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무 회장. | ||
다수의 재계 인사들은 광모 씨를 구 회장의 후계자로 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들이 없는 구 회장이 장녀 연경 씨를 경영에 참여시킬 가능성이 재계인사들 사이에 거론된 것을 상기시키는 인사들도 있다.
철저한 장자 경영권 승계 원칙을 지켜온 구 씨 일가는 여성의 경영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해왔다. 구 씨 일가의 이런 가부장적 문화 때문에 연경 씨에 대한 기대감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던 것이다. 몇 해 전 연경 씨가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 사회사업과 대학원 유학에 들어갈 때도 귀국 후 행보에 대한 관심사가 여러 곳에서 표출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2004년 11월 말 구 회장 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아들 광모 씨가 구 회장의 양자가 되면서 연경 씨에 대한 경영 참여 기대 또한 업계 인사들 사이에서 수그러들었다. 양자 입적을 통해 대를 잇겠다는 남성 중심적 문화의 답습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광모 씨 입양 이전까지만 해도 구 씨 일가 내에선 연경 씨의 위상이 더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2003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연경 씨는 (주)LG 지분 0.44%를 갖고 있었던 반면 광모 씨는 절반 수준인 0.27%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광모 씨가 구 회장의 양자가 되고나선 상황이 달라졌다. 200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광모 씨의 (주)LG 지분(2.80%)이 연경 씨(0.84%)를 앞지르기 시작하더니 2006년 12월 31일 광모 씨 지분은 2.85%까지 늘어나 0.86%의 연경 씨를 세 배 이상 앞서게 됐다.
(주)LG의 발행주식 총수(1억 7255만 7131주)와 1월 18일 현재 주가 2만 8950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주)LG 지분 0.01% 늘리는 데 필요한 금액은 5억 원 정도로 볼 수 있다. 광모 씨에 비하면 절반 이하 수준이지만 연경 씨는 지난해 두 달 동안 지분 추가 매집에 10억 원가량을 쏟은 셈이다.
물론 같은 기준으로 따지면 지난 한 해 광모 씨가 지분 매집에 동원한 현금은 25억 원으로 연경 씨의 투자규모를 크게 앞지른다. 그러나 1978년생인 광모 씨나 연경 씨 모두 자체적인 큰 수입원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총수일가의 지분 매집 경위를 묻는 질문에 LG 측은 “그분들이 알아서 자금을 조달했을 것”이라 밝혀왔으나 세인들은 만으로 30세도 되지 않은 총수일가 인사들의 지분 매집 과정엔 반드시 그룹 혹은 총수일가 차원의 지원이 있을 것이라 여겨왔다.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으로 관측된 광모 씨라면 몰라도 여성의 경영참여를 배제해온 LG가에서 연경 씨 지분을 늘리기 위해 불과 두 달 사이 10억 원을 동원했다는 점이 눈길을 끄는 것이다.
구 회장 부인 김영식 씨의 지분 변동 사항도 관심사다. 김 씨는 지난 한 해 동안 (주)지분율을 0.5% 늘려 4.30%까지 끌어올렸다. 광모 씨 지분 증가 못지않게 그룹과 총수일가 차원에서 김영식-구연경 모녀에 대한 지분 관리에 신경을 쓰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법하다. 때 이른 이야기지만 일각에선 김영식 씨 지분이 사후 광모 씨와 연경 씨 중 어디로 가게 될지에 대한 논란마저 야기되고 있다.
▲ 구본무 회장의 장녀 연경 씨의 결혼 사진. | ||
업계 인사들 사이에서 연경 씨에 대한 경영 참여 가능성이 계속해서 화제가 되는 것은 그동안 LG그룹이 보여 온 광모 씨에 대한 언급 때문이기도 하다. LG그룹은 광모 씨에 대해 ‘황태자’니 ‘후계자’니 하는 표현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일요신문>이 ‘구본무 회장의 광모 씨 양자 입양’ 사실을 최초 보도한 2004년 11월 당시 LG 측은 ‘경영권과는 무관한 입양’이라는 입장을 서둘러 밝혔다. LG 관계자는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구본무 회장이 차기 경영권과 관련한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밝혀왔다. 광모 씨를 삼성의 이재용 전무나 현대차의 정의선 사장, 신세계의 정용진 부회장과 같은 케이스로 볼 수 없다는 반박인 셈이다.
광모 씨 양자 입양 이전까지 연경 씨는 재계에서 ‘숨어있는 여성 총수 후보자’란 별칭까지 얻은 바 있다. 연경 씨는 지난해 5월 29일 경기도 곤지암CC에서 블루런벤처스 윤관 사장과 화촉을 밝혔다. 이미 호적상 장자를 둔 구 회장에게 연경 씨 혼사는 개혼이었다. 요즘 세상에 ‘장자 우선 결혼 원칙’ 운운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건만 아들 지상주의가 강했던 LG가의 일이라 그런지 괜한 말들이 있기도 했다. 후계구도에 대한 관심이 일단 광모 씨에게 집중돼 있는 것은 맞지만 재계 인사들은 연경 씨의 향후 행보에 대한 관심의 끈을 좀처럼 놓지 않으려 하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