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은행 로고와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 황 회장의 연임 여부가 금융가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 ||
우리금융이 예보의 관리감독권에 대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는 데다, 예보와 합의한 경영정상화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폐지하려는 법안까지 최근 국회에 상정된 것은 도를 넘어선 것 아니냐는 얘기가 정부에서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데는 그간 예보의 관리감독을 ‘관치’라고 공격하며 대립각을 세워온 황영기 회장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공적자금이 투여된 우리금융의 경우 예보의 관리감독을 철저하게 이행해야 함에도 주가폭등으로 인한 장부상의 사상최대 흑자를 자랑하는가 하면, 지난 4월 성과급 395억 원을 추가 지급한 것 등은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는 것이 황 회장에 대한 비난의 요지다.
그러나 여기에는 황 회장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추천으로 기용된 인사라는 점, 정부 방침에 각을 세우는가 하면 정치권 진출을 염두에 두고 한나라당을 기웃거린 정황들이 청와대 인사들의 심기를 거스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우리은행 노동조합은 최근 네 차례 예보 앞에서 MOU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노조 측은 “우리은행은 MOU 체결 이후 22분기 연속 전 항목을 달성하고, 매년 1조 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예보에 배당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성장했다. 그러나 관치금융과 부당한 경영간섭이 우리은행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예보 측은 “공적자금은 국민의 돈이고, 예보는 대리인으로 그 돈을 안전하게 지키고 회수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감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금융 경영은 이사회를 통해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예보는 단지 대주주로서 경영진 구성권, 배당금 청구권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뿐”이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올해 4월 직원들에 대한 특별상여금 지급에 대해 노조는 “상여금을 받은 지 한참이 지난 데다 야근도 많이 하고 휴일에도 출근하는 등 회사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지급된 것이다”며 예보의 경고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또 “부실방지에 초점을 맞춘 MOU는 상업적 원리에 의한 기업가치 극대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간 우리금융 주가가 7000원 대에서 2만 원이 넘을 정도로 올라 이미 공적자금을 상환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 되었는데도 공적자금을 핑계로 경영간섭을 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자기 통제가 가능한 금융기관을 둘 수 있고 연간 수천억 원의 배당금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예보 측은 “주가가 2만 원이 넘었더라도 70%가 넘는 지분을 한꺼번에 팔면 주가가 급락하게 마련이라 논리가 맞지 않다. 또 그간 투여된 비용에 대한 복리이자라는 기회비용을 감안하지 않고 원금 운운하는 것은 은행원의 자격을 의심케 하는 소리다. 민영화를 하려면 매각을 해야 하는데 대기업을 비롯한 산업자본은 법적으로 안 되고, 외국계는 여론 때문에 새로운 주인을 찾기가 쉽지 않으니 대신 MOU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관리감독 없이 자신들이 회사의 주인이 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얘기다”라며 맞서고 있다.
최근 정부 일각에서 황영기 회장에 대해 나오는 ‘노조의 지지를 등에 업고 마치 회사의 오너인 양 행세하고 있다’는 비난은 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노조뿐 아니라 황 회장도 월례조회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보에 대한 비판을 해온 터라 좋게만 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황 회장이 처음부터 연임에 연연하지 않았다는 추측도 있다. 처음 회장에 취임할 때 스스로 1년만 하고 자리를 내놓겠다고 할 정도로 자리보다는 실력을 인정받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보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또는 예보의 입장이 차기 회장 선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봤을 수 있다. 경영자로서의 자질은 실적으로 말해준다는 말이 있듯이 황 회장은 부실금융사를 빠른 시간에 정상화시켰고 우리금융은 신한금융과 업계 2위를 다툴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황 회장이 연임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쪽에서 공통적으로 꼽는 이유 중 하나는 공기업의 CEO가 연임한 전례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수산업협동조합의 장정구 회장이 7년째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면 자질과 능력이 충분할 경우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다.
황 회장이 이헌재 전 부총리의 추천을 받은 인사였다는 것도 연임 가능성을 낮게 만드는 요인이다.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이헌재 전 부총리의 소환 가능성이 언급되는 등 ‘이헌재 사단’ 인맥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황 회장이 올해 한나라당과 ‘염문설’이 나돌았던 것도 그의 연임가도엔 감점요인이다. 서울시장 및 보궐선거 때마다 한나라당에서 후보 추천설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차기에는 민간 전문가보다 관리 출신을 우리금융 회장으로 앉히고 싶어한다는 얘기도 있다. 후임으로 현대증권 김지완 사장이 계속 거론되어 오다 최근에는 강권석 중소기업은행장이 하마평에 오르는 상황이다.
황 회장이 겸하고 있는 우리금융 회장과 우리은행장을 분리해 둘 중 하나를 연임시킨다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 예보에서는 이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예전 윤병철 회장-이덕훈 행장 때 손발이 맞지 않았고 황영기 1인 체제에서는 견제가 너무 안 되었다. “두 가지 체제를 모두 테스트해봤으니 더 나은 것을 택할 것”이 예보의 현재 입장이다.
황 회장이 연임을 하지 못할 경우의 거취에 대해서도 몇 가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다른 금융기관으로 옮기는 것은 이미 예보에 미운털이 박힌 이상 힘들지 않겠느냐며 정치권으로 진출할 것이라는 얘기에 무게가 실리기도 한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에서도 황 회장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인 이종구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로 올지도 모른다고 황 회장을 미리 경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처럼 벌써부터 여러 이야기가 도는 것은 황 회장이 찬반 양론이 교차할 정도로 소신과 돌파력이 있기 때문이다. 공격적인 경영방식 때문에 ‘자신을 포장하기 좋아한다’라는 평이 있는가 하면 ‘아이디어가 좋고 과감하게 일을 추진한다’는 평도 있다. 이 때문에 황 회장의 거취에 대해서는 세간의 평이나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