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소비 지양하고 목표 금액 모아 조기퇴직’ 계획…파이어족 모여 교류하는 ‘청년 양로원’도 등장
산둥성에서 사는 왕 아무개 씨(여·36)의 목표는 ‘300만 위안(5억 7000만 원)’을 모으는 것이다. 왕 씨는 얼마 전 꿈을 이뤘다. 계좌에 300만 위안이 찍히는 순간, 왕 씨는 회사에 사표를 냈다.
왕 씨는 2014년부터 파이어족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 ‘미니멀리즘’을 실천했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만 구입했고, 나머지 돈은 모두 예금했다. 월급 외 여러 부업도 병행했다. 그 결과 10년 만에 ‘300만 위안’을 달성할 수 있었다.
현재 왕 씨는 집과 차를 대출 없이 소유하고 있다. 부모님이 건강할 뿐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큰 도움이 필요 없는 상황이다. 왕 씨 조기퇴직엔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다. 더군다나 거액의 예금 덕분에 매달 9000위안(170만 원)의 이자가 나온다. 왕 씨는 “사표를 낼 때 전혀 스트레스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왕 씨는 사표를 낸 후 그동안 절약을 하느라 하지 못했던, 또 원했던 삶을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여유롭게 브런치를 먹은 후, 헬스클럽에 가 운동을 한다. 친구를 만나거나, 공연 등 문화생활도 즐긴다. 왕 씨는 “그냥 먹고 마시며 논다. 너무나 만족스럽고 또 여유롭다”고 웃었다.
왕 씨는 평소 생활을 영상으로 찍어 SNS에 올렸고, 이는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중국 젊은이들에게 다소 생소했던 파이어족이라는 개념도 빠르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왕 씨의 한 팬은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도 도전해볼 걸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주변 환경상 그러기 쉽지 않다. 다만 왕 씨 영상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팬도 댓글을 통해 “우리는 일과 물질에 얽매여 마음 속 깊은 곳 진정한 욕구 추구를 소홀히 한다. 조기퇴직은 단순히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면의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며 “왕 씨가 겪은 일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체험”이라고 설명했다.
파이어족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선 긍정적인 반응이 우세하다. 한 유명 블로거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왕 씨 이야기는 삶의 태도에 대한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왕 씨가 조기퇴직을 한 것만 봐서는 안 된다. 과도한 소비를 거부하고 부를 축적하는 데 중점을 둔 개인의 선택을 누가 비판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베이징대학에서 윤리를 담당하는 교수도 TV에 출연해 “물질적 욕망이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종종 부의 축적과 계획을 무시하고 끝없는 물질적 향수를 추구한다. 왕 씨의 선택은 적절한 소비와 합리적인 자금 관리가 재정적 자유를 실현하는 열쇠임을 알려준다”고 분석했다.
왕 씨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파이어족’ 사례들이 여기저기서 소개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윈난성의 이른바 ‘청년 양로원’이 큰 화제다. 허베이성 출신 루레이가 만든 청년 양로원은 파이어족을 위한 보금자리다. 루레이는 “조기에 퇴직한 젊은이들이 서로 모여서 교류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32세인 루레이는 과거 20여 개 나라를 여행하면서 파이어족이 되기로 결심했다. 루레이는 “다른 나라 젊은이들이 갖고 있던 여유, 아름다운 휴식처 등이 부러웠다”고 말했다. 운 좋게 직접 운영했던 유스호스텔 영업 실적이 좋아 원했던 돈을 모았다. 그리고 청년 양로원 ‘문소’를 열었다. 문소는 ‘물어보는 보금자리’라는 뜻이다.
청년 양로원의 일정표는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테이블에서 커피와 함께 간단한 식사를 한다. 작은 뜰에서 체조를 한 후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그 후는 자유 일정이다. 낚시, 농사, 독서, 쇼핑 등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하면 된다. 이 일정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
루레이는 “젊은 나이에 왜 노후를 보내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30~40대에 막막한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파이어족은 멈추는 게 아니다. 문소는 회원들에게 누울 것을 권하는 게 아니다. 잠깐 쉬었다가 다시 새로운 삶으로 출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루레이의 청년 양로원은 방 12개가 모두 만석이다. 대부분 30대다. 입주하려면 최소한 한 달 이상 묵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루레이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다. 삶을 더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주고 싶다. 우리는 밭에 나가 소몰이를 하고, 강에서 노 젓기 등을 한다. 또 서로 사진과 같은 취미를 공유하거나 차담을 한다. 우린 서로 공부하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초조함을 달랜다”고 설명했다.
허베이성 심리학회 서기장인 위안리좡은 “청년 양로원은 스트레스를 받는 젊은이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는 장소”라고 분석했다. 그는 “전문적인 상담만 능사가 아니다. 휴식을 통해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도 길러줘야 한다. 또 긴장을 풀 수 있도록 사회가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루레이의 청년 양로원을 본뜬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베이징 청년 리샤오란은 최근 외삼촌 집 마당을 ‘청년 휴식처’로 바꿔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젊은이들은 차를 마시거나 보드게임을 할 수 있다. 수공예품 등을 만드는 장소도 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된다. ‘멍 때리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리샤오란은 “이 작은 마당은 비영리적으로 운영된다. 손님들이 스스로 청소를 한다. 또 먹을 것을 싸와서 서로 교환하기도 한다. 아직은 장소가 좁아 예약 손님만 받고 있다. 나도 정기적으로 출근하는 게 아니고, 마음 내킬 때 들른다”고 밝혔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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