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사실 확인하러 텔레그램 접속 “피해자 지인 인증하라” 해킹코드 심어 협박·성착취 ‘N차 피해’ 확산
#"네 합성 사진도 올려줄게"
지인의 얼굴에 나체 사진을 합성해 유포하는 이른바 ‘딥페이크 성범죄’가 전국 대학생 채팅방에서 공유돼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피해자와 피해자 지인을 향한 2차 가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 실태가 보도되고 사회적 파장이 커진 이후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의 심층 학습을 뜻하는 딥 러닝(Deep learning)과 가짜라는 뜻의 페이크(Fake)를 합한 것으로 인공지능이 만든 허구의 이미지를 말한다.
8월 29일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딥페이크 대화방(딥페방)에선 피해 사실을 확인하러 온 피해자의 지인을 대상으로 해킹과 협박이 이뤄졌다. 제보에 따르면 A 씨는 8월 25일 밤 자신의 친구가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사실 확인을 위해 텔레그램에 가입했다.
A 씨가 “내 친구가 딥페이크를 당해 들어왔다”고 밝히자 곧바로 2차 가해가 시작됐다. 채팅방 참여자들은 A 씨에게 “피해자의 지인임을 인증하라”며 신상정보를 요구하는가 하면 “어느 학교에 다니는 누구인지 이름을 말하면 합성한 사진을 올려주겠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당시 방에는 8000여 명이 입장해 있었다.
특히 지인능욕 링공방에선 N번방 가해자들의 범행 수법을 답습한 2차 가해도 이뤄졌다. 보안이 철저한 텔레그램의 경우 대화방 운영자가 방 검색을 허용하지 않는 한 입장이 불가능하다. 원하는 방에 들어가기 위해선 그 방의 입장 링크를 알아야 하는데 이렇게 각 방의 링크를 공유하는 곳을 줄여서 ‘링공방’이라고 한다.
링공방 참여자들은 피해 사실을 확인하러 온 여성들에게 “여기는 링공방이라 사진이 없다. 딥페이크방 주소를 알려주겠다”며 입장 링크를 보냈다. 확인 결과, 해당 링크엔 접속과 동시에 사용자의 IP 등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해킹 코드가 심어져 있었다.
이는 과거 N번방 가해자들의 범행 수법과 동일하다. N번방 운영자 문형욱 역시 해킹 코드를 이용해 미성년자들을 성착취한 바 있다. 그는 SNS에 노출 사진을 올린 경험이 있는 미성년자를 범행 대상으로 삼고 접근했다. 이후 경찰을 사칭해 “사진 삭제에 도움을 주겠다”며 해킹 프로그램을 심은 코드를 피해자에게 보냈다. 이 방법으로 피해자의 SNS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얻은 문 씨는 피해자 이름과 주소, 학교 등을 알아낸 뒤 “가족과 학교에 알리겠다”며 성착취를 이어갔다.
딥페이크 가해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피해 사실을 확인하러 온 여성에게 “내가 보낸 링크를 눌렀냐”며 물은 뒤 “그럼 네 전화번호와 IP가 모두 털렸을 것”이라고 협박을 이어갔다. 피해자 실명을 거론하며 “벌벌 떨고 있으려나” “더 강하게 (협박해서) 노예로 만들었어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정말 해킹된 것이 맞느냐”고 거듭 물으며 해당 방을 나가지 못했다.
#“우리가 N번방보다 먼저”
가해자들은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한 주만 지나면 다른 이슈에 묻힌다며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앞서의 링공방 참여자들은 뒤늦게 방에 들어온 여성들에게 “조주빈(박사방 운영자)보다 더 오래된 것이 딥페이크다. N번방이 있기 전부터 이런 방이 몇 개나 있었을 것 같냐”고 했다.
해당 방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S 씨는 “합성 좀 했다고 벌을 받는 것이 법치국가가 맞느냐”며 “딥페이크 봇은 중국과 미국에서 만든 것이라 한국사람 다 잡혀가도 딥페이크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이어 자신도 딥페이크 사진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자와의 일대일 대화에선 돌연 태도를 바꿨다. “정말 처벌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B 씨는 “그렇지 않다. (벌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합성을 여러 번 하다 보니 감각이 없어졌다”고 했다. 앞서 단체 채팅방에서 당당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이든 답하겠다고 했던 B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자와 대화한 내용을 모두 삭제하고 사라졌다.
정부와 여당은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을 강화할 예정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29일 전국의 디지털 성범죄 전담 검사들과 화상회의를 열고 “디지털 성범죄는 ‘사회적 인격살인 범죄’”라며 “딥페이크 영상물 제작·배포 등 디지털 성범죄에 엄정 대응하고 피해자 보호·지원에도 전력을 기울이라”고 지시했다. 같은 날 국회에서 정부와 국민의힘은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긴급 현안 회의를 열고 현행 최대 징역 5년인 ‘허위영상물’ 유포 등 형량을 최대 징역 7년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역시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를 수사 중인 프랑스 당국에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영상물 대응과 관련해 긴급 공조 요청을 보냈다고 밝혔다. 방심위는 특히 이번 사건의 주된 피해자가 미성년자임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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