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이 지난 가을 이래 부동산값 폭등에 따른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 달, 전국의 집값이 3.1% 상승(국민은행 조사), 16년 만에 월간 상승률 최고를 기록했지만 현재 부동산시장은 매도·매수세가 모두 끊겼다. 제시 가격표만 남았고 매도자도, 매수자도 폭등한 가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망연자실하는 모습인 것이다.
때마침 ‘부동산 거품론’이 등장, 가격 급등의 막차를 탄 서민들의 혼을 쏙 빼놓고 있다. 집 있는 사람이나 집없는 사람 모두 “아파트 값이 터무니없이 올랐다”며 입을 모으지만 ‘부동산 거품론’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아끼고 있다.
“현재 부동산시장은 끝이 보이는 마지막 상승 국면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강남 아파트 값은 삼성전자 같은 대형 우량주보다 4∼5배 정도 비쌀 정도로 거품이 끼어 있습니다.” 스타 펀드매니저 출신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최근 각종 강연회에 나갈 때마다 부동산 거품론을 전파한다.
장 사장은 “국내 대형 우량주의 주가이익비율(PER)은 10배 내외 정도 수준이지만 강남 아파트의 경우 PER이 40∼50배에 이른다”면서 “저금리와 공급 부족에 따른 수급 불안에 부동산 값이 급등하고 있지만 1∼2년 뒤 이 같은 문제가 해결되면 부동산 값은 하락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PER은 주가가 그 회사 1주당 수익의 몇 배가 되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모 기업의 주식가격이 1만 원이고 1주당 수익이 1000원이라면 PER는 10이 된다. 강남아파트의 PER이 40∼50배라는 것은 전·월세를 통한 수익으로 매입 원금을 갚기 위해선 40∼5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장 사장이 흔히 말하는 ‘주식 쟁이’라고 해서 이처럼 과격하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 부동산도 적지 않고, 그의 회사도 부동산신탁(리츠)을 통해 여러 채의 오피스빌딩 임대·매매하고 있어 부동산시장에 대한 감각도 뛰어나다.
정부 고위 관계자의 부동산 거품론 역시 표면상 잘 다듬어졌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무시무시할 정도다. 거품이 곧 터질 수 있으니 단단히 준비하라는 선전포고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부동산 현장 분위기는 당장이라도 거품이 터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는 정부와 딴판이다.
강남권과 강북권 부동산 정서가 동시에 반영되고 있는 서울 강동구. 이 지역 고덕동, 상일동, 명일동은 강남권에 속하면서도 강남·송파보다 가격이 저렴, 강남권 투자자들과 강북권 이주자들이 함께 몰린다. 일반아파트와 재건축아파트도 공존, 서울지역 부동산시장의 풍향계 노릇을 하고 있다.
지난 가을 부동산 값 폭등 후 매도·매수세는 크게 줄었지만 싼 매물이 나오면 즉시 팔리고 있다. 고덕동에 위치한 S공인 관계자는 “재건축아파트인 고덕주공의 경우 시세보다 1000∼2000만 원 싼 매물이 나오면 즉시 팔린다”면서 “거품, 거품 하는데 여기선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세가 4억 6000만 원에 형성된 고덕시영아파트 13평형은 4억 5000만 원에 매물이 나오자마자 주인을 찾아갔다. 지난 여름 3억 원에 거래된 것을 감안하면 몇 달 사이 1억 5000만 원이나 올랐지만 누군가가 후딱 사간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수요자들이 지난 가을, 폭등한 가격을 서서히 인정하기 시작한 것을 보면 수요자들은 아직 거품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며 “최근 아파트값 조정과 전셋값 조정은 지난 가을 매입한 부동산의 잔금을 치르기 위해 매물과 전세를 급히 내놓은 바람에 발생한 일시적 수급불균형 현상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와 같이 부동산 거품론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을 땐 주관적 판단을 배제한 객관적 사항만을 놓고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 원리인 수요·공급을 놓고 보자. 먼저 수요 측면에서 보면, 정부가 최근 1가구 2주택자에 대한 각종 제약을 가하기 시작했다. 투기지역 주택대출을 가구당 1건으로 제한하기로 했고 1가구 2주택자는 신규청약을 원천 봉쇄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즉, 기존에 집이 있는 사람들의 불필요한 수요를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다.
또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주택담보대출 심사에 적용, 무주택자라도 무리하게 은행돈을 빌려 강남권으로 이사 오는 것을 막기로 했다. 그동안 참여정부의 부동산대책 핵심사항이었던 ‘수요억제’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수요 억제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는 게 현지 부동산중개업소의 전언이다.
공급 측면에서 보면 당장 가시적 성과를 기대할 것은 없다. 정부·여당이 내놓은 신도시 대책도 빨라야 2∼3년 후에 입주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대지임대부아파트, 일명 반값아파트와 열린우리당의 환매조건부아파트 역시 내년에 시범실시하기로 한 상태로 대세 흐름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처럼 신규 공급은 당장 어렵지만 기존 주택 매물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말 나온 종합부동산세 고지서를 받아든 다주택 소유자들이 고민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해는 지난해 급등한 집값이 반영, 종부세가 더 크게 올라갈 것으로 예상돼 매물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다주택자 간의 ‘기싸움’이 어떻게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 공급 물량이 달라질 전망이다.
수요·공급측면으로 봤을 땐 가격 급등세는 멈춰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박상언 유엔알 대표는 “강남 등 수도권 지역 매물은 대부분 다주택자의 양도세 급증에 따른 부담감으로 인한 매물로 지난해 말까지 주인을 다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면서 “올 1월 말께면 이사수요와 겹쳐 다시 매수세가 살아나고 집값도 꿈틀거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 문제는 수요·공급이 아닌 심리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외적 변수에 요동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부동산퍼스트 곽창석 전무는 “현재 부동산 시장은 가격 거품이 꺼지든가, 계속 거품을 유지하든가, 둘 중에 하나이지 연착륙할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즉, 부동산 거품 붕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그는 “각종 세금으로 부동산 시장 기능이 망가져 있기 때문에 가격 급등을 잡을 수도 없고 반대로 가격 급락을 막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끝을 알 수 없는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양상”이라고 현 상황의 막막함을 설명했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courag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