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관계자 석방 시점 영장실질심사 열려…법원, 이들이 접촉해 증거 인멸할 가능성도 고려한 듯
2023년 여름 수사를 본격화한 특사경은 2023년 10월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를 구속했다. 11월 특사경에서 사건을 송치 받은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는 바로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카카오 판교 아지트의 몇몇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2024년 4월에는 카카오의 SM엔터 시세 조종 의혹을 받고 있는 원아시아파트너스 지 아무개 대표를 구속했다.
배 전 대표와 지 대표는 구속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지만 김범수 위원장에 대한 수사는 별다른 속도를 내지 못했다. 다만 특사경 수사는 김범수 위원장에게 집중돼 있었다. 수사 초기인 2023년 8월 특사경은 김 위원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10월에는 금감원으로 김 위원장을 소환해 조사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며 김 위원장에 대해 기소 의견을 밝혔다.
반면 검찰은 8개월가량 김 위원장 관련 수사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관련 혐의로 배 전 대표와 지 대표가 구속 기소됐음에도 김 위원장에 대한 수사만 속도를 내지 못한 이유는 시세조종을 공모했다는 직접 증거가 없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비로소 김범수 위원장에 대한 검찰 소환 조사가 이뤄진 것은 7월 9일이다. 이날 오전 8시께 시작된 검찰 조사는 10일 새벽 3시 20분까지 이어졌다. 이후 1시간 25분가량 조서 열람을 한 김 위원장이 남부지검에서 나온 시간은 새벽 4시 45분께였다. 무려 20여 시간 걸린 고강도 소환 조사를 마무리한 검찰은 17일 김 위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서울남부지법 한정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3일 오전 1시 10분께 “도망할 염려 및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8개월여 만에 전격적인 소환 조사가 이뤄지고 바로 구속영장까지 발부되면서 검찰이 최근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세간의 관심은 검찰이 김범수 위원장의 시세조종 공모를 입증할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으로 무엇을 확보했느냐에 집중됐다.
법조계에서는 새로운 스모킹건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이미 검찰이 다양한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범수 위원장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검찰은 ‘증거가 차고 넘친다’며 상당한 자신감을 보였다. 만약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될 경우 바로 재청구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대기업 총수 급인 김범수 위원장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상당하기 때문에 확실한 혐의 입증을 위해 수사를 신중하고 천천히 진행했을 뿐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반응이다.
이미 법원에서도 관련 증거가 나오기 시작했다. 배 전 대표와 지 대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준호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이 “배 대표가 브라이언(김범수 위원장)의 컨펌을 받았다고 얘기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이번 검찰의 구속영장에는 카카오가 원아시아파트너스와 공모해 1100억 원을 투입해 SM 주식을 매입한 내용은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검찰이 카카오와 원아시아파트너스의 공모에 김 위원장이 관여한 증거까지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검찰 사정을 잘 아는 법조계 관계자는 “그만큼 검찰이 확실한 내용을 중심으로 신중하게 다가가고 있다는 의미”라며 “8개월 동안 천천히 수사를 한 것 역시 그만큼 신중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검찰 수사 8개월여 만에 소환 조사를 하고 구속 영장을 청구한 데는 또 다른 시기적인 이유가 있다. 김범수 위원장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22일 법원은 원아시아파트너스 지 대표의 보석 신청을 인용했다. 구속 기간이 종료됐기 때문이다. 이미 배 대표도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다. 이처럼 SM엔터 시세 조종 의혹의 핵심 관계자인 배 전 대표와 지 대표가 모두 석방되는 시점에 김 위원장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들이 접촉해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을 법원이 일정 부분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의 카카오 관련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2020년 드라마제작사 바람픽쳐스 인수 과정에서 김성수 당시 카카오엔터 대표와 이준호 당시 투자전략부문장이 바람픽쳐스에 시세 차익을 몰아줄 목적으로 비싸게 매입·증자했다는 의혹도 서울남부지검에서 수사 중이다. 법조계는 김 위원장이 구속된 상황에서 검찰이 카카오 관련 수사를 다른 영역까지 확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특사경에 이어 검찰 수사가 본격화 된 2023년 11월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던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는 리스크 대응에 직접 나서기 위해 경영쇄신위원장이 돼 카카오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11월 6일 비상경영회의를 주재하며 경영쇄신위원회 설립을 결정한 김범수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준법과 신뢰위원회(준신위)’ 설치와 운영에 대한 논의도 진행했다. 그렇게 리스크 관리를 위한 외부감사기구로 ‘준법과 신뢰위원회’가 설립됐고 김소영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사법 리스크 대응 차원으로 설립돼 초대 위원장으로 대법관을 위촉한 부분 등이 삼성의 준법경영 감독 외부기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와 유사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재판에서 감경받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삼성이 전략적으로 설립한 기구임을 감안하면 카카오의 설립 목적도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도 카카오가 내부 시스템의 부재를 보완하기 위해 준신위를 설립했다는 부분이 법원의 영장기각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법조계 시각은 조금 다르다. ‘삼성 준감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법조인은 “ 현재 삼성 준감위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적극적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반해 카카오 준신위는 아직 자리가 잡힌 상황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단순 설립에 그치지 않고 지난 몇 개월 동안 준신위가 빠르게 자리를 잡아 성과까지 보였다면 상황이 조금은 달라졌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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