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리막길 조심해~ 현대차는 원화강세로 줄어드는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최근 2013년형 그랜저 가격을 250달러가량 높였다. |
가장 뚜렷한 변화는 환율이다. 자동차주의 질주 이면에는 줄곧 1200원 안팎에서 형성된 원-달러 환율효과가 컸다. 이명박 정부 들어 수출을 늘리기 위한 고환율 정책을 펼치면서 최대 수혜를 입은 게 자동차인 셈. 그런데 최근 원-달러 환율은 1100원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미국은 세 번째 양적완화를 발표했고, 유럽 역시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통화공급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극복한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 열기가 뜨거워진 것도 시장에서 원화 값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시장에서는 환율이 10원 떨어질 때마다 연간 현대차는 800억 원, 기아차는 500억 원 정도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50원가량 떨어진다면 각각 4000억 원, 2500억 원이다. 연간 10조 원 넘게 영업이익을 내는 현 추세를 감안하면 치명적 수준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환율하락으로 인한 가격경쟁력 훼손은 실제 이익규모를 더욱 깎아 먹을 수 있다. 일례로 현대차는 원화강세로 줄어드는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최근 2013년형 그랜저 가격을 250달러가량 높였다. 임수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환율이 1050원 아래로 내려간다면 정말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화강세와 맞물려 도요타 등 경쟁업체들의 도전도 변수다. 리콜사태와 엔강세, 대지진 여파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최근 반격의 기치를 올리고 있다. 도요타의 경우 9월 미국시장에서 파격적인 마케팅을 벌인 덕분에 전년 동월대비 무려 42%나 판매대수가 늘었다. 최근 파워윈도 관련 리콜로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안전과 직접 관련된 부분이 아닌 만큼 그 타격이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내수시장 경쟁도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세계 최고 경쟁력을 자랑한다는 독일차들의 공습 때문이다. 최근 정부는 내수진작을 위해 자동차에 대한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를 취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수입차 업체들이 그 혜택을 고스란히 가져갔다.
지난 9월 국내 완성차 판매대수는 작년 동기대비 6.6% 줄었다. 반면 수입차 판매(신규등록)는 14.6% 늘면서 국내 승용차 시장 점유율은 10.7%를 기록했다. 이 같은 수입차 돌풍의 주역은 BMW와 벤츠, 아우디, 폴크스바겐, ‘독일 4인방’이 주도하고 있다. 특히 중대형 승용차 부분에서의 잠식은 심각할 정도다. 유럽 재정위기로 유로화가 초약세를 보이면서 독일차의 가격경쟁력은 크게 높아졌다. 게다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EU FTA 등이 잇따라 체결되면서 세금 부담도 앞으로는 계속 줄어들게 된다.
현대차그룹의 전체 판매량에서 국내 판매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해외 판매량보다 적지만, 수익기여도는 국내 판매량이 월등히 높다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해외에서는 주로 중형 이하 차종이 많이 팔리는 데 반해, 국내에서는 중형차 이상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고부가 차종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7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모델변경이나 신차가 나올 때마다 자동차 가격을 크게 올려왔다. 대체재가 없다면 현대·기아차의 독주는 계속됐겠지만, 문제는 계속된 가격인상으로 수입차와의 가격 격차가 급격히 줄어들게 됐다는 점이다.
▲ 기아 k9 |
이 같은 시장요인과 함께 현대차그룹을 압박하는 또 다른 요인은 정치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대선 후보가 공통으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내세우고 있는데, 대표적인 규제책이 순환출자와 일감 몰아주기다. 현대차는 국내 대기업집단 가운데 가장 심각한 순환출자 문제와 글로비스 등 일감 몰아주기 사례를 가진 곳이다.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해소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으로의 지분상속을 위해서는 세 회사 중 한 회사가 가진 다른 회사 지분을 대거 사들여야 한다. 물론 이 경우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현금 마련이 필수적인데, 정치권에 의해 이 길이 막히면 ‘돈 만들기’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이야 이재용 사장으로의 상속이 70% 이상 진행됐다고 볼 수 있지만, 현대차그룹의 경우 이제 20~30% 진행됐을 뿐”이라며 “이미 70세를 넘긴 정몽구 회장의 나이를 생각할 때 하루빨리 후계구도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차기 정부에서 강력한 재벌 개혁장치를 구축한다면 현대차로서는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수성향의 이명박 정부에서 주춤했던 노사갈등이 차기 정부에서 수면위로 불거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비정규직 문제, 가격경쟁력 강화를 위한 생산시설 해외이전 등은 노조를 자극할 만한 충분한 요소들이다. 이는 기아차의 3분기 실적에 대한 우려가 더 큰 이유가 노조파업으로 인한 생산차질이라는 점에서도 노사 변수의 위력을 새삼 알 수 있다.
현대차 주가는 지난 4월 26만 원대에서 7월 22만 원까지 하락했다가 최근 23만 원대에서 횡보하고 있다. 기아차도 4월부터 시작된 하락세가 9월 들어 더욱 가팔라지는 모습이다. 현재 시가총액은 현대차가 51조 원, 기아차는 28조 원이다. 현재 코스피 주가수익비율(PER)은 9~10배. 현대차는 연간 5조 원, 기아차는 3조 원 정도 이익을 내는 수준을 반영한 주가다. 현대차의 경우 분기당 2조 원가량 이익을 내고 있어 저평가라고 얘기할 수 있지만, 기아차의 경우 분기당 1조 원 이익 달성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현 주가가 저평가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