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대국 패했지만 ‘싸우는 감각 훌륭’ 평가…“평소 박정환·최정·오유진 존경, 가수 아이유 좋아해”
스미레는 4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어제 첫 대국을 가졌는데 이를 시작으로 한국기원의 기사로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을 실감했다”며 “한국 바둑의 레벨은 전반적으로 높다. 연구가 진행되면 사소한 부분까지 더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한국 바둑계에는 있다. 이런 분위기를 함께하면서 나도 사소한 부분, 특히 후반에 약한 부분이 있기에 한국에서 많이 배우면서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스미레의 첫 공식대국 상대는 이창석 9단이었다. 무대는 제5기 쏘팔코사놀 최고기사결정전 본선리그 1라운드. 본선리그는 전기 대회 성적 상위자 4명(박정환, 변상일, 박민규, 이창석)과 예선을 통과한 4명(신민준, 안성준, 김정현, 임상규), 그리고 후원사시드를 받은 1명(나카무라 스미레) 등 총 9명이 타이틀 보유자인 신진서 9단을 향한 도전권을 다투는 무대이다.
후원사 측은 “한국으로 이적하게 된 나카무라 스미레 3단이 최고기사 결정전에서 한국의 정상급 기사들과 대국 기회를 갖는 것이 다소 침체돼 있는 일본 바둑계에도 하나의 활력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예전엔 한국에서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갔지만 지금은 반대 상황이 됐다. 스미레 3단이 한·일 바둑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스미레로서는 귀중한 이적 선물을 받은 셈이다. 국내 정상급 기사들과 돌아가며 한 차례씩 대국을 갖는 것은 신예에겐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지난 3일 경기도 판교의 K바둑 스튜디오에서 열린 이창석 9단과의 대국은 이 9단이 220수 만에 스미레에게 항서를 받아냈다. 현 국내랭킹 16위 이창석 9단의 벽은 스미레에겐 아직 높았다.
일방적으로 밀린 것은 아니지만 한 번도 우세를 잡은 적도 없어 완패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백홍석 9단은 “곧 무너질 듯하면서도 끝까지 균형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왜 대형 신예라 부르는지 알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세기는 부족하지만 전투를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감각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1도가 실전(스미레가 흑). 좌상 백집과 우변 흑집이 비등비등하나 바둑은 덤을 내기 어려운 국면이다. 여기서 이창석 9단이 A로 살아뒀으면 더 이상의 분란은 없었는데, 백1~5까지 두 점을 잡고 버티면서 국면이 시끄러워졌다. 흑6의 단수는 당연하고 갑자기 좌하에서 패싸움이 벌어지게 된 것.
2도. 긴 패싸움의 와중에 좌상 흑이 살아나고, 거꾸로 우하 흑이 잡히는 상전벽해의 바꿔치기가 일어났다. 하지만 국면은 여전히 백이 앞서있는 상황. 그런데 백1로 따냈을 때 흑2로 물러선 것이 스미레의 마지막 패착이 됐다. 이 수로는 A나 B로 팻감을 써서 계속 패싸움을 이어나갔으면 “백이 골치깨나 아팠을 것”이라는 백홍석 9단의 진단이 있었다.
국후 이창석 9단은 “오늘 스미레 3단에게 너무 구르다가 이겨서 좀 그렇다”면서 “듣던 대로 스미레 3단의 실력이 이미 만만치 않았다.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을 환영하고 목표한 대로 성장하기 바란다”고 격려했다.
객원기사 신분이지만 스미레는 한국에서 열리는 모든 기전에 출전이 가능하다. 4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욕심나는 기전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는 “한국엔 워낙 많은 기전과 대국이 있어서 특정 짓고 싶지는 않다. 가까운 목표로는 우선 첫 승을 빨리 거두고 싶다”고 했다. 또 구체적인 목표를 묻는 질문에는 “5년 안에 여자기사 중 2위까지는 되고 싶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하며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서 목표를 꼭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평소 존경하는 기사로는 박정환 9단, 최정 9단, 오유진 9단을 꼽았다. “세 분 모두 바둑이 강하고, 성격도 좋고 친절하게 대해주신다”고 설명했다. 바둑 외에 한국 생활을 묻는 질문에는 “어릴 때부터 도장에서 사귄 친구들이 많다. 그들과 즐겁게 놀고 싶다. K팝도 좋아하고 가수 아이유를 좋아한다. 영화도 보고 노래방도 함께 가보고 싶다”고 했다.
스미레 3단의 스승이기도 한 한종진 프로기사협회장은 “스미레 3단이 2위를 목표로 하겠다고 한 건 겸손의 발언일 뿐, 속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호전적인 스타일과 전투력 등은 장점이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마무리는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향후 2~3년 정도면 여자바둑 쪽에서 정상권에 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유경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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