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 소환사태에 대비해 검찰·사법부 동향 파악과 친 삼성 정서 확산에 주력해왔다. 검찰과 법조계에 대한 대인마크 필요성 때문에 삼성 법무라인의 활동이 주된 관심을 끌어왔지만 삼성 총수일가 신변을 둘러싼 일에 가장 민첩하게 대처해온 것은 바로 정보팀이었다. 이 부회장 소환에 따른 이건희 회장 소환 가능성에 대한 ‘대 검찰·법조계 로비’는 법무팀의 몫이겠지만 이를 둘러싼 전반적인 정보파악과 친 삼성 여론 조성 그리고 향후 전략 수립 등은 정보팀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의 막강 정보라인이 이건희-이재용 총수부자의 그룹경영 지지기반을 다져주고 있는 셈이다.
삼성 소속 정보요원 수백 명은 매일같이 각계를 누비며 이건희 회장에게 정보보고를 하고 있다. 삼성이 운용하는 정보라인에 대해 정·관·재계 인사들은 ‘국정원을 앞서는 수준’이라 평하기도 한다. 국내 최고의 진용을 자랑하는 삼성그룹 정보보고 시스템을 들여다보도록 한다.
삼성 정보보고 체계는 크게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과 각 계열사에 있는 대외협력파트로 나눠 볼 수 있다. 올 초 구조본 조직에서 축소·개편된 전략기획실은 100여 명 인원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학수 부회장이 전략기획실장을 맡아 총괄한다. 전략기획실은 김인주 사장이 이끄는 전략지원팀, 이순동 부사장의 기획홍보팀, 그리고 노인식 부사장이 맡은 인사지원팀으로 크게 나뉜다. 이 중 정보보고를 담당하는 부서는 기획홍보팀이다. 이순동 부사장이 총괄팀장 격이지만 정보수집과 보고를 이끄는 것은 장충기 부사장이며 그 밑에서 실무팀장 역할을 맡은 인사는 상영조 상무인 것으로 전해진다.
전략기획실 직원들은 대부분 삼성전자나 삼성물산 등 주요 계열사에서 파견근무 나온 인사들이다. 이들 중 기획홍보팀에서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차장급 이상 5~6명 선이며 대부분 동기들 중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인사들이라 한다. 기획홍보팀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12~15명 정도 되는데 이들 또한 기존의 홍보 업무 외에 타사 동향이나 매체 성향 등을 파악해 매일같이 보고서를 올린다. 기획홍보팀에 배속된 정보담당 직원만 20명 선에 이르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들이 담당하는 정보 분야는 정치권과 재계의 동향, 그리고 정부 각 부처에 관한 일들도 그 범위가 광범위하며 특히 삼성과 관련된 정보들이 우선시된다. 이들은 매일같이 정보를 수집해 보고하며 이를 장충기 부사장이 취합하고 선별해 이학수 부회장에게 보고하고 이 부회장을 통해 이건희 회장에게 전해진다.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은 선별된 정보보고를 매일같이 받는데 이건희 회장이 해외체류 중일 경우엔 팩스로 받아볼 정도로 정보보고를 중요시 여긴다고 전해진다.
삼성 정보보고 라인의 다른 한 축은 주요 계열사에 소속돼 있는 대외협력파트다. 전략기획실에서 각 계열사의 대외협력파트를 관리하는 인사가 2~3명 있는데 이들은 매일같이 보고되는 대외협력파트 정보들을 취합 선별해 장충기→이학수→이건희 라인으로 전달하고 있다.
각 계열사 대외협력파트에서 정보수집만을 담당하는 인원은 계열사별 최소 2~3명 이상이라고 한다. 전략기획실과 계열사별 대외협력파트 소속 정보담당 인력을 모두 합치면 최소 20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진다. 200명 이상이 매일같이 사무실 책상을 지키는 대신 외부인사들과 접촉하며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할 사안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전략기획실 정보라인이 일간지 시스템이라면 대외협력파트 정보수집 담당 직원들은 주간지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대외협력파트 정보 담당 직원들은 매주 그룹 전략기획실 대외협력파트 담당 인사가 소집하는 회의에 참석해 한 주간 수집한 정보를 보고하고 그룹 수뇌부로부터 과제를 하달받는다. 전략기획실의 정보라인이 매일같이 일어나는 사안들을 주로 보고거리로 삼는다면 대외협력파트는 굵직한 사안들을 묶어 보고하는 체계로 구분할 수 있다.
