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언이설로 할부금 피해자에게 넘기고 차는 본인이 갖고 잠적…유명 유튜버가 소재 추적, 수배 3년 만에 체포
피해자를 다수 만든 이 씨는 ‘슈퍼카 카사노바’라고 불린다. 이 씨는 피해자들에게 호감을 얻어낸 뒤 그 호감을 이용해 사기 행각을 벌여왔다고 한다. 일종의 ‘로맨스 스캠’이다. 이 씨 사건은 관련 사건 고소장과 녹취 내용, 관련자 인터뷰 등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
피해자 A 씨는 이 씨를 2020년 한 술집에서 우연히 만나게 됐다고 한다. A 씨는 “외지에 나와서 힘든 시기였는데 우연히 만난 이 씨가 말을 정말 잘했다. 다정다감하게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는 말을 해서 짧은 순간에 사람 마음을 딱 빼간다”고 말했다. 당시 튜닝숍을 2개 운영한다고 밝힌 이 씨는 온몸에 명품 의상을 걸치고 있었고, 슈퍼카, 고급 차 등을 타고 다녔다. 그럼에도 이 씨는 자신이 ‘전과가 있다’라거나, ‘집이 잘살진 못했지만 자수성가했다’ 등 드러내기 어려운 얘기까지 진솔한 것처럼 말해 신뢰를 쌓는다고 한다.
이 씨는 A 씨와 만남을 이어가면서 결혼 얘기도 꺼내기 시작했다. A 씨는 “이 씨가 ‘두 달만 살아보자. 두 달 살아보고 잘 맞으면 결혼하자’ 등의 얘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A 씨는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꿈만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된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뒤 갑자기 이 씨가 제안을 하나 하게 된다. 이 씨는 “직원이 암에 걸려서 이런 좋은 차가 있으면 (치료 받을 때) 국가에서 혜택을 못 받는다. 차 명의를 잠깐 몇 달만 너에게 넘겼다가 내가 다시 딴 사람한테 옮기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씨는 이렇게 6개월 정도만 명의를 옮겨 놓는 대신, 차 할부금, 보험료 등 부대비용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 씨가 할부금 등을 주지 않고 그대로 잠적해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기 일쑤였다. 사랑을 속삭이던 남자의 갑작스러운 돌변에 A 씨는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몇 번 시도 끝에 전화를 받은 이 씨는 갚을 생각이 없다는 듯이 전화하지 말라며 욕을 하기도 했다. 2020년 7월 A 씨는 이 씨와 연락이 아예 두절됐다.
이후 A 씨가 지속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아예 없는 번호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2021년 4월 A 씨는 혹시 하는 마음에 이 씨에게 돈을 돌려받기 위해 전화를 했는데 이번에는 B 씨가 전화를 받았다. 이 씨 번호는 새롭게 전화번호를 바꾼 B 씨가 사용하고 있었다. B 씨는 “전화번호를 바꿨는데 끊임없이 전화, 문자가 온다. ‘고소할 거다’라거나 ‘경찰이다’ 등의 문자도 왔다. 어떨 때는 밤새 이상한 문자 18통이 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B 씨 도움으로 이 씨의 다른 여자 친구들, 다시 말해 또 다른 피해자들과 연락이 닿기 시작했다. 피해자는 A 씨 혼자가 아니었다. 단체 메신저 채팅방에 모인 피해자만 14명에 달했다. 이 씨 피해자 사례를 모아보니 대부분 차량 명의 이전 방법으로 피해를 보았다. 이 씨는 처음 A 씨와 비슷하게 진지하고 깊은 관계인 척 환심을 산 뒤, ‘사업이 힘들다’ ‘직원들 월급을 못 줬다’ ‘본인이 사기 당하여 본인 명의를 사용할 수 없다’ 등의 이유로 슈퍼카, 고급 차 등을 명의이전 했다. 이후 이 차량은 ‘개인 렌트로 돌리겠다’ 등의 이유를 대며 대포 차량으로 날려 찾을 수도 없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씨는 고급 차 할부금은 피해자들이 내고, 차량은 이 씨가 갖게 되는 방법으로 이익을 취했다.
