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의 인도 첸나이 공장이 앨라배마, 베이징 공장과 더불어 성공적인 해외 생산기지로 각광받고 있다. | ||
지난해 현대차 생산 차량 중 내수시장에 풀린 것은 56만 9721대뿐이다. 생산량의 76%를 수출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는 성장이 정체된 내수시장을 감안해 지속적인 성장 발전을 위한 동력으로 글로벌 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대차 인도 공장은 지난해 완공된 미국 앨라배마 현지 공장, 중국 베이징 현대기차와 더불어 현대차가 개척한 성공적인 해외 생산기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지난 9월 정몽구 회장이 직접 인도 현지를 방문해 직원들을 독려하고 제2 인도 공장 추진과 생산량 증대를 선언했을 정도로 정 회장과 현대차그룹의 기대가 크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듯 지금 인도 도심 거리에선 현대차가 만들어낸 승용차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로 현지인들 사이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현대차 인도 공장이 들어서 있는 곳은 뱅골만에 인접한 인도 남부 최대 도시 첸나이 지역. 이 일대에서 현대차 직원들은 제법 인기가 높은 편이다. 현지인들은 동양인 관광객에게 ‘현대 사람이냐’고 묻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현지인들이 “이곳에서 ‘현대차’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 “이곳 지역민들의 바람 중 하나가 현대차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라 말할 정도다.
현대차 공장은 어느새 첸나이 지역의 명소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인천국제공항과의 비교는 고사하고 서울에 있는 고속버스터미널 규모와 맞먹을 정도의 첸나이 공항, 포장 상태가 불량한 도심 도로와 차선을 무시한 채 마구잡이로 달리는 자동차들, 공터마다 수북이 쌓인 쓰레기 더미가 첸나이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이를 보면 ‘첸나이라는 곳이 국내 재계 2위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전략 기지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러나 공항에서 35㎞ 떨어진 현대차 공장의 위용은 60~70년대 우리나라를 연상시키는 첸나이 도심 풍경과는 대조적이다. 공장 입구에 들어서면 쾌적하게 단장된 잔디밭과 야자수 나무들로 꾸며진 공원이 눈에 띈다. 깔끔하게 닦인 도로 위로 다니는 깨끗한 차량들과 쾌적한 환경을 보노라면 ‘왜 현지인들이 이곳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절로 풀린다.
현재 인도 현지에서 현대차가 거두고 있는 성공과 현지인들이 현대차 브랜드에대해 갖고 있는 친근감 신뢰감만 놓고 보면 인도 토착기업을 무색하게 할 수준이지만 정작 현대차가 이곳에 뿌리를 내린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96년 공장 건설을 위한 첫 삽을 떠서 98년 10월 완공 직후 상트로(국내명 비스토)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상트로가 대히트를 치자 현대차 인도 공장은 99년 10월 액센트(국내명 베르나)를 생산라인에 추가했다. 지난 2001년 7월 쏘나타 생산을 시작했으며 2004년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 XD)와 겟츠(국내명 클릭)을 추가한다. 상트로 생산 직후부터 소형차에서 대형차에 이르는 풀라인업을 구성하는 데 불과 3년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첫 삽을 뜬 지 10년이 지난 지금 인도 첸나이는 현대차에게 ‘기록의 땅’이 돼 있다. 상트로와 액센트는 인도 현지에서 판매되는 동급 차종 중 판매율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쏘나타는 현지에서 벤츠와 견줄 정도의 고급 차종 대우를 받고 있다. 지난 98년 최단 기간(17개월) 내 공장 설립에 이어 인도 공장 양산 19개월 만인 2000년 4월 생산누계 10만 대를 돌파했고 2003년 12월 인도에서 최단기간 생산누계 50만 대를 기록했다. 그리고 지난 2005년 10월 최단기간 수출 20만 대 달성, 그리고 2006년 3월 인도 자동차업계 사상 최단 기간 내 총생산 100만 대를 달성하는 등 인도 자동차 업계의 유례없는 신기록 행진을 벌여온 것이다. 올 상반기 판매량 집계에서 인도 자본 회사인 마루티가 시장 점유율 49%를 차지해 1위에 올라있으며 현대차가 18.1%를 차지해 현지 판매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현대차 인도 공장은 수출전진기지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인도 공장에서 생산되는 차량 중 35~40% 정도가 인도 밖으로 수출된다. 현대차 인도 공장은 2007년 10월 제2 공장 완공에 맞춰 연간 총 생산량 60만 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때가 되면 수출비중은 생산량의 50%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인도 공장은 이제 명실상부한 첸나이 지역 대표 산업시설로 우뚝 섰다. 이제 겨우 8년밖에 안된 현대차 인도 공장이 과열경쟁 양상을 보이는 인도 자동차 시장에서 유수의 해외 업체들을 누르고 현대차의 글로벌 생산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역민들의 두터운 지지를 받으며 단기간 내에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100% 단독 투자에 따른 독자적인 현지 경영전략의 성과로 볼 수 있다. 지난 96년 현대차는 첸나이에 있는 65만 평 부지에 총 9000억 원을 투입해 자급자족형 자동차공장 건립을 시작했다. 