주요 계열사들은 대외협력파트 활동과는 별개로 계열사 중역들이 개별적으로 정보를 취합해 전략기획실에 보고하는 중역정보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계열사 중역들은 대외협력파트와 마찬가지로 매주 의무적으로 전략기획실에 정보보고를 해야 한다.
중역정보시스템은 중역들이 매주 오피니언 리더급 외부 인사들을 만나 식사 등을 하며 입수한 사안들을 정리해 전략기획실에 보고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중역들의 보고 형태는 일반 정보담당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보고서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구두보고나 메모통지 등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중역들의 식사 약속에서 나온 이야기들 대부분이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되는 셈이다.
그밖에 삼성경제연구소나 해외 주재원 등도 해당분야에 대한 정보보고를 꾸준히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의 정보수집력은 질과 양에서 정평이 나있다. 과거 김일성 주석 사망 소식을 청와대보다 삼성 정보라인이 더 빨리 감지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국회와 정당의 동향 파악을 위해 서울 여의도에서 주로 활동하는 국가 정보파트 직원들의 경우 보통 판공비로 한 달에 수백만 원을 쓴다. 그런데 정보수집과 인맥관리를 위해 쓰는 돈으로만 놓고 치면 삼성의 정보담당이 국정원 직원들을 능가한다. 업계 인사들 사이에서 ‘삼성 정보담당 직원들의 판공비는 무제한’이란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그러나 타 기업 정보담당 직원들이 마냥 부러워할 만한 일도 아니다. 국가기관의 정보보고가 중요 사안을 핵심 위주로 정리하는 보고서 형태인 반면 삼성의 정보보고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보고서에 필수양념으로 곁들여져야 한다. 언제 어디서 누굴 만나 무슨 이야길 했는지부터 시작해 해당 정보를 알려준 사람이 누구이며 그가 어떤 성향을 갖고 왜 이런 사안에 관심을 기울이는지에 대한 상세 내역 또한 삼성 정보보고서를 빛내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전해진다.
국정원이나 경찰 검찰 등에서 정보수집을 담당하는 직원들에게 중요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채택’이다. 이들이 윗선에 보고한 내용이 최고위층에 올라갈 사안으로 선택받는 것이 ‘채택’이란 단어로 통용되는 것인데 이는 삼성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정보보고된 내용이 ‘채택’되는지 여부와 그에 대한 이건희-이학수 라인의 피드백이 있는지에 따라 해당정보와 이를 보고한 직원에 대한 점수가 달라진다. 정보보고 시스템과 정보 수집 선별 방법이 국정원 체계를 앞서면 앞섰지 뒤지지는 않았을 것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다. 각 정보에 대한 점수가 쌓여 해당 직원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이다.
주요 언론사는 해마다 사회 각계 주요 인사들의 인적 사항을 정리·갱신해 인명사전을 만들거나 인터넷 유료 인물검색 서비스를 제공한다. 삼성도 마찬가지 업무를 하고 있다. 물론 서비스용은 절대 아니다. 정치인 관료 법조인 학자 등 각계의 오피니언 리더급 인사들에 대한 인적 사항을 조사하고 수시로 업데이트해 관리하는데 이 부분에서도 ‘어느 정부기관보다 앞선 자료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는 삼성 관련 주요 사안과 관련, 정부 정치권 관가 시민단체 등을 상대로 로비를 하기 위한 존안자료로 활용된다고 한다. 주요 계열사에 소속된 대외협력파트의 오피니언 리더들에 대한 존안자료 정리 수준이 계열사 사장단 업무평가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삼성은 자신들이 보유한 인맥을 통한 여론 주도 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삼성의 골칫거리였던 복수노조 허용 법안이 3년 유예된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에 대해 업계의 한 인사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정부 정책이 삼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동시에 해당 정보를 수집·분석해서 ‘친 삼성 여론 조성을 위한 방안’을 내놓는다”고 전한다. 삼성은 국정원이나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출신 인력을 스카우트해 관가·정치권 동향 분석과 로비에 활용하는 한편 삼성 출신을 역으로 국가기관에 진출시켜 정부부처 내에서의 ‘친 삼성 여론 확대’ 효과를 도모하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