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김 씨 사건은 절대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이미 중년부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성관계 문제는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자리 잡았고 이로 인한 강력범죄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눈에 들어온 현장은 끔찍했다. 피해자 지 아무개 씨(55)는 경기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의 자택에서 3차례나 목 부위를 찔려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남편 김 씨는 경찰의 질문에 순순히 범행을 인정했다. 김 씨는 연신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도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 나 자제를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농업에 종사하던 김 씨 부부는 평소에도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말다툼이 잦았다고 한다. 겉으로는 4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부부로 살며 슬하에 2남을 둔 평범한 가정이었으나 부부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일 사건이 발생하던 날은 보통의 말다툼과는 달랐다. 금전적인 문제가 아닌 성관계가 사건의 발단이 됐기 때문이다.
오전 6시 45분 무렵 잠에서 깬 김 씨는 부인 지 씨에게 성관계를 요구했지만 단번에 거절당했다. 화가 난 김 씨는 부인에게 무차별적으로 주먹을 휘둘렀고 겁이 난 지 씨는 곧장 부엌으로 달려 나갔다. 지 씨는 남편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자 칼을 손에 쥐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힘으로 남편을 이길 재간이 없었던 지 씨는 결국 칼을 빼앗겼고 흥분한 김 씨는 아내를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이성을 잃은 김 씨는 수차례 아내의 목을 찔러 지 씨는 손써볼 틈도 없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그제야 김 씨는 정신을 차렸으나 이미 사건은 벌어진 상황. 당황했던 김 씨는 근처에 사는 아들을 먼저 떠올렸고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의 횡설수설하는 말을 들은 아들은 집으로 달려왔고 피가 흥건한 현장을 보고는 바로 119와 경찰에 신고했다.
용인동부경찰서 관계자는 “아내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김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피의자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 피해자 지 씨가 사망했기 때문에 사건의 전후사정은 김 씨를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김 씨의 진술에 따르면 평소 잦은 말다툼으로 인해 쌓였던 감정이 한순간에 폭발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성관계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수십 년을 함께한 아내를 살해한 것만으로도 충격적이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중년부부들의 상담 신청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중년부부의 경우 오랜 시간 함께한 세월이 있기 때문에 굉장히 복잡한 문제를 껴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바쁘게 살 땐 보이지 않던 상대방의 단점들이 눈이 거슬리기 시작하면서 성적 갈등을 겪다 상담을 요청하는 사례도 많다”고 전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평소 소홀히 대하던 아내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 각방을 쓰게 됐다거나 아내가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 성관계에 집착해 오히려 이혼위기에 놓인 사람까지 사연도 다양하다. 물론 성관계 거부로 인해 폭력에 시달리거나 칼부림이 났다는 사연도 종종 있다”며 “대부분은 아내가 성관계를 거절한다는 내용인데, 가끔 남편이 성관계를 거부해 부부관계가 멀어졌다는 사연도 있다. 어떤 경우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선행돼야 부부관계도 원만히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년부부의 성관계 거부로 발생하는 사건이 증가하는 현실에 대해서 한국범죄심리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상균 백석대 교수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였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중년부부한테서 단순히 성관계를 거부했다고 살인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분명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텐데 성관계 거부가 뇌관을 건드려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이르는 것이다. 중년부부의 경우 처음엔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관계였다 차츰 나이가 들어가면서 변화가 생긴다. 가정 내에서 아내의 발언권이 강화되면서 부부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김 교수는 생물학적인 원인도 중년부부의 갈등을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원인으로 분석했다. 그는 “여성은 40대 중반을 넘기면 여성호르몬이 줄어들고 대신 남성호르몬은 증가한다. 남성호르몬은 폭력성과 적극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부부관계에서 다툼이 잦아지고 갈등의 수위도 높아져 강력범죄로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출동 경찰 한눈 파는 사이에…
강 씨는 아내의 머리채를 잡고 욕실로 끌고 가 타일 바닥에 내리쳤고 결국 아내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미동도 없는 아내를 보고 죽은 것으로 착각한 강 씨는 제주서부경찰서 연동지구대에 “아내가 바람을 펴 죽였다”며 신고를 했고 경찰관 3명이 출동했다.
하지만 아내는 경찰을 보곤 필사적으로 기어 나와 도움을 요청했고 경찰도 아내를 병원으로 후송하는데 신경을 쓰느라 강 씨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내가 깨어나자 당황한 강 씨는 경찰이 자신에게 소홀한 틈을 타 부엌칼을 들고 다시 2차 범행을 저질렀다. 구급대원을 기다리던 아내에게 달려가 9차례나 찌른 것. 뒤늦게 경찰이 강 씨를 제지했으나 이미 아내는 숨진 뒤였다.
부부생활연구소의 한 상담전문가는 “일부 중년 남성들은 성관계를 통해 자신이 건재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성향이 있다. 이를 아내가 거절할 경우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폭행을 휘두르거나 심각한 경우는 살인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불행한 사건을 막기 위해서는 평소에 대화를 통해 부부관계를 개선시키려 노력을 해야 하며 스스로 이를 해결할 수 없을 땐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