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희팔 신리스트’가 정국을 달구고 있다. 수사기관 관계자부터 전·현 정권 실세까지 수십 명이 오르내리고 있다. 사진은 사망설이 돌고 있는 ‘사기왕’ 조희팔 씨. |
조씨는 단군 이래 최대 다단계 사기범으로 불릴 정도로 한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전국에 10여 개 피라미드업체를 차리고 의료기기 대여업으로 고수익을 낼 수 있다는 미끼로 지난 2004년부터 5년간 4만여 명이 넘는 투자자를 모아 3조 5000억 원 규모의 돈을 가로챘다. 하지만 조 씨는 경찰 수사가 본격화된 2008년 말 중국으로 밀항했다. 밀항 당시 경찰이 좌표까지 찍어줬다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고, 경찰 고위 간부와 정권 실세들이 그를 비호하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실제로 조 씨 일당이 충남 태안 앞바다를 통해 중국으로 밀항할 때 서산경찰서 등에 5억 원을 건넸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조 씨가 밀항에 성공한 뒤 한동안 잠잠했던 사건은 조 씨 사건을 수사했던 대구경찰청 권 아무개 총경이 조 씨 등으로부터 9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권 총경은 조 씨 일당을 잡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올 1월에 파면됐다. 지난 9월에는 대구지방경찰청 수사과에 근무하면서 조 씨 사건을 담당했던 정 아무개 씨가 직무유기 및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정 씨는 2008년 10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조 씨 등으로부터 수십만 원 상당의 골프와 술 접대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씨 일당은 경찰뿐만 아니라 검찰에도 로비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번 수사의 직접적 계기가 된 김 부장검사의 경우 경찰이 조 씨 은닉자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차명계좌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당시 조 씨 회사의 자금을 관리하던 조 씨의 핵심 측근인 강 아무개 씨로부터 2억 4000만 원을 건네받은 최 아무개 씨 계좌의 실소유주를 찾는 과정에서 김 부장검사의 비리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 밀항 이후 갖가지 소문과 억측이 무성히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은 지난 5월에 “조 씨가 중국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해 또 다른 논란을 부추겼다. 경찰은 당시 “조 씨가 지난해 12월 19일 중국 칭다오 위하이시의 한 호텔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며 장례식 동영상과 사망진단서를 공개했다.
하지만 검찰이 경찰 발표와 배치되는 새로운 사실관계를 확인하면서 경찰은 수세에 몰렸다.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경찰의 ‘조 씨 사망설’ 발표 무렵에 중국 공안과 협조해 공범 강 아무개 씨와 최 아무개 씨를 국내로 압송해 조사했다. 또한 검찰은 “조 씨 사망설이 의심스럽다”며 중국 공안에 조 씨 사망에 대한 확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처럼 조 씨 사건을 놓고 검·경이 경쟁적으로 수사를 진행하면서 수사기관 주변에서는 이른바 ‘조희팔 신 리스트’가 새로운 버전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이 리스트에는 수사기관 관계자들은 물론 중앙부처 공무원, 전·현 정권 실세 등 정·관계 인사 수십 명이 오르내리고 있다. 실제로 김 부장검사 사건을 수사해 온 경찰은 조 씨로부터 돈을 받은 의혹이 있는 공무원 10여 명을 리스트에 올려 놓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공무원들은 주로 인허가 업무를 담당하는 과장급 이하의 지자체 및 중앙부처 공무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에 대한 혐의 사실 및 오고간 돈에 대한 대가성 여부를 다각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검찰 또한 조 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공무원 등에 대한 정황이 포착될 경우 대대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검·경은 특히 현 정권 핵심 실세로 군림했던 일부 거물들이 ‘신 리스트’에 거론되고 있다는 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 씨가 해외로 도피한 이후 수사당국뿐만 아니라 현 정권 실세 등 거물급들이 조 씨를 비호하고 있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돈 바 있다. 실제로 조 씨는 사업 초기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그 측근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사기극을 벌여왔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일부 피해자들에게는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안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조희팔 사건의 진원지인 TK(대구 경북)지역 출신 권력 실세들이 조 씨의 비호세력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정치적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검찰은 현 정권 핵심실세로 통했던 A 씨가 조 씨와 가까운 사이였고, 조 씨가 수사망을 뚫고 밀항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A 씨의 비호가 있었다는 정황을 잡고 은밀히 수사를 진행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A 씨의 중학교 동문이자 대구지역 원로주먹인 J 씨 또한 조 씨 비호세력으로 거론되고 있다. J 씨는 A 씨와 조 씨를 연결시켜 준 장본인으로 알려졌는데 조 씨는 수사당국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J 씨에게 수사무마 등의 용도로 20억 원 상당을 건넨 것으로 전해진다. J 씨에게 건네진 거액이 어떤 용도로 사용됐고, A 씨 등 여권 실세들에게 흘러들어갔는지 여부는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돈의 용도를 놓고 비호세력 간에 갈등이 심각했다는 구체적인 얘기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조희팔 사건의 피해자 모임 관계자들은 “검찰과 경찰뿐 아니라 지자체 및 중앙부처 공무원 등과 함께 고위직 인사들도 여럿 연루돼 있다”며 “‘조희팔 리스트’에서 검경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김 부장검사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검사 라인 중에는 더 윗선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사당국 주변에서는 조 씨 사건과 리스트의 실체가 공개될 경우 검찰과 경찰 모두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을 정도다. 현재 검찰과 경찰이 김 부장검사 사건을 놓고 치열한 수사 주도권 싸움을 펼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검경이 조직의 사활을 걸고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배경에는 검경 수사권 문제 등 두 기관의 해묵은 갈등을 넘어 자기 식구들이 대거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조희팔 신 리스트’ 사건을 선점하기 위한 고육책이 내포돼 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