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5월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이회 창전 총재와 당시 후보경선에 나섰던 최병렬 현 대표가 격려와 축하를 나누고 있다. | ||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측근인사와 친이회창 성향의 대의원들이 최병렬 후보를 지지한 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계가 서청원 후보를 지지했지만 최 후보가 승리, 이 전 총재의 영향력이 YS의 그것보다 크다는 것이 입증됐다는 것.
대표 경선 과정에서 ‘창심’(昌心: 이회창 전 총재의 의중)을 향한 후보들의 경쟁이 치열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막판에 서 후보 지지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병렬-서청원의 2강전 이면에 이 전 총재와 YS 간의 보이지 않는 ‘대리전’이 치러진 셈이다.
“내년 총선에서 도움이 된다면 이 전 총재를 삼고초려라도 해 모셔서 모든 힘을 집결시키겠습니다.”
지난 6월13일 대표 경선 후보 첫 합동연설회인 부산합동연설회에서 최병렬 후보가 꺼낸 말이다. 서청원 후보와 선두 경쟁을 벌이며 매일 여론조사를 하던 최 후보측은 당일 발언 이후 최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1.2% 포인트 증가했다고 밝혔다. 친이회창 표의 상당 부분이 최 후보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
대표적인 이 전 총재 지지그룹인 ‘창사랑’의 한 핵심 관계자는 “창사랑은 이번 경선에서 중립을 지켰지만 최 후보의 발언에 고무된 대의원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고 말해 최 대표가 일정 부분 ‘창심’ 덕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최 대표가 경선 초반 서청원 후보에의 열세를 극복하고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데는 ‘창심’의 그림자가 적잖이 작용했다. 지난 6월4일 서청원 캠프에서 조직을 총괄하던 이성희 전 특보가 최병렬 캠프로 옮긴 것은 상징적인 사건.
이 전 총재의 최측근 인사인 이 전 특보는 경선 과정에서 서 후보측 관계자들과 갈등을 빚다 6월4일 최 대표와 독대한 뒤 다음날 20여명의 참모진과 함께 최 대표 캠프에 전격 합류했다. 당시 최 대표는 지지율에서 서 후보에게 5% 포인트 가량 뒤진 상황이었다.
이 전 특보와 함께 최 대표와 독대했던 참모진에 따르면 당시 이 전 특보는 최 대표에게 두 가지 전제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최 후보가 제기했던 ‘이회창 필패론’에 대한 해명과 이 전 총재에 대한 관심 표명이 바로 그것.
최 대표는 ‘필패론’에 대해 ‘무쇠론’으로 답했다고 한다. 무쇠는 두드릴수록 단단해지는 것처럼 이 전 총재가 대선에서 두 번이나 패했지만 더 큰 정치인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것.
최 대표는 두 번째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지난 6월13일 부산합동연설회에서 이 전 총재에 대한 ‘삼고초려’를 공개적으로 밝혀 약속을 지켰다.
이 전 특보가 최 대표 캠프에 합류한 뒤 당 안팎에서 ‘창심’이 최 대표에 있다는 소문이 확산됐다. 동시에 최 대표와 서 후보 간 격차가 좁혀지면서 이 전 특보 합류 후 5일 가량이 지나 지지율이 역전됐다는 게 최 대표측의 설명.
한편 경선을 1주일가량 남겨놓고 ‘YS가 서 후보를 지지한다’는 소문이 급격히 확산되기도 했다. 당시는 민주계 표 중 상당수가 서 후보와 김덕룡(DR) 후보 양측으로 나뉘어져 선두 경쟁을 벌이던 서 후보 입장에선 민주계 표 결집이 아쉬었던 상황이었다.
YS의 측근인 한 민주계 출신 인사에 따르면 YS가 6월18일께 민주계 K의원을 상도동으로 불러 서 후보 지지 의사를 피력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K의원은 상도동을 방문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YS와의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어쨌든 6월20일을 전후해 ‘YS의 입김’ 소문이 나면서 친DR계로 분류된 박종웅·김무성 의원 등 민주계 출신들이 서 후보 지지쪽으로 방향 선회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YS가 그런(서 후보 지지) 뜻을 피력했는지조차 몰랐다”며 “누구 말을 듣고 따를 상황이 아니었다”고 항간의 소문을 부인했다.
하지만 DR을 지지했던 민주계 출신 상당수 대의원들이 선거에 임박해 서 후보쪽으로 방향선회한 것이 확인됐다. 이들은 “이왕이면 될 사람을 뽑자는 생각에서 서 후보를 찍었다”며 “그것이 YS의 뜻인지는 몰라도 선거가 다가오면서 그런 얘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경선 결과에 대한 분석에서도 ‘YS의 영향력’을 추정할 수 있는 측면이 엿보인다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최 대표는 경선에서 유효투표 12만8천7백21표 가운데 35.5%인 4만6천74표를 얻어 4만2천9백65표(33.2%)를 얻은 서청원 후보를 3천1백9표 차로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반면 국민 상대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해 기염을 토하기도 했던 DR은 의외로 강재섭 후보에게 밀려 4위에 머물렀다.
최 대표측에서 여론조사를 담당했던 관계자는 “자체 조사에선 최소 6천표 이상 이기는 것으로 예상됐는데 ‘DR표’가 너무 안나왔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서 경선을 관리했던 한 관계자는 “DR표로 예상되던 상당수가 서 후보쪽으로 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어쨌든 이번 경선은 ‘창심’이 YS의 그림자보다 더 짙게 드리우고 있는 것이 한나라당의 현실임을 반영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