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악화와 신작 부진에 ‘리니지 IP’ 다시 꺼내 드나…“이미지 변신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우려
게임업계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IP 기반의 방치형 게임을 제작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2월에도 ‘리니지W’ 기반의 신규 프로젝트 채용 공고를 낸 바 있다. 당시 공고에는 ‘전투 외에도 소셜 콘텐츠와 다양한 재미 요소를 개발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필수 경력 조건으로 ‘모바일 게임 개발 경력자’가 있던 점으로 보아 방치형 게임을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소식은 엔씨소프트의 최근 경영 전략과 반대되는 행보처럼 보인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지난 몇 년 동안 IP 다변화와 글로벌 진출을 목표로 삼아왔다. 2022년 2월 △프로젝트E △프로젝트R △프로젝트M △BSS △TL 등 신규 IP 게임 5종을 공개했고, 지난해 국제 게임 전시회 ‘지스타 2023’에서는 프로젝트E를 제외한 게임 4종과 추가로 LLL과 프로젝트G 등 2종을 선보였다. 공개된 신작들은 TL을 제외하고는 모두 리니지와 장르가 다른 점도 눈길을 끈다.
엔씨소프트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고 있다. 최승호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엔씨소프트=리니지라이크’로 각종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음은 사실”이라면서도 “TL의 과금 강도가 강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은 지금까지는 지켜졌고, 그 전부터 지적받던 부족한 주주환원도 이번 1000억 원 자사주 매입 및 구체적인 계획 발표로 개선됐다. 이제라도 변화하려는 자세에 박수를 쳐줄 만하다”고 평가했다.
엔씨소프트의 이미지는 개선되는 것 같지만 실적 반등은 쉽지 않아 보인다. 엔씨소프트의 매출은 2022년 2조 5717억 원에서 지난해 1조 7798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영업이익은 2022년 5590억 원에서 1372억 원으로 4분의 1 토막 났다. 올해 1분기 실적도 매출 3979억 원에 영업이익은 257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 17%, 50% 줄어든 수치다.
엔씨소프트의 야심작 TL의 실적도 저조하다. 리니지식 과금 요소를 줄인 탓이 크다. 지난 1분기 기준 게임별 매출은 리니지M 1051억 원, 리니지2M 558억 원, 리니지W 828억 원이었지만 TL이 포함된 기타 매출은 243억 원에 불과했다. TL은 출시 후 서버도 줄였다. 지난 1월 처음으로 서버를 통합했고, 5일 두 번째 서버 통합을 실시했다. 그 결과 서버 수는 초기 21개 서버에서 10개 그리고 5개로 감소했다.
지난 3월 엔씨소프트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가족경영을 끝내고 공동대표 체제를 선언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공동대표는 게임 개발과 사업에 집중하고, 박병무 대표는 경영 시스템과 내실을 다지고, 미래 신성장 동력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김택진 공동대표는 “엔씨소프트의 개발 장점을 살려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며 “올해 글로벌 시장에 출시할 난투형 대전 액션 ‘배틀크러쉬’, 수집형 RPG ‘프로젝트 BSS’를 통해 다양한 장르에 새로운 아이디어로 도전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연내 출시 예정인 ‘배틀크러쉬’와 ‘프로젝트 BSS’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다. TL처럼 리니지식으로 과금을 유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서다. 올해 진행했던 배틀크러쉬 글로벌 베타 테스트 당시 이용자들의 과금을 유도하는 뽑기 콘텐츠는 없었다. 엔씨소프트의 유의미한 실적 반등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나머지 LLL, 프로젝트M, 프로젝트G는 출시일이 정해져 있지 않다. TL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동양 문화를 반영한 MMORPG로 가장 이목을 끌었던 프로젝트E는 2년 전 공개된 영상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여러 우려는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엔씨소프트 주가는 20만 원 밑에서 거래되고 있다. 2021년 기록했던 104만 8000원에 비해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강석오 신한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마케팅비를 극도로 낮춰야 흑자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기초 체력이 하락했다. 그러나 현재 주가는 2024년 추정 실적 기준 PER(주가수익비율)이 약 42.7배 수준으로 부담스럽다. 경영진의 변화된 전략이 가시화되기 전까지는 똑같은 이익을 내더라도 주가가 더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는 건(리레이팅)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엔씨소프트는 불황을 견뎌낼 구원투수로 ‘방치형 게임’을 낙점한 것으로 보인다. 방치형 게임은 최근 게임사들에 ‘효자’로 꼽히는 장르다. 방치형 게임은 이용자가 일일이 조작할 필요 없이, 캐릭터가 자동으로 움직이며 게임을 진행한다. 조작이 간편하고 보상이 빠르게 주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게임사 입장에서 방치형 게임은 게임의 진입 장벽이 낮아 이용자를 어렵지 않게 끌어들일 수 있고, 대형 MMORPG에 비해 개발에 소요되는 기간이 훨씬 짧아 개발 비용이 적게 드는 데다 과금 요소를 다양하게 추가할 수 있어 수익 창출에도 용이하다.
