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서 설현준 꺾고 9년 만에 첫 타이틀 획득…“작년 란커배 구쯔하오에 역전패 두고두고 아쉬워”
5일부터 7일까지 3번기로 치러진 결승에서는 최종국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박건호 8단이 설현준 8단을 2 대 1로 꺾고 프로 입단 후 첫 우승을 달성했다.
경남 양산시 출신 박건호를 두고 동료 기사들은 ‘양산박’이라고 부른다. 장수영바둑도장과 바둑 명문인 서울 경성고를 졸업했다. 번뜩이는 감각과 전류와 같은 빠른 수읽기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침착함과 균형 감각이 돋보이는 기풍이다. 항상 공부하는 노력파 기사로도 유명하다.
―첫 타이틀 획득을 축하한다. 결승 상대가 잘 아는 사이여서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설현준 8단과는 코흘리개부터 수없이 만난 사이라 따로 대비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만큼 서로 잘 안다. 어제(2월 6일) 2국을 지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두터움을 잃지 않는 쪽이 승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3국은 좀 두텁게 판을 짜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포석 연구를 좀 했는데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에 곤마(困馬)가 생기긴 했지만 단곤마여서 타개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바둑은 어떻게 접하게 됐는지.
“어릴 적 누나가 학습지를 했는데 그때 바둑판 비슷한 장난감을 받았다. 그게 바둑인지도 몰랐을 때다. 누나는 관심을 안 가져 그게 제 차지가 됐는데 저랑 엄마가 그걸로 연습을 하다가 바둑이란 걸 알게 된 셈이다. 엄마도 바둑을 몰랐지만 둘러싸서 따먹는 것은 알아서 둘이 따먹기 놀이를 많이 했다. 그러다가 바둑교실을 다니며 정식으로 바둑에 입문했다.”
―결승 상대 설현준 8단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봤는가.
“수읽기가 엄청 강한 기사다. 전투와 난전에 강한데 계산력도 빨라서 굉장히 까다로운 상대다.”
―5명을 연속으로 제치고 결승에 올랐다. 특별히 어려웠던 고비가 있었다면.
“결승전도 힘든 내용이었지만 본선 1회전에서 만난 김승구 선수와의 대국이 가장 어려웠다. 어린 유망주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굉장히 고전했다. 사실 진 바둑이나 마찬가지였다. 운 좋게 역전승을 거뒀고, 그 바둑을 힘들게 넘긴 것이 컨디션 회복의 원동력이 됐다.”
―사실 박건호라면 작년 란커배 준결승전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시 구쯔하오 9단에게 99% 이긴 바둑을 역전패 당했고, 이후 결승에서 신진서도 구쯔하오에게 대역전패를 당하면서 세계 바둑 판도에도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본인 생각은 어떨까.
“그랬다. 당시 주위 분들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진서가 우승 못한 건 너 때문이라고 많이들 말씀하셨다(웃음). 제가 그 바둑을 잘 마무리해서 신진서 9단하고 결승전을 치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많이 남는다. 그 바둑은 잊을 수가 없는데 마지막 승부처에서 패싸움을 결행했어도 팻감이 많아서 지는 일은 없었는데, 결정적으로 집계산을 잘못하고 있었다. 그냥 집으로 가도 이겼다고 생각하고 타협을 했는데 그게 패착일 줄이야….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바둑이었다.”
―본인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균형 감각은 나름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좀 애매한 것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르다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특출한 부분도 없기 때문에 꼭 장점이라 하기도 애매한 것 같다. 장점이자 단점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수읽기와 끝내기다. 초일류 기사들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것을 느낀다.”
―랭킹이 지난해 1월 7위까지 치솟았다가 현재는 17위로 내려왔다. 중국리그 출전 성적이 좋지 않아서라는 분석이 있었다. 본인 생각은.
“과밀한 일정으로 인한 체력적인 부담 때문이라고 포장해서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결국은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바둑리그와 큰 차이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중국 바둑리그 쪽이 더 까다롭다고 생각된다.”
―하루 공부량은 얼마나 되는가.
“시합이 있거나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국기원에 있는 국가대표 훈련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니까 하루 7~8시간 정도는 바둑과 함께 하는 셈이다.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활용한 연구도 당연히 한다. 집에서 따로 2시간 정도 하고 있다. 주로 포석 연구를 많이 했었는데 어느 한쪽만 파고든다고 실력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골고루 하려고 노력 중이다.”
중국리그에서 내내 부진하다가 마지막 2경기에서 승리하며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기에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는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올가을쯤 군 입대 예정이라는 것. “바둑리그랑 중국리그 잘 마무리하고 세계대회도 몇 개 나갔다가 아마 가을쯤 군대를 가게 될 것 같다”고 말한다. 군 복무 후 박건호가 더 단단해져서 돌아오길 바란다.
유경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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