인도 시장에 진출한 다국적 자동차기업들과는 달리 엔진 트랜스미션 프레스 차체 도장 등 자체 자동차 완공 라인은 물론 주행시험장과 연구시설까지 갖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공장 안에서 자동차에 대한 초안과 설계도면 완성으로 시작해 차체 조립, 엔진 탑재 등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모든 공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급변하는 현지 시장상황에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초기 투자가 오늘날의 성공신화를 불러온 주 요인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높은 경쟁력을 갖춘 생산라인에 못지않게 ‘현대’라는 브랜드가 현지 주민들에게 주는 자긍심 또한 인도 공장의 성공 요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미 지역민들은 현대차가 지역경제에 엄청나게 이바지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 현대차 인도 공장 입구. 현지인들의 자긍심이 대단하다고(위). 2005년 10월 수출 20만대 달성 기념식 장면. | ||
직원들의 근무여건도 호평을 듣는 이유 중 하나다. 공장 내에서 주간 근무자에게 하루 세 번, 야간 근무자에겐 하루 두 번의 식사가 제공되며 직원 복지를 위해 공장 내 공원이 조성돼 있고 그 안에 정부로부터 분양받은 수백 마리 돼지가 사육되고 있으며 넓은 채소밭도 꾸며져 있다. 때문에 공장 노동자들은 물론 현지인들 상당수가 ‘일하고 싶은 곳’으로 꼽을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다.
현지 자동차 판매 1위는 인도 업체인 마루티가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차의 차종은 마루티의 모든 차종보다 5%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음에도 높은 판매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상트로와 액센트가 동급 차종에서 마루티의 차종을 누르고 판매율 1위를 기록하는 것이나 쏘나타가 우리나라로 치면 벤츠나 BMW 같은 대접을 받으며 고급 승용차의 위용을 뽐내는 것만 봐도 현대차 브랜드 이미지가 어떤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인도 내 다국적 자동차업체들이 자국의 구형 모델들을 들여와 생산 판매하는 것과는 달리 현대차는 국내 최신형 모델들을 공급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상트로 겟츠 액센트 엘란트라 쏘나타 등 다섯 가지 차종을 현지 실정에 맞게 생산 판매해 인도의 거리를 달리는 현대차가 최신 기술과 스타일을 갖춘 고품격 차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왔다. 또 단순히 최신 모델 판매에 그치는 게 아니라 현지에 비포장 도로가 많은 점을 감안해 차체를 높이는 등 현지화를 위한 노력을 병행했다.
광고마케팅에선 인도 현지의 미디어 문화의 틀을 깬 한국형 기업 광고 스타일에 현지 최고 모델인 샤룩 칸을 전속모델로 기용해 감각적이라는 평을 얻으며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도 성공했다.
무작정 판매망을 넓히기보다는 정비공장이 없으면 딜러 허가를 내주지 않는 식으로 고급 판매 시스템을 구비해 소비자들의 욕구를 당기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전국적으로 400여 개 정비망이 구축돼 있으며 긴급 정비차량 운행, 권역별 부품공급기지 운영 등 고객관리 프로그램들이 호평을 받고 있다.
현대차가 현지에서 실시하는 사회공헌활동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인도는 한국에 비해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곳이다. 첸나이 공항에서 현대차 공장까지 이르는 길에 아스팔트가 깔려있긴 하지만 비포장도로보다 나을 것이 없는 수준이며 트럭 같은 대형차량들이 중앙선을 무시하고 달리기 일쑤다. 인도는 교통사고로 연간 10만 명이 사망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현대차는 현지에서 연간 150명의 학생을 모집해 교통관련 교육을 실시한 뒤 120명을 선발해 교통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로서의 의무를 수행한다는 차원에서다. 이들 학생들에겐 장학금이 지급되고 있으며 이를 주관하기 위한 HMI(Hyundai Motors India)재단이 지난 4월 설립됐다. 이 재단은 의료 교육 직원봉사 재난구호 및 기부 등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사회 문화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으며 현지인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인도의 자동차 수요시장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미국이 1000명 당 800대, 유럽이 500대, 그리고 우리나라가 300대 승용차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인도는 아직 6대 수준에 불과하다. 인도에서 자동차가 사치품이 아닌 생필품이 되는 날까지 현대차의 고공행진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을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
현대차 인도 첸나이 공장부지는 약 60만 평에 이른다. 60만 평이 모두 평지인 탓에 공장의 마당에 서있으면 지평선이 보인다. 아침에 해 뜨는 장면과 저녁에 해 지는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는 광활한 대지 위에 서 있는 현대차 인도 공장은 인도라는 거대한 제국 안에 있는 작은 제국과도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인도 첸나이=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