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24일 구속되는 김재록 씨. 사그러드는 듯했던 ‘김재록 게이트’가 다시 타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
하지만 최근 김재록 씨와 인연을 맺은 탓에 검찰수사를 받았던 기업들 중 일부에 대한 논란이 재차 불거지면서 이들 기업과 관련된 정·관계 유력인사들의 이름이 검찰청사 안팎에서 나돌며 ‘재수사설’이 힘받고 있다.
구속수감된 김재록 씨에 대한 초기 검찰조사과정에서부터 여러 기업들과 정·관계 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됐던 것으로 알려져왔다. 검찰수사의 핵심은 과연 이들이 김재록 씨와 대가성 금품 수수 관계를 맺었는가에 있었지만 현대차 사건 외에 다른 기업들에 대해서는 뚜렷한 정황이 공개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김 씨 관련 수사를 받은 일부 기업들이 유력 정·관계 인사들을 통해 로비를 벌여 해당기업 수사에 물타기를 했다는 이야기가 법조계와 정치권에 퍼지면서 검찰의 김재록 게이트 수사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기획 부동산으로 출발해 중견 건설사로 자리를 굳힌 A 사는 김재록 씨 구속수사 초기부터 주목을 받아온 기업이다. 현대차 사옥 압수수색 직후부터 검찰청사 안팎에선 ‘김재록 게이트 불똥이 현대차 이후 A 사로 튈 것’이란 소문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검이 현대차 사건에 전력을 쏟고 있던 당시 서울지검은 A 사를 내사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A 사는 얼마 전부터 건설업·부동산업계 신흥강자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대형쇼핑몰 등을 성공시킨 후 건설업체 등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고 지난 2003년부터는 정보통신 기업이나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인수해 중견그룹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A 사 측은 최근 몇 년간 활발하게 벌인 인수합병 과정에서 김재록 씨와 잦은 접촉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김재록 씨 수사과정에서도 수사당국 인사들 사이에 A 사의 이름이 심심치 않게 거론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김 씨 구속 이후 현대차 다음으로 가장 오랜 내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A 사가 아직 검찰의 공개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은 배경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들이 쏟아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남 출신 K 전 의원과 A 사 B 회장 간의 인연이다. 전남의 한 지역을 기반으로 사업을 키워온 B 회장은 이 지역 출신 K 전 의원과 오랫동안 친분을 다져온 것으로 알려지며 이 지역 행사에 두 사람이 다정한 모습으로 함께 참석하는 장면도 여러 사람 눈에 띄었다고 전해진다. 김재록 씨는 주로 DJ 정권 시절에 왕성한 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DJ 정권 당시 권력실세였던 K 전 의원과 B 회장 그리고 김재록 씨가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을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A 사가 검찰의 내사를 받고도 건재한 배경에 K 전 의원의 영향력이 있을 것이란 이야기도 정치권과 검찰청사 주변에서 끊임없이 나도는 중이다.
▲ 대검찰청 | ||
A 사 못지않게 김재록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의 주요 수사대상으로 거론돼 온 기업 중 하나가 바로 C 사다. C 사 또한 A사와 마찬가지로 기업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급격히 불려왔다. C 사의 L 회장은 김재록 씨와 동향이며 몇 해 전 한 중견업체 인수과정에서 김재록 씨의 자문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김재록 씨가 C 사로부터 10억 원을 받았다고 진술했다’는 이야기마저 나돌고 있다.
C 사는 김재록 씨와의 관계 때문에 검찰조사를 받았지만 별다른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고 이에 따라 검찰의 C 사 수사도 사실상 종결됐다. 그런데 최근 들어 ‘C 사가 검찰 고위 인맥을 이용해 수사당국 내 우호적 여론을 조성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C 사는 올 초 한 중견기업 부회장을 지낸 Y 씨를 자사 임원으로 영입했다. 최근 한 정보기관은 Y 씨가 검찰 고위직을 지낸 S 씨와 친분이 두텁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Y 씨와 S 씨는 목포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S 씨는 아직도 검찰조직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신망이 두터운 인물이다. 즉, C 사가 Y 씨를 영입한 이유가 본격적인 검찰수사를 앞두고 검찰 인맥 요로에 선이 닿는 그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검찰 주변에선 긴급수혈한 Y 씨가 S 씨에게 도움을 요청해 C 사를 검찰 수사칼날의 끝에서 구해낼 수 있었다는 ‘뒷공론’이 나돌기도 했었다.
김재록 게이트 수사와 관련된 이런 문제점을 담은 보고서가 타 정보기관에서 올라간 만큼 검찰 또한 C 사를 다시금 주목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게다가 검찰 수사와 관련해 ‘S 씨 역할설’ 등의 소문이 검찰청사 안팎에서 나돌며 검찰을 불편하게 만들수록 C 사의 상황은 더욱 불리해질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여전히 검찰조직에서 거물급 인사로 통하는 S 씨가 김재록 게이트로 인해 구설수에 오를수록 재수사 가능성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C 사의 L 회장은 DJ 정권 실세였던 D 씨와 E 씨 등과도 교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만약 C 사와 검찰 고위직 출신 S 씨의 관계가 드러나면 이들 정치권 인사들 또한 안심할 수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만약 A 사와 C 사에 대한 수사가 검찰 고위직 출신 인사와 정치권 실세들의 개입으로 인해 축소됐다는 구체적 정황이 드러난다면 검찰의 김재록 게이트 수사는 기업들뿐만 아니라 정·관계 전반에 큰 파문을 몰고 올 수 있다. 특히 해당기업들과 관련된 정·관계 인사들이 모두 DJ 정권 때 요직을 지냈다는 점에서 대선정국을 앞둔 정치권과 관가를 덮칠 커다란 폭풍우가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