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옛날이여~ 여의도 증권가 합성. 증권사들이 소액채권 할인율을 담합한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19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는 등 수난을 겪고 있다. 이종현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20개 증권사가 소액채권 할인율을 담합했다며 19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이 가운데 6개 증권사는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아파트나 자동차를 사면 국민주택채권 등의 각종 채권을 사게 되는데, 일반 개인들은 이 채권을 보유해 돈을 묶어두기보다는 그냥 은행에다 내다팔아 현금화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증권사들이 은행을 통해 사들이는 값에 문제가 있었다는 게 공정위의 조사결과다.
예를 들어 시가 표준 기준 5억 원짜리 집을 사면 1300만 원어치 국민주택채권을 구입하게 되는데, 이 채권의 이자율은 2.6%라고 치자. 만기까지 연 2.6%의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채권이다. 그런데 매년 2.6% 이자를 받기보다는 차라리 다른 곳에 돈을 굴리는 게 낫다고 생각된다면 이 채권을 팔면 된다. 시장에서 채권을 팔 때는 값을 깎는데 그 정도를 정하는 게 증권사들이 신고한 시장금리의 평균이다. 2.6%짜리 채권의 할인율이 2.7%라면 1300만 원에서 2.7% 깎은 1264만 3000원을 받고 채권을 파는 것이다. 만약 할인율이 2.65%라면 채권 값은 1265만 5500원이 된다.
그런데 증권사들이 신고하는 금리를 서로 짜고, 2.65%면 충분할 할인율을 2.7%로 높여서 부당하게 돈을 챙겼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1300만 원 채권 거래에서 가격 조작으로 1만 2500원을 번 셈인데, 지난해 국민주택채권1종 발행규모는 10조 원에 달한다. 0.05%면 50억 원이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무려 7년여의 세월인 데다, 국민주택채권 외에 도시철도채권 등까지 같은 방식의 거래가 이뤄졌고 2000년대 중반 부동산 열풍으로 주택거래가 급증했던 것을 감안하면 부당이득은 수천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공정위의 계산이다.
이에 대해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정부가 금리 안정을 위해 할인율을 조정하라고 유도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그걸 담합으로 몰고 있으니 억울한 측면이 있다”면서 “그래도 어쨌든 정부 조치가 내려진 만큼 일단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그런데 이 같은 소액채권으로 얻은 증권사 수익은 다른 채권 관련 사업부문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경제가 안 좋으면 주식시장도 나빠 거래가 줄기 마련인데, 그럴 때도 증권사들이 돈을 버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이 저금리 정책을 쓰고, 이에 따라 채권금리가 떨어지면서 증권사들의 채권 관련 수익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채권은 금리가 떨어질수록 할인율이 낮아져 보유자들에게 유리하게 된다.
증권사들은 일반 고객에게는 주식투자를 권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주식보다는 채권, 특히 정부가 발행하는 국고채를 더 선호한다. 주식은 위험하고, 채권은 안전하기 때문이다. 달리 보면 증권사 스스로도 주식투자에는 자신이 없는 셈이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주식은 위험자산이라 정부의 자본건전성 기준을 훼손시키는 측면이 있는 반면 채권은 안전자산으로 분류돼 자본건전성을 지키면서도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사들이 이처럼 채권에 매달리는 데는 또 다른 숨은 이유가 있다. 오랜 기간 증권사들에게 특혜처럼 주어진 ‘콜(Call) 자금’ 사용권 때문이다. 콜 자금이란 은행들이 단기자금이 필요할 때 하루짜리로 돈을 빌릴 때 적용되는 금리다. 신용도 높은 은행들이 거래주체이고, 단 하루짜리여서 돈 떼일 걱정도 없다 보니 모든 시장 금리의 기준이 된다. 돈을 빌려 쓸 때는 빌려 쓰는 기간이 길수록 이자도 더 쳐주는 게 시장의 원리다. 증권사들은 이처럼 싼 콜 자금을 이용해 손쉽게 돈벌이를 해왔다.
