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우중 전 대우 회장 | ||
최근 법무부의 태도 또한 김 전 회장의 사면 가능성에 불을 지피고 있다. 김성호 법무장관은 신년사에서 “기업들이 신명 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혀 친 기업 성향을 드러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김 전 회장 사면설이 가장 심도 있게 논의되는 곳은 다름 아닌 정치권이다. 대우 측 인사들은 김 전 회장 사면과 관련해 법조계보다는 정치권에 더 많은 신경을 써 온 것으로 알려진다.
김 전 회장 측 인사들은 그동안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해왔다. 김 전 회장 해외도피 당시 측근인사들은 “(정치권에서) 언제까지 내버려둘 작정인지 모르겠다”고 격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듣기에 따라선 대우그룹의 부도와 김 전 회장의 도피에 대한 책임 중 일부가 정치권에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셈이다.
김대중 정권 당시 국내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들 중 하나로 대우그룹의 몰락을 들 수 있다. 대우그룹이 몰락을 향해 가던 지난 1999년 김 전 회장은 구명을 위해 고위 인사들을 찾아다녔지만 정부 측 인사들은 냉대로 일관했다. 결국 그해 대표이사직 사퇴서를 쓰고 해외로 내몰리면서 그룹 해체를 지켜봐야 했다. 일각에선 김 전 회장이 DJ 측 인사들에 대한 앙금을 가슴 속 깊이 품고 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서인지 김대중 전 대통령과 DJ 정부 실세들이 대선을 앞두고 정계개편의 중요한 축으로 급부상한 점을 김 전 회장 사면 논의와 관련지어 보는 시각도 있다. 지지율에서 한나라당에 크게 밀리고 있는 여권은 대선을 앞두고 무조건 챙겨야할 표밭인 호남권 민심을 다독거리기 위해 DJ 측 인사들의 눈치를 봐야할 입장이다. 김 전 회장의 입에서 DJ 정권 때의 비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나올 경우 이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을 휘젓는 DJ 측 인사들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여권 인사들의 운신의 폭 또한 좁아지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전 회장은 1심에서 징역 10년에 추징금 21조 4484억 원을 선고받았으며 얼마 전 2심에선 징역 8년 6개월에 추징금 17조 9253억 원을 선고받았다. 김 전 회장은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된 상태다. 무게가 만만치 않은 형량과 추징금에도 불구하고 항소를 포기했다는 점을 두고 일각에선 “사면에 대한 물밑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대선 정국을 맞이한 정치권의 선심성 사면논의와 맞물려 김 전 회장의 시선이 재계가 아닌 정치권을 향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