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무 김앤장 대표변호사(맨 오른쪽)의 장녀 선희 씨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손자인 문선 씨와 결혼했다. | ||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재계와 법조계 유명인사들 간에 혼사로 인연을 더욱 깊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세간에서는 재계 인사들이 이들의 ‘재력’을 보고 혼사를 맺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법조계 거물의 인맥과 영향력은 돈으로 치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GS그룹의 허창수 회장과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의 김영무 대표변호사가 사돈을 맺어 관심을 끌어 모았다. 허 회장의 장녀 윤영 씨와 김 대표변호사의 장남 현주 씨가 백년가약을 맺은 것이다. 앞서 김 대표변호사는 지난 2003년 장녀 선희 씨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인 문선 씨와 맺어준 바 있다. 문선 씨는 최근 재벌가와의 결혼으로 화제를 뿌린 아나운서 출신 노현정 씨의 남편 대선 씨의 친형이다.
김앤장은 이번 정몽구 회장 재판에서 정 회장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물론 김영무 대표변호사가 직접 변호를 맡은 것은 아니다.
재벌 총수일가와 법조인 집안의 혼사는 말 그대로 ‘윈-윈’일 수밖에 없다. 올해 삼성과 현대차의 경우처럼 검찰조사나 법정공방에 자주 휩싸일 수밖에 없는 재벌가 입장에선 혈연으로 맺어진 법조 인맥의 두터운 지지만큼 든든한 배경도 없을 것이다.
재벌가와 연이어 사돈을 맺은 김앤장의 김 대표변호사 경우처럼 법조인 집안 입장에서도 업계 최대 큰손인 재벌가와의 혼맥 맺기는 반가운 일일 것으로 보인다. 대형 로펌의 주요 수입원이 ‘어쩌다 터지는’ 총수 관련 재판 사안이라기보다는 기업 관련 소송이나 계약 자문 등 연속적인 기업활동과 관련된 사안에서 발생하는 비율이 날로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국내 재벌가 인사들과 법조계 집안의 혼맥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사돈지간을 넘어선 공생관계의 의미 또한 엿볼 수 있다.
재벌과 법조계의 혼맥은 재계 1위 삼성그룹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의 장인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은 법무장관 출신이다. 이후 홍 전 회장 아들 홍석현 전 주미대사와 이건희 부인 홍라희 삼성미술관장 등은 삼성그룹 경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홍 전 대사는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의혹 사건으로 인해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을 만큼 삼성그룹 후계구도와도 관련을 맺은 인물로 각인된 상태다.
이건희 회장 아들 이재용 상무의 처가인 대상그룹 또한 법조인 집안과 혼맥을 맺고 있다. 임대홍 창업주의 셋째 남동생이자 임창욱 회장의 작은 아버지가 되는 임수홍 씨는 3남 1녀 가운데 장남 임병선 씨를 김영천 전 법무차관의 딸과 결혼시켰다.
두산그룹 법조 혼맥도 법조인 사위가 경영에 기여하는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두산의 고 박두병 창업주의 딸 용언 씨 남편은 김세권 법무법인 케이씨엘 대표변호사다. 서울고검 검사장 등 검찰요직을 거쳐 법조계 명망이 두터운 김 대표변호사는 현재 두산 계열인 연강재단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3세 승계 작업을 준비 중인 동양그룹은 그룹 지배구조를 지주회사화 하는 과정에 ‘회사익 편취사례’ 논란을 빚은 상황이 발생하자 다른 어느 그룹보다도 민감하게 사안을 정정하며 지배구조를 다시 짜는 기민성을 보였다. 이 역시 그룹 총수가 법조인 출신이라서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받아들였다는 평가를 들었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동생들 집안도 재계에선 법조인 집안과 인연이 두터운 것으로 유명하다. 신 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인 신철호 전 롯데 사장은 법조인 집안과 주로 사돈을 맺어 화제가 됐다. 장녀 혜경 씨는 부장판사 출신 조용원 씨와 결혼했으며 3녀 미진 씨 남편은 장태규 변호사다.
신춘호 농심 회장의 장녀 현주 씨는 박남규 전 조양상선 회장의 차남 재준 씨와 결혼했는데 박 전 회장은 김치열 전 법무장관과 사돈 사이다. 그런데 김 전 장관은 오석락 전 청주지법 원장, 김기홍 전 대법원 판사와 사돈관계다. 신춘호 회장과 혼맥으로 맺어진 법조인 집안만 세 군데가 되는 셈이다.
김치열 전 장관은 고 서성환 태평양 창업주와 사돈 지간이다. 동부 김준기 회장의 동생 희선 씨는 신춘호 회장의 차남인 동륜 씨에게 시집을 갔으니 김치열 전 장관을 중심으로 롯데-농심-태평양-동부 등 여러 재벌들이 결혼을 매개로 한 연을 맺고 있는 셈이다.
최근 계열사 지분을 둘러싼 형제간 법정다툼으로 화제가 됐던 한진그룹 총수일가도 법조인 집안과 인연이 깊은 편이다. 고 조중훈 창업주의 장녀 현숙 씨 남편 이태희 씨는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다. 이 대표변호사는 현재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법률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고 조중훈 창업주 동생인 조중건 전 대한항공 고문의 장녀 윤정 씨는 이동원 전 외무부장관의 장남과 결혼했는데 이 전 장관 집안이 법무장관 출신인 신직수 씨와 사돈지간이 된다. 조중건 전 고문은 최근 조중훈 창업주 아들들의 법정공방 화두였던 ‘차명 지분’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한화 김승연 회장의 법조 혼맥도 제법 유명하다. 김 회장의 장인은 서정화 전 의원인데 ‘청와대 파견검사 1호’로 유명해진 서정신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가 서 전 의원의 친동생이다. 중정 차장과 내무부장관을 거쳐 5선 의원을 지낸 서정화 전 의원과 대검차장과 서울고검 검사장을 지낸 서정신 변호사 형제가 한화의 사업 확장에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줬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 회장 출신 집안 또한 재벌가와 혼맥을 맺은 사례가 적지 않다. 고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는 홍금식 전 변협 회장과 사돈 지간이다. 효성가 차남인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과 홍 전 회장의 딸 홍문자 씨가 백년가약을 맺은 사이다.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의 5녀인 경주 씨는 곽명덕 전 변협 회장의 장남 태훈 씨와 결혼했다. 그러나 이들은 헤어졌으며 경주 씨는 외국계 회사 임원과 재혼한 것으로 알려진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