넷마블은 지난해 9월 ‘세븐나이츠 키우기’ 출시 5일 만에 국내 구글 플레이스토어 게임 매출 2위까지 오르며 재미를 봤다. 넷마블은 지난해 4분기 흑자 전환 요인으로 세븐나이츠 키우기를 꼽기도 했다. 컴투스홀딩스가 1월 17일 출시한 방치형 게임 ‘소울 스트라이크’는 출시 4개월 만에 누적 매출 200억 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컴투스홀딩스는 소울 스트라이크의 연간 매출이 500억 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방치형 게임은 엔씨소프트의 대형 신작 출시에 앞선 가교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은 “방치형 게임은 국내 대형 게임사들이 무시해 개발을 소홀히 했던 장르였다. 그러나 게임업계 전체가 불황이다 보니 게임사들이 매출을 위해 방치형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물려 게임 이용자들의 트렌드가 본인들이 직접 조작하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변화하면서 방치형 게임 흥행에 도움을 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엔씨소프트가 방치형 게임을 ‘리니지 IP’로 만들 것이라는 점은 아쉽다는 주장도 나온다. 리니지 IP를 활용한 방치형 게임 개발은 공들여 바꿔놓았던 엔씨소프트의 이미지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보는 탓이다. 방치형 게임은 아이템 강화, 뽑기 등을 통한 캐릭터 육성이 주 콘텐츠기에 수익모델(BM)이 리니지와 유사하다. 만약 엔씨소프트가 리니지식 과금 유도 방식을 방치형 게임에 여과 없이 적용한다면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특히 게임 개발과 사업을 맡고 있는 김택진 공동대표를 향한 책임론이 대두될 가능성도 있다.
방치형 게임이 엔씨소프트에 효자가 될지도 미지수다. 엔씨소프트는 방치형 게임에서 후발주자다. 앞서 출시된 중국산 방치형 게임 ‘버섯커 키우기’는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10위권에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또 카카오게임즈는 지난 5월 31일 파이드픽셀즈에서 개발한 신작 ‘그랑사가 키우기: 나이츠x나이츠’(그랑사가 키우기)를 글로벌 출시했고, 넷마블은 ‘일곱 개의 대죄’ IP를 활용한 또 다른 방치형 게임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엔씨소프트가 방치형 게임으로 성공하려면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
위정현 회장은 “타 게임사들의 방치형 게임이 수익을 내는 것을 보니 엔씨소프트도 실적 반등을 위해 방치형 게임을 돈 잘 버는 리니지 IP로 개발하고 싶다는 유혹이 생겼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탈리니지’로 이미지 변신을 꾀했던 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김택진 대표가 있는 한 엔씨소프트는 리니지라는 마약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미공개 신작의 경우에는 개발 현황이나 출시일 등을 외부에 알려드리지 않고 있다”면서도 “엔씨소프트가 공개적으로 ‘탈리니지’를 선언한 적은 없다. 기존에 너무 MMORPG만 개발한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의 게임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씀 드린 바 있다. (리니지 방치형 게임 개발이) 현재의 행보와 다르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새로운 시도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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