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상태다. TV만 틀면 오디션 프로그램이 나온다. 지상파와 케이블채널의 구분 없이 관련 프로그램들이 쏟아지고 있다. 재방송까지 합한다면 TV채널 어느 곳을 틀어도 24시간 안에 한두 편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반드시 보게 되는 ‘친절한’ 방송 환경이다. 방송사들이 제작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해외에서 포맷을 구입해 온 수입품까지 합해 10편을 훌쩍 넘긴 지 오래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절대 강자로 통하는 엠넷의 <슈퍼스타 K>를 필두로 SBS <케이팝 스타> MBC <위대한 탄생> tvN <코리아 갓 탤런트> 온스타일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각채널마다 편성표에 반드시 오디션 프로그램에 포함돼 있는데도 방송사들은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지상파도, 케이블채널도 마찬가지다. 방송 관계자들은 방송사가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에 유난히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는 그만 한 이유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시청률과 광고의 확보.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절대 조건인 시청률과 광고를 확보하는 데 오디션 프로그램만 한 ‘효자’가 없다는 지적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대부분 매년 새로운 지원자를 받아 같은 방식으로 경쟁을 벌여 1등을 뽑는 시즌제로 운영된다. 원조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슈퍼스타 K>는 4년째 인기리에 방송 중이다. 후발 주자인 SBS <케이팝 스타>의 경우 11월 18일 시즌2 방송을 시작한다. 줄잡아 10편이 넘는 프로그램들이 시즌제로 돌아가면서 시청자들은 어쩔 수 없이 1년 내내 오디션 프로그램에 노출되고 있다. 시청자의 피로도가 높아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은 대부분 내용과 구성까지 겹친다. 그런데도 일단 방송을 시작하면 ‘기본 시청률’은 유지한다. 일종의 시청률 보증수표다. 방송사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실제로 <위대한 탄생> 시즌3는 <슈퍼스타 K> 시즌4에 비해 화제성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첫 방송 시청률이 7%(TNS미디어리서치 집계)로 집계됐다. 2회에는 시청률이 9%까지 올랐다. MBC는 <위대한 탄생>이 중반으로 접어들면 시청률이 10%대까지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콘셉트가 없는데도 인기 장르 효과에 힘입어 시청률을 보장받는 <위대한 탄생>은 MBC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카드다. 현재 MBC가 10시대에 방송하는 예능 가운데 시청률 10%대에 진입한 프로그램이 단 한 편도 없다는 사실은 <위대한 탄생>의 가치를 드러낸다. 오랫동안 MBC 효자 예능으로 인정받은 <유재석·김원희의 놀러와> 역시 4%까지 곤두박질쳤다.
문제는 절대적인 1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후발주자로 시장에 합류한다면 2등은커녕 3~4등을 하기도 어렵다는 걸 방송사가 잘 알고 있는 데 있다. 더욱이 현재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특별한 차별성 없이 비슷한 구성으로 지원자를 선발하고 우승자를 가린다. 전문심사위원들이 무대를 평가하고 해당 지원자들을 지도하고 시청자가 참여하는 휴대전화 문자투표로 최종 우승을 가리는 방식이다. 지원자들의 합숙, 트레이닝 등의 과정도 거의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에 택하고 있다.
TV 예능프로그램이 가져야 할 독특한 개성도 없이 비슷한 구성으로 도배된 오디션 프로그램을 방송사들이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일단 제작하면 기본은 한다는 안정감 때문”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지닌다. 이미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 시장이 확대될 대로 확대된 상황에서 광고와 제작지원, 시청자의 유입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건 오디션 프로그램의 강점. 특히 후발주자라고 하더라도 ‘시장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현재의 오디션 프로그램 범람을 가요계에 빗대 설명했다. 소녀시대가 등장해 걸그룹 시장을 형성하자 카라, 티아라, 애프터스쿨 등 후발 걸그룹들이 잇따라 등장한 것과 같은 현상이라는 의미다. 이 관계자는 “소녀시대가 걸그룹의 절대 강자인 걸 인정하고 나온 후발주자들은 걸그룹 시장에 모인 팬들을 나눠 가져가는 등 걸그룹 효과를 누렸다”며 “심지어 꼴등 할 걸 알면서도 일단 그 시장에 뛰어들면 어느 정도의 후광을 입을 수 있다는 게 시장 논리”라고 밝혔다.
오디션 프로그램 상황은 마찬가지. <슈퍼스타 K>가 절대 강자로 자리를 잡았지만 <위대한 탄생>과 <케이팝 스타>가 속속 등장해 전체 제작 시장을 빠르게 넓혔다. 이는 곧 시청률과 광고 수입으로 직결되고 있다. <슈퍼스타 K> 시즌4의 총 제작비는 약 150억 원. 케이블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 가운데 최고 액수다. 지상파조차 지금껏 배용준 주연의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비슷한 범주에 들었을 뿐 그만한 규모는 찾기 어렵다. <슈퍼스타 K>가 거대한 제작비를 쏟아 부을 수 있는 데는 풍부한 제작지원과 간접광고, 광고 판매 등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제작비 약 70억 원의 <케이팝 스타> 역시 매주 방송마다 광고 완판을 기록했다.
여기에 간접광고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성격도 한몫을 한다. 노골적으로 보일 정도로 해당 제품을 반복 노출하면서 제작진은 광고 수입을 늘린다. 특히 오디션 프로그램은 드라마에 비해 간접광고에 대해 시청자가 갖는 반감이 적어 제작진은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포기할 수 없는 카드가 분명하지만 과연 오디션 프로그램의 생명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를 놓고는 회의적인 의견이 더 많다. 4~5년 주기로 바뀌는 방송 유행을 감안하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생명 역시 오래 남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지상파 방송 관계자는 “시청률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지만 올해 <슈퍼스타 K>를 보더라도 시청자의 반응은 예년만 못하다는 게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후발주자였지만 새로운 시도로 인기를 끈 <케이팝 스타>가 곧 시즌2를 시작하는 데 그 성공 여부가 이후 전체적인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생명력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며 “지금과 같은 포화상태는 어떤 식으로는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