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검찰청(왼쪽)과 서울중앙지법 전경. 검찰과 법원의 갈등 배경에는 정치권과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시선도 있다. | ||
검찰은 외환카드 주가 조작 혐의로 유회원 론스타 코리아 대표의 구속영장과 엘리트 쇼트 론스타 부회장, 마이클 톰슨 론스타 법률 담당 이사의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가 법원으로부터 두 번 연속 기각을 당했다. 검찰을 향해 “공부를 다시 하라”며 면박을 준 법원의 강경 대응에 대해 검찰은 “다른 판사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감정적으로 맞받아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검찰에 대한 법원의 강압적 태도는 다른 사건에서도 볼 수 있었다.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의혹 사건 재판과정에서도 법원은 검찰 측에 “유죄 입증을 하기에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증거 재수집과 제출을 명한 바 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돼 있는 사건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기싸움이 이번 론스타 사건 처리과정에서도 재현됐다는 평이다.
론스타 수사 관련 검찰-법원 갈등은 양측의 감정의 골이 깊다는 일반적 시각을 넘어서 각자의 내부 사정이 이들의 감정다툼에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검찰은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사건 수사과정에서 ‘몸통은 건드리지 못하고 깃털만 잡아 들인다’는 비아냥거림을 감수해야만 했다. 당초 이 사건의 본류로 검찰이 이헌재 사단을 겨냥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법조계와 정치권에 파다하게 퍼졌던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헌재 사단의 중심인 이헌재 전 부총리나 오호수 전 증권업협회장에 대한 결정적 정황을 포착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헌재 사단의 주니어급 인사인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 구속되면서 이번 사건이 ‘변양호 게이트’로 싱겁게 마무리될지도 모른다는 관측마저 나돌 정도였다.
검찰은 결정적 정황을 포착했다며 론스타 임원들에 대한 영장을 신청했지만 실제로 이들을 옭아맬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로비를 담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스티븐 리 론스타 코리아 전 대표가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고 쇼트 부회장 등 론스타 임원진이 검찰에 비협조적인 상태다. 법원의 영장기각도 검찰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검찰이 영장기각 사태를 겪는 과정에서 이헌재 전 부총리 소환 방침이 흘러나온 것에 주목하는 시선이 늘고 있다. 검찰은 조만간 이헌재 전 부총리를 소환해 당시 론스타의 법률자문사인 김앤장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동안 검찰은 이 전 부총리에 대해 계좌추적과 출국금지 조치 등을 취했음에도 소환조사 여부에 대해선 분명한 입장을 보이지 않아왔다. 이런 까닭에 ‘검찰이 이 전 부총리를 겨냥하고도 결정적 정황 확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돌기도 했다.
이 전 부총리 소환방침이 공개된 것은 검찰이 론스타 임원들에 대한 영장을 신청한 직후인 11월 초다. 이후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면서 검찰이 수세에 몰렸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이헌재 사단 수사와 관련해선 검찰이 여유를 갖게 됐다는 평이 나돌게 됐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검찰이 이헌재 전 부총리의 불법행위 규명에 실패하더라도 영장 기각을 일삼은 법원에 비판의 화살을 돌릴 수 있게 됐다”고 밝힌다. 론스타 임원진 영장 기각을 두고 ‘법원이 국부유출 주범을 잡아들이는데 소홀하다’는 비판론이 일각에서 제기된 바 있다.
▲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 ||
검찰의 한 관계자도 사견을 전제로 “이헌재 전 부총리를 옭아맬 수 없더라도 큰 부담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헌재 사단 수사에 최선을 다했으나 법원이 론스타 사건에 대한 영장 기각을 남발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식의 여론형성이 가능할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한편 법원의 영장 기각 배경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의 배후로 지목한 것으로 알려진 이헌재 사단과 관련해 ‘법원과 정부·여권과의 이해가 맞았다’는 설이 정치권과 법조계에 퍼져나가는 것이다.
법조계 사정에 밝은 한 야당 인사는 “이헌재 사단 주요 멤버들은 모두 DJ정부 시절 요직을 지낸 인사들이다. 이헌재 사단 외에도 DJ정부 실세 출신 인사들이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사건 배후로 지목돼 있거나 이름들이 거론되는 상태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힌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한 배경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이 쏟아지는 가운데 여권과 민주당 사이에 정계개편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론스타-외환은행 사건을 둘러싼 DJ정부 고위직 출신 인사들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될 경우 이는 정계개편을 주도하는 여권 측이나 러브콜을 받고 있는 민주당 인사들에게 모두 부담이 될 수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법원이 정부·여권과 정치적 행보를 같이한다고 100%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검찰이 그동안 현 정부·여권과 반목해온 점이나 법원이 검찰과 줄곧 신경전을 벌여온 것을 조합하면 법원-정부·여권 밀월설에 주목해볼 수도 있다”고 밝힌다.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검찰이 론스타 관련 영장을 남발하기가 어려워진 점은 이 사건 배후로 거론되는 DJ정부 고위직 출신 인사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관점에서의 해석이다.
법원과 정부·여권의 관계를 정부-국정원-검찰의 3각 관계에서 유추하려는 시각도 있다. 안기부 도청 문건 사건으로 인해 유례없는 국정원 압수수색이 벌어진 직후부터 검찰과 국정원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사이가 돼 버렸다. 그런데 최근 들어 노무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국정원을 방문해 격려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현 정권과 국정원 사이 교감설이 주목받은 바 있다. 이런 관점에서 검찰과 반목해온 법원 또한 현 정부·여권의 밀월관계를 형성했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여러 정치권 인사들은 “DJ정부 요직 출신 인사들이 검찰의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수사과정에서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따라 여권 발 정계개편의 향배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 관측하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