예를 들어 하루 만기인 콜금리는 연 3.5%고 3년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4%라고 치자. 증권사는 1년 내내 매일 하루짜리 자금을 만기 연장하는 방식으로 콜 자금을 빌려온다. 이렇게 1조 원을 빌려온다면 연간 나가는 이자는 3.5%, 350억 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렇게 빌린 1조 원으로 국고채에 투자하면 1년에 이자로만 450억 원을 벌 수 있다. 가만히 앉아서 100억 원을 버는 셈이다. 콜금리가 떨어져서 시세차익까지 발생한다면 차익은 더 늘어난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두 가지다. 먼저 하루짜리 자금으로 3년짜리 투자처에 돈을 넣어 둘 경우의 위험이다. 시장에 별 일 없다면 괜찮을 수도 있지만, 갑자기 금융시장에 큰 사건이 터져서 콜 자금을 빌려준 곳에서 자금을 회수한다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만기가 남은 채권을 하루 만에 팔아서 갚을 돈을 마련해야 하는데 급하게 팔다 보면 잘 안 팔릴 수도 있고, 설령 팔린다고 해도 제 값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나마 증권사 한 곳에서 채권을 급히 판다면 시장이 이를 흡수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 증권사가 동시에 채권을 급매한다면 채권금리(할인율)가 급등할 수 있다. 채권 값 하락으로 해당 증권사는 당연히 큰 손실을 보게 되고, 시중금리 상승에 따라 돈을 빌려 쓰는 서민들의 이자부담도 높아질 수 있다. 이를 ‘만기불일치’라고 하는데,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금리급등과 증권사 줄도산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증권사들이 단기 콜 자금으로 중장기채권에 투자하는 것을 엄격히 감독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이 같은 증권사들의 콜 자금 사용이 시장 질서를 왜곡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금융기관이라도 돈을 빌려 쓸 때는 갚을 능력에 따라 이자를 내는 게 당연하다. 이자를 갚을 능력이 뛰어나다면 이자율이 낮아지는 게 당연하고, 이자를 갚을 능력이 부족하다면 위험에 대한 값으로 좀 더 이자를 더 쳐주는 게 맞다. 그런데 증권사들의 콜 차입에서는 이 같은 시장원칙이 깡그리 무시돼왔다. 증권사가 크건 작건, 돈이 많건 적건 똑같은 콜 금리로 돈을 빌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덩치가 크고 신용도가 좋은 증권사라도 이자를 갚을 능력이 정부보다 나을 수는 없다. 즉 국고채에 투자하기 위해 시장에서 돈을 빌릴 경우 이자로 얻는 수익보다는 이자로 내는 비용이 더 커 역마진이 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최근 정부는 증권사 콜차입을 단계적으로 없애고, 각 사별로 신용등급에 맞게 적당한 이자를 주고 돈을 빌리도록 제도를 바꿔가고 있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콜금리와 채권 금리차로 ‘땅 짚고 헤엄치던’ 좋은 시절은 끝난 것이다. 이제는 빌린 돈을 종자 삼아 돈을 벌려면 이자비용보다 더 높은 수익을 내야 한다. 즉 국고채보다 위험한 회사채나 주식에 투자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억울해 할 수도 없다. 이제야 다른 투자자들과 마찬가지로 시장의 룰을 공평하게 적용 받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익명의 전직 증권사 최고경영자는 “사실 증권사 라이선스만 있으면 콜자금을 활용해 무위험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면서 “요즘 시장에 나온 증권사들의 값이 예전처럼 비싸지 않은 것은 증시가 썩 좋지 않은 탓도 있지만 콜 자금을 정부가 규제하겠다고 나선 것도 큰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짭짤한 수익을 안겨주던 채권발행시장도 요즘은 휑하다. 증권사들은 기업들의 채권발행을 주간하고 수수료를 받는데, 최근 경기가 나빠지면서 기업들의 채권발행 여건도 악화됐다. LIG건설 부도사태와, 웅진그룹의 법정관리 등으로 증권사들을 믿고 채권이나 기업어음(CP)에 투자했던 이들이 손실을 보는 사태가 잇따르면서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도 급랭하는 모습이다.
한 증권사 채권발행 부서 관계자는 “시장에서는 안정성 높은 대기업 채권을 선호하지만, 대기업들은 자체 보유 현금이 충분하다 보니 발행에 소극적이다. 반면 사정이 어려운 기업들의 경우 발행에는 적극적이지만 시장에서는 돈 떼일 위험 때문에 투자를 꺼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경기가 좋을 때 채권 발행부서는 가장 많은 인센티브를 챙길 수 있는 부서로 꼽혔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털어놨다.
최열희 언론인
개인 투자자 중개료 쏠쏠~
그런데 일반인들이 채권시장에 직접 접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증권사들이 발행되는 채권물량을 받아와 일정 마진을 떼고 투자자들에게 파는 ‘중개업’이 가능한 이유다. 증권사로서는 시중금리 변동에 따른 투자위험은 투자자들에게 넘기고, 안전하게 중개수수료만 챙길 수 있다. 투자자로서도 채권을 만기까지 가져간다면 대부분 국고채인 만큼 원리금을 모두 지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증권사들이 너무 과도한 수수료를 뗀다는 비난이 일 수 있어 향후 감독당국의 감독방향을 지켜봐야 할 듯하다.
한 채권펀드매니저는 “지금이야 개인 채권투자를 증권사들이 독점적으로 중개하다시피 하지만 채권투자자가 주로 고액자산가고 저금리 기조 정착으로 일반인들의 채권투자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는 채권 관련 집단투자상품이나 사모펀드, 랩어카운트(일임형계좌), ETF(상장지수펀드) 등으로 시장이 다양해지면서 증권사들의 독점적 중개구조에도 변화가 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