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 할로 |
현장 상황은 이랬다. 폴 번의 손에선 발사 흔적이 있는 38구경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탁자 근처엔 38구경 권총이 한 자루 더 있었는데 발사 흔적은 없었다. 그 곁엔 “친애하는 그대에게 / 불행하게도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행한 끔찍할 정도로 잘못된 일을 보상하고 나의 참담한 굴욕을 지우는 유일한 방법이군요. 사랑해요 / 폴이 / 지난 밤 일은 단지 코미디였다는 것을 이해해주었으면 해요”라는 메모가 담긴 방명록이 있었다. 이것이 전부였고 나머지 증거들은 MGM 스튜디오의 홍보 담당자가 모두 치워버렸다. 그럼에도 경찰은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고 조작된 현장과 믿을 수 없는 검시 결과를 바탕으로 폴 번이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돌았던 루머 중 가장 강력한 건 폴 번의 임포텐스가 자살의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스무 살이 갓 넘은 아내를 만족시키기엔 그는 너무 약한 남자였고 그 자괴감이 그를 자살로 몰고 갔다는 것이었다. 이때 폴 번의 형인 헨리 번이 동생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 등장했다. 그러면서 일이 커졌다. 헨리 번은 동생과 성관계를 맺었던 도로시 밀레트라는 여성을 언급했는데, 그녀는 폴 번과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여성이었던 것이다.
도로시 밀레트는 배우 지망생 시절 뉴욕의 연기 학교에서 폴 번을 만났다. 그들은 사랑에 빠졌는데, 그들의 사랑을 가장 시기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폴 번의 어머니였다. 정신병을 앓고 있던 그녀는 자신이 아들의 유일한 여자이길 원했고, 도로시라는 경쟁자에게 아들을 빼앗기자 자살했다. 1911년의 일이었고 이때 폴 번의 나이는 22세였다. 이 사실에 도로시 밀레트는 큰 죄책감을 느낀 나머지 정신 질환을 앓게 되었고 한 동안 코네티컷의 요양원에서 지냈다. 회복된 후 다시 배우의 꿈을 안고 맨해튼으로 갔고 폴 번은 그녀의 생활비를 대며 이따금씩 편지를 보냈으며 뉴욕 출장길에 종종 만나곤 했다.
그녀는 1932년에 샌프란시스코의 언니 집으로 왔다. 할리우드로 진출하려는 계획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진 할로와 폴 번의 결혼식을 깨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폴 번은 할로와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도로시 밀레트 역시 세상을 떠나 버린 것이다. 폴 번이 죽은 지 6일 뒤 하필이면 폴 번의 장례식이 있던 1932년 9월 11일 새크라멘토 리버에서 도로시 밀레트는 사체로 발견되었다. 강 위의 페리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추정된 자살이었다.
▲ 폴 번(왼쪽)과 진 할로 부부. 자살로 알려진 폴 번의 죽음에 대해 1960년 재수사가 이뤄지는 등 살해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
하지만 의혹 제기만 있을 뿐 정확한 사실 관계를 밝혀내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MGM의 간부들은 증거를 철저히 조작했고, 경찰의 수사는 느슨했으며 사건 현장을 처음 발견한 증인들도 스튜디오의 가이드에 따른 증언을 했다. 세월은 흘러 1960년. 드디어 재수사가 이뤄졌다. <플레이보이> 1960년 11월호에 시나리오 작가인 벤 헥트는 “폴 번은 어떤 여성에게 살해되었고 수사 과정에서 자살로 조작되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쓴 것. 이 기사는 큰 파장을 일으켰고, 드디어 경찰도 나섰지만 결론은 “한낱 루머”였다. 벤 헥트는 그 ‘어떤 여성’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1990년에도 한 차례 얘기가 있었다. 당시 폴 번의 친구이자 MGM의 시나리오 파트 책임자였던 새뮤얼 막스는 폴 번이 죽었을 때 스튜디오 간부가 현장을 조작하는 것을 보았으며, 다음 날 회의에서 “임포텐스를 비관한 자살”로 몰고 가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새뮤얼 막스는 “폴 번은 도로시 밀레트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그녀는 폴 번을 죽인 후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폴 번만큼 비극적인 삶을 산 사람은 진 할로였다. 그녀는 폴 번이 죽은 지 5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요독증. 신장 기능이 점점 정지하며 몸에 독성 물질이 쌓이는, 당시로선 치료 불가능한 병이었다. 5세 때 뇌막염을, 15세 때 성홍열을 앓은 뒤 사구체신염으로 고생하던 진 할로는 고혈압과 함께 신장 질환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알코올중독, 잘못된 낙태 수술 후유증, 과도한 다이어트, 일사병, 염색으로 인한 중독, 다양한 성병 등 죽음의 원인에 대한 수많은 루머가 돌았지만 모두 낭설이었고, 그녀는 불치병 속에서 조금씩 얼굴이 부어가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 26세. 열여섯 살 때 첫 결혼을 한 후 10년 동안 진정한 사랑을 원하며 세 번의 결혼과 숱한 로맨스를 시도했던 여성은 단 한 번도 행복한 시간을 경험하지 못한 채, 오로지 ‘스타’라는 이름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