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유치 보고대회에 참석한 박용성 전 두산 회장. 청와대사진기자단 | ||
박 전 회장이 최근 들어 보이고 있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재기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최근 박 회장의 사면·복권 논의가 줄기차게 제기되는 가운데, 두산인프라코어의 등기이사직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의 소지가 되고 있다.
2005년 두산그룹 ‘형제의 난’으로 박용성 전 회장 형제의 횡령과 분식회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박 전 회장과 형제들은 일제히 두산그룹 경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두산그룹은 전문경영인과 사외이사 중심의 경영,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주회사 체계로 바꿀 것을 약속했다.
당시 두산그룹의 박용성 회장과 동생인 박용만 부회장은 경영에서 물러나기로 했고, 대부분의 계열사에 등록된 이사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박용성 전 회장은 두산인프라코어의 등기이사로 등록되어 있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또 박 전 회장의 동생인 박용만 부회장은 여전히 두산인프라코어의 대표이사로 경영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박용만 부회장은 매일 두산그룹 사옥으로 출근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한편 최근 두산중공업에서는 한 직원의 권고사직을 놓고 사측과 노조가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박 전 회장 일가의 거취 문제가 다시 대두되고 있다. 노조 측은 2005년 7월 이른바 두산그룹 ‘형제의 난’ 이후 박용성 전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가 국민 앞에 사죄하고 반성하는 차원에서 경영에서 손을 떼기로 약속해 놓고 아직까지 약속을 지키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박용성 전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은 논란이 가중되던 지난해 10월 19일에야 두산중공업의 등기임원에서 사퇴했다.
두산중공업 인사위원회는 지난 12월 직원 김아무개 씨(38)에 대해 권고사직 결정을 내렸다. 김 씨는 이미 11월 소속 사업부인 주단BG(주조 단조 Business Group)에서 권고사직 결정을 받은 바 있다. 두 번에 걸친 권고사직 결정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두산중공업 노조는 김 씨에 대한 권고사직은 말도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김 씨는 노동조합 인터넷 게시판에 ‘새길벗’이라는 필명으로 사측을 비판하는 글을 3년 전부터 470여 건을 올렸다. 사측은 지난해 1월 김 씨를 경찰에 명예훼손으로 고발했었다. 그러나 내부 직원이 글을 올린 것임을 알고는 고발을 취하했다. 대신 인사위원회를 통해 징계를 내린다며 권고사직 결정을 내린 것.
김 씨는 게시판을 통해 “2005년 하반기 기업경영비리, 사회경제범죄 문제가 터지면서 응당 박용성 전 회장의 퇴진과 구속처벌, 비리척결을 요구하며 투쟁을 벌였고, 그 와중에 조합원이던 나도 치욕스러움에 분식회계, 공금횡령, 비자금 조성을 질타하는 글을 그때그때 언론매체 보도기사를 옮기며 조합원으로서 지극히 평범한 단상과 상식적인 견해를 간단히 덧붙여 지회 게시판에 종종 옮겼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합리적 이성에 기반하지 않은 항변의 목소리들이 정제되지 못한 채 문구나 용어가 다소 거칠고 때로는 격하게 표현된 부분들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재차 미숙함과 불찰을 돌아보며 진지하게 성찰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경영진 스스로 자신들과 회사의 신뢰와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표현이 과격한 것은 반성하지만 회사가 잘못한 원인이 본질이라는 얘기다.
일부 노조원들은 “징계사유에 대한 명확한 내용을 본인에게 제시하지 않았고, 사전예고나 경고절차가 없이 함정을 유도해 중징계를 유도했다. 일정상 지난해 1월에 있었던 일을 지금에 와서 중징계하는 것은 보복성 차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또 “김 씨에 대해 징계를 한다면 박용성 전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비리로 인해 두산중공업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노조와 박 전 회장 사이에 전면적인 맞소송 사태가 올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인 것이다.
▲ 지난 2004 아테네올림픽 유도 경기 사진을 찍는 박 전 회장. | ||
또 “이미 그 전부터 인사위원회 회부를 해왔고, 9월에야 사전심의가 시작된 것으로 갑작스런 보복성 인사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하고 있다.
박용성 전 회장과 형제들은 회삿돈 286억 원을 횡령하고, 2838억 원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해 7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대립각을 세웠던 박용오 전 회장은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박용성 전 회장과 박용만 전 부회장은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된 상태다. 법원이 내린 형벌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박용성-용만 형제가 회삿돈을 횡령한 범죄를 스스로 인정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재계나 정치권 일각에서 벌써부터 박용성 전 회장의 사면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 연말부터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논의가 일면서 전 IOC 위원으로서의 박용성 전 회장의 쓰임새가 필요하지 않냐는 당위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용성 전 회장은 경영 비리로 인해 현재 위원 자격이 정지된 상태지만 국내에서 사면을 받을 경우 IOC 위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대한유도협회장 직을 유지하며 활발히 스포츠 활동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이를 볼 때 스포츠활동 지속→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IOC 위원 자격 복권 논의→사면·복권이라는 시나리오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있다. 또 사면·복권 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 이어 그 여세를 몰아 ‘공식적인 경영 복귀’라는 시나리오도 조심스레 점쳐볼 수 있다.
박씨 형제가 회삿돈 횡령이 밝혀진 뒤 엄청난 비난 속에서 이사직을 사임한 것에 대해 재계에서는 두산그룹을 위기로부터 지키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했었다.
그러나 처음 반성하는 태도와는 달리 두산인프라코어의 등기이사직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부분은 비난을 살 수 있다. 두산중공업의 등기이사직도 지난해 10월에야 사임한 것을 보면 스포츠활동과 사면복권에 이은 경영참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