이 씨 피해자 가운데에는 여성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알려진 남성 피해자도 2명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이 씨가 보여준 재력에 속아 사기를 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 할부금을 내준다는 약속과 달리 이 씨는 이후 잠적하고, 차는 사라져 찾기도 어려웠다는 점이 대략 비슷했다. 피해가 큰 경우 2억 원 이상 피해를 본 경우도 있었다. 차를 받은 피해자들은 차도 찾을 수 없는 데다, 할부금이 내기 어려워 개인회생을 신청하려고 해도 차량 캐피털 등의 이유로 개인회생, 파산 등을 할 수도 없어 경제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에 몰린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 C 씨는 개인회생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C 씨는 “5년째 버는 돈을 차량 할부금에 대출금 갚는 데 쓰고 있다. 차만 찾아도 반납해서 자동차 할부금을 줄일 수 있는데 찾을 방법이 없다. 결국 개인회생 알아보고 신청해 진행 중”이라며 막막해 했다. 채팅방에 모인 14명 가운데 차를 찾지 못한 사람은 7명 정도라고 한다. 채팅방에 없는 피해자도 많을 것으로 추정돼 피해액은 예상보다 커질 가능성이 있다.
2020년 즈음부터 피해자들은 이 씨를 고소했지만, 경찰은 이 씨 행방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건을 기소중지하고 수배를 내려뒀다. 피해자들은 “경찰이 수배를 내리면 적극적으로 찾을 줄 알았는데 생각과 달랐다. 어디에 있을 것 같다고 말해도 찾아가 보지도 않더라. 경찰이 적극적으로 찾을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접었다”고 입을 모았다.
수배가 떨어진 뒤에도 이 씨 피해자는 계속 늘어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서울, 충청권, 경기도, 강원도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며 피해자를 만들었고 심지어 최근인 2024년에 사기를 당한 피해자도 있다고 전해진다. 피해자들은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 제보를 해 이 사건을 널리 알리게 됐다. 제보를 통해 이 사건은 2021년 4월 ‘궁금한 이야기 Y’에 ‘슈퍼카를 탄 카사노바, 남자는 왜 사랑이라 쓰고 돈이라 읽나?’라는 제목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이후 피해자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보배드림’,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씨 얼굴 사진과 신상을 공개했다.
범죄와 관련된 콘텐츠를 주로 다루는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 미디어’를 운영 중인 이세욱 씨는 유튜브 채널에 슈퍼카 카사노바 사건을 올린 뒤 약 3년 동안 그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세욱 씨는 “피해자들 얘기를 들으며 이 씨를 꼭 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약 3년 동안 이 씨 관련 익명 제보가 들어왔는데, 허무맹랑한 제보는 거르고 내용이 구체적이면 틈틈이 시간 내서 확인했다”면서 “2년 전 제보 내용을 보고 부산에 갔는데 사실이 아니었고, 1년 전 충주에서는 도착 2시간 전에 제보자가 주변 사람에게 말했는데, 그 주변인이 이 씨에게 말해버려서 결국 그가 도주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세욱 씨는 “그런데 2024년 3월 이메일로 한통의 익명 제보가 들어왔는데 은신처에 대한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서 급히 강원도 원주로 달려갔다. 제보자가 알려준 한 아파트의 복도에서 현관문 넘어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그동안 피해자들과 통화했던 녹취 음성의 목소리가 맞았다”며 “경찰에 ‘수배자가 있다’고 신고했고 경찰관이 곧바로 체포했다. 3년여의 추적이 끝나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세욱 씨는 사기 사건을 대하는 수사기관 행태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씨는 “경제적 살인이라고도 불리는 경제 범죄, 즉 사기를 당해 피해를 본 경우 결국 자기 자신을 탓하다 우울증까지 겪게 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빈번해 폭행이나 절도 사건만큼 심각하다”면서 “그런데 사실 관계를 깊이 있게 따져봐야 하는 경제 범죄의 경우 경찰에서 구속기간 내에 수사를 종결해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강력 범죄만큼의 큰 포상이 뒤따르지 않는 등의 이유로 다소 미온적으로 느낄 만큼 속도감이 낮은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슈퍼카 카사노바 이 씨가 잡히면서 아직 고소를 못한 피해자들도 고소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 씨는 “카라큘라가 신고를 통해 잡게 돼 너무 감사하다. 다만 이 씨가 잡혔다고 피해를 변제받으리라는 기대는 애초에 없다. 이미 돈을 다 쓴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씨가 더 이상 사기 행각을 벌이지 않도록 이 사건을 알리고, 끝까지 엄한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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