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19일 ‘에스원 영업전문직 비상대책위원회’가 태평로 삼성 본관 맞은편에서 집회 도중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
삼성그룹은 노조 불모지다. 국내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노조가 등장했지만 삼성은 무노조 경영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삼성의 경영 방침은 ‘노조의 필요성을 못느끼게 알아서 챙겨주겠다’며 노조 불필요론을 ‘신봉’하고 있다. 노조가 있는 계열사도 형식상 모임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런 삼성의 방침은 최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삼성물산이 분당의 삼성프라자 매각시 직원들이 뒤늦게 신분과 임금의 보장 문제를 놓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나, 지난 8월 에스원 영업전문직 1700명을 하루아침에 대량 감원한 것 등이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에스원 영업전문직들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만들어 지금도 회사 측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에스원이 이들을 감원한 이유는 경찰이 ‘기계경비용역 허가를 갖지 않은 개인 또는 법인과 하청계약을 할 수 없다’는 공문을 보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비대위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항변하고 있다. 최근 복수노조 허용과 특수고용직 처우 개선이라는 흐름 속에서 삼성이 미리 ‘노조의 싹’을 자르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펴고 있다.
비대위는 경찰의 공문에 대해 “각본, 각색, 연출 모두 에스원의 작품이다”라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영업전문직이 기계경비업법에 위배되는가’라고 누군가 먼저 경찰에 질의를 했고, 이에 대해 경찰이 ‘법률 조항에 위배되고, 처벌도 가능하다’라고 회신을 한 것이라고 이들은 믿고 있다. 경비용역업체의 특성상 평소 경찰과 긴밀한 업무 협조 관계인데다 에스원에 경찰 출신들이 많다는 점도 비대위가 제기하는 의혹의 한 부분이다.
문제는 누가 그런 질의를 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대위는 “이를 빌미로 에스원은 대량 해고를 단행할 수 있었고, 영업전문직 비중이 많은 경쟁사들의 영업능력도 위축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경찰 회신으로 가장 이득을 본 곳을 보면 우연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최근 경비용역업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인력을 줄일 필요가 있는 데다, 영업전문직을 상대적으로 많이 쓰고 있는 경쟁업체 ADT캡스, KT링커스에는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에스원이 영업전문직 모두를 계약해지한 것과 달리 ADT캡스는 영업전문직들을 계약직 직원으로 고용했고, KT링커스도 직접 고용을 검토 중인 것을 보면 에스원의 반응이 오히려 이례적으로 보인다.
에스원 내 다른 특수고용직과의 형평성도 문제다. 비대위에 따르면, 고용이 아닌 하도급 계약을 맺은 에스원 ‘설치공사팀’, ‘H팀’, ‘상담사’도 똑같은 내용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데, 유독 영업전문직만 계약해지를 한 것을 보면 경찰 회신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한다.
경찰회신 중 ‘경비업법상 경비업자는 경비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하도급 할 수 있다. 여기서 ‘업무의 일부’라 함은 일부 절차가 아닌, ‘감지-관제-지령-출동’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의 일부를 의미한다’라고 되어 있다. 즉 에스원이 특수고용직으로 운영하고 있는 기계경비 시스템을 설치·보수만 하는 설치공사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현금지급기 관리 및 경비업무를 보조하는 H팀 등도 모두 불법이 되는 것이다.
한편 영업전문직에서 계약 해지된 인원에 대해 회사 측이 상담사로 재계약을 권유했다는 것도 비대위는 문제삼고 있다. 하는 일은 어차피 같은데 ‘상담사’ 명목으로 영업하면 수수료율이 적었던 것. “최근 특수고용직 관련 4대 보험을 의무화할 움직임이 보이자, 4대 보험에 드는 비용만큼 수수료를 깎으려는 의도”라는 얘기다.
또 복수노조 도입에 앞서 비정규직들의 노조 결성을 미리 막겠다는 의도로 감원이 진행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금도 삼성 계열사 내 비정규직 등을 중심으로 노조 결성 움직임이 포착되는데, 복수노조 결성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에스원이 대량 감원을 하자마자 8월 말 복수노조 3년 유예 발표가 났다. 에스원 측도 3년간 더 써먹을 수 있는 영업력을 스스로 잘라 버려서 아쉬워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 비대위의 말이다.
이러한 비대위의 반발에 대해 에스원은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에스원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낸 소장에 따르면, ‘영업전문직 중에는 주유소, 식당, 보험설계사, 다방 등 겸업을 유지하는 경우도 많고, 회사는 이에 대해 제재를 가하지 않아 이들을 근로자로 볼 수 없다’면서 ‘민법상 위임계약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는 데다, 경찰청에서 영업전문직의 활동도 경비업의 범위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고있어 허가받지 않은 영업전문직이 활동을 계속할 경우 처벌될 수 있어 부득이하게 계약을 해지한 것이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 ‘비대위는 마치 에스원이 영업전문직을 고용하여 범죄행위를 저지르게 하여 부당하게 해고한 파렴치한 기업인 것처럼 호도하고, 그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유포하는 명예훼손 등 위법행위를 범하고 있다’며 1인당 2억 원씩의 손해배상 소송을 10월 26일 제기했다.
에스원 특수고용직의 감원은 복수노조 도입 등 기업환경 변화에 삼성이 얼마나 치밀한 대응을 준비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삼성이 ‘무노조경영’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법정으로 옮겨간 이번 사태의 귀추가 주목된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