚝뚝’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다보면 건강을 해치기 쉽다는 건 상식이다. 시간유전자에 의해 고유하게 작동하는 체내시계가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생체리듬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우리 몸의 면역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진다고 보면 된다.
일본 야마구치대학 시간학연구소에서는 시프트제로 밤에 근무하는 공장 직원의 체내시계를 조사했다. 직원들의 머리카락 모근을 뽑아서 평소 낮에만 근무를 하는 이들과 시간유전자를 비교 조사한 것이다.
단순 계산으로는 밤에 일을 하면 낮에 일하는 이들과 체내시계가 12시간 차이가 나야 하지만 실제는 불과 2시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만큼 몸이 무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만성 스트레스, 우울증, 동맥경화, 고혈압, 비만, 당뇨, 생리불순 등 건강 리스크가 높다.
한편 장기간 불규칙한 생활로 인해 암에 걸릴 확률도 그만큼 높다. 암 중에서도 전립선암, 유방암 등 성별에 따라 나타나는 암 등이 특히 그렇다. 이 때문에 덴마크에서는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가 유방암에 걸릴 경우 산재보험 처리를 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조]
체내시계 맞추는 법
낮잠 필요하면 ‘90분 단위’로…
생체리듬은 뇌 시교차상핵(Suprachiasmatic nucleus)이 관장하며 몸의 장기에 있는 말초시계에 지령을 내리는 구조로 되어 있다. 생체리듬이 잘 유지되고 있는 사람은 매일 아침 알람이 없어도 같은 시각에 깰 수 있으며 밤에도 잘 잔다. 이에 비해 생체리듬이 깨진 이들은 집중력이 떨어지고 설사와 변비를 번갈아 되풀이하는 등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좋지 못하다.
체온 변화를 살피면 생체리듬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다. 건강한 이는 일어나면 체온이 상승하고 자기 전에는 체온이 떨어진다. 체내시계가 작동이 안 되는 이들은 기상 후에 체온이 잘 오르지 않고 밤 11시가 넘어도 체온이 떨어지지 않는 특징이 있다. 기상 후, 취침 전 3시간 동안 체온이 각기 0.4도 이상 오르거나 내려야 생체리듬이 원활한 것이다. 생체리듬을 맞추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아침에 햇볕을 쬐는 것이다. 아침 식사를 하는 것도 좋다. 비타민 B12가 포함된 육류, 달걀, 우유, 어패류, 체온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는 자몽주스를 먹자. 뇌에서 멜라토닌 호르몬이 잘 분비되어 체내시계를 활발히 작동하게 해준다.
그런데 멜라토닌 분비량은 65세 이상이 되면 10대였을 때의 20분의 1수준까지 대폭 감소한다. 나이가 들어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밤중에 몇 차례나 깨 화장실에 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이들은 자기 3~4시간 전부터 방을 어둡게 하고 형광등 대신 백열등을 쓰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편 치매가 있는 노인은 햇볕을 쬐어도 멜라토닌이 체내에서 거의 분비되지 않으므로 약을 먹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밤에 일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일하는 도중 심야에 1시간 정도 잠깐이나마 눈을 붙이는 게 좋다. 빛이 차단된 깜깜한 곳에서 잠을 자면 악영향을 줄일 수 있다.
낮잠을 잘 때는 90분 단위로 잠을 자는 게 좋다. 생체리듬에 맞는 수면 사이클은 90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토요일 새벽에 일을 마치고 귀가했다면 4.5시간(270분)만 자고 일어나 아침에 산보를 한다. 그러고 나서 점심을 먹은 후 90분만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주말 밤에는 잠에 들 수 있다. [조]
체내시계 간단 체크리스트
□ 기상이나 취침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 주말에는 항상 낮잠을 많이 잔다.
□ 오전에 늘 머리가 개운치 못하고 밤에는 금방 잠들지 못한다.
□ 밤샘 작업이 잦다.
□ 아침을 거르며 식사시간이 불규칙하다.
□ 자기 전 야식을 먹거나 고칼로리 과자를 먹는다.
□ 자기 전 술을 마신다.
□ 자기 직전까지 컴퓨터나 휴대폰을 쓴다.
□ 심야에 쇼핑하는 습관이 있다.
□ 스탠드나 전등을 켠 채 잠이 든다.
□ 운동으로 땀을 흘리는 일이 거의 없다.
□ 집안에서 커튼을 친 채 하루 종일 햇볕을 쬐는 일이 없다.
□ 해외출장이 잦고 야간에 국제전화나 메일을 하는 등 업무를 본다.
□ 주중 몇 차례나 밤 10시 이후까지 야근을 한다.
□ 월요일 아침은 번번이 늦잠을 자 지각하기 일쑤다.
5개 미만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으나 항상 졸립다.
5~10개 주의를 요한다.
10~15개 위험신호. 즉시 생활패턴을 바꿀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