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직 통해 상당한 보수 챙겨…신동빈 그룹 경쟁력 약화에도 최고, 정몽준 유일하게 경영 손떼
'일요신문i' 조사 결과 10대 그룹 총수가 지난해 본인이 이끈 상장사에서 수령한 보수는 655억 4800만 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대비 10.2% 감소한 수치다. 총수의 보수가 감소한 것은 2020년 이후 3년 만에 처음이다. 조사 대상은 총수가 있는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롯데, 한화, GS, HD현대, 신세계, CJ 등 10개 그룹이다.
지난해 총수 보수가 감소한 가장 큰 이유는 보수 과다 수령 논란이 제기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보수가 100억 원 이상 감소한 것이다. 지난해 이재현 회장이 그룹 상장사에서 챙긴 보수는 99억 3600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재현 회장은 2022년 CJ, CJ ENM, CJ제일제당, 3개 회사에서 221억 3600만 원을 보수로 챙겨 논란이 일었다. 특히 그해 CJ ENM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반토막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20억 원을 성과급으로 챙기면서 적절성 논란이 제기됐다. 당시 이재현 회장이 챙긴 보수는 10대 그룹 총수 중 가장 많았다.
2016년 광복절 특사로 사면된 이재현 회장은 2017년부터 경영에 참여했다. 그가 상장사에서 보수를 수령한 것으로 파악되는 시기는 2018년부터다. 그해 이재현 회장은 160억 원을 수령했다. 2019년 124억 6100만 원, 2020년 123억 7900만 원으로 감소세를 보이더니 2021년 221억 6100만 원으로 200억 원을 돌파했다. 이재현 회장은 복귀 후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총수들의 전체 보수 인상을 견인한 사람은 재계 6위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이다. 신 회장은 지난해 10대 그룹 총수 가운데 가장 많은 보수를 받았다. 지난해 롯데그룹의 재계 순위는 5위에서 6위로 하락했다. 신동빈 회장은 그룹의 경쟁력 악화에도 자신의 보수를 꾸준히 높이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2018년 신동빈 회장이 각 상장사에서 받은 보수는 57억 5000만 원으로 전년 대비 48.6% 감소했다. 이때는 롯데에서 형제 간 분쟁이 일어난 후 지배구조개편에 대한 목소리와 필요성이 커지던 때다. 하지만 신동빈 회장의 보수는 바로 다음해인 2019년 122억 7100만 원으로 껑충 뛰더니, 2020년 122억 3000만 원, 2021년 150억 4100만 원, 2022년 154억 100만 원, 2023년 177억 1500만 원으로 상승했다. 2014년 43억 5000만 원의 보수를 받던 것에 견줘 307.2% 상승했다.
신동빈 회장에게 지난해 보수를 지급한 회사는 롯데지주 64억 4900만 원(전년비 2억 8 400만 원↑), 롯데쇼핑 19억 원(1억 6000만 원↑), 롯데웰푸드 24억 4300만 원(2700만 원), 롯데칠성음료 30억 9300만 원(18억 4300만 원↑), 롯데케미칼 38억 3000만 원(보합) 등 5개 사다.
재계 3위 현대차의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등 3곳에서 등기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 회사 가운데 보수를 받은 곳은 현대차(지난해 82억 100만 원)와 현대모비스(40억 원)다. 정의선 회장의 보수 총액은 122억 100만 원으로 조사 대상 가운데 두 번째로 많았다.
재계 7위 한화그룹은 경영에서 손을 뗐던 김승연 회장이 2021년부터 경영에 참여해 보수를 받고 있다. 지난해 김 회장이 상장사에서 수령한 보수는 108억 200만 원이다. 조사 대상자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은 보수다. 김 회장에게 보수를 지급한 상장사는 한화 36억 100만 원, 한화솔루션 36억 100만 원, 한화시스템 36억 원이다. 2014년 등기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했던 김 회장은 현재 미등기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재계 11위 신세계그룹의 이명희 총괄회장은 2014~2017년 무보수로 경영에 참여했지만 2018년부터 신세계, 이마트 등 2개사의 미등기임원으로 활동하며 보수를 받고 있다. 지난해 그가 두 회사에서 받은 보수는 30억 6500만 원이다. 이명희 회장도 기업 실적에 비해 과한 보수를 챙기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특히 이마트의 경우 최근 실적과 주가 모두 부진하다. 지난해 이마트는 창립 이래 처음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이명희 총괄회장을 비롯해 아들 정용진 회장(30억 6500만 원), 남편 정재은 명예회장(30억 6500만 원) 등 이들 지배주주 가족이 챙긴 보수는 100억 원에 육박했다.
무보수로 경영에 참여하는 총수도 있다. 재계 1위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은 삼성전자 미등기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만 따로 보수를 받고 있지 않다. 이재용 회장은 선대 회장인 고 이건희 회장처럼 무보수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과거 고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 회장직을 내려놓을 때 무보수로 경영에 참여한 영향으로 퇴직금을 받지 않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계 2위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SK(등기), SK이노베이션(미등기), SK텔레콤(미등기), SK하이닉스(미등기) 등 4개사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가 지난해 보수를 받은 곳은 SK(35억 원) 한 곳이다.
LG그룹의 구광모 회장은 지주사 LG에서 유일하게 83억 2900만 원의 보수를 받았다. GS그룹은 총수인 허창수 명예회장이 2014~2020년 등기임원으로 GS와 GS건설 두 곳의 경영에 참여하고 보수를 받았다. 이후 동생 허태수 회장에게 그룹 회장 자리를 넘기고 현재 GS건설 한 곳에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허창수 회장이 수령한 보수는 24억 9400만 원이다.
총수가 경영에서 손을 뗀 그룹은 HD현대그룹이 유일했다. 그룹 총수인 정몽준 이사는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으면서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다. 다만 그의 아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HD현대와 HD한국조선해양의 대표이사로 있어 이 같은 흐름이 깨졌다. 정기선 부회장이 지난해 이들 회사에서 받은 보수는 14억 3805만 원으로 파악된다.
김형균 차파트너스 상무는 “총수 등 지배주주 일가의 겸직을 책임 경영의 일환으로 볼 수 있지만 비상장사와 상장사 등이 포함돼 이해상충이 불가피한 국내 그룹의 지배구조상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면서 “특히 이들이 챙기는 보수가 주주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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