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남시 벽 속 시신 암매장 사건의 현장검증 모습. 범인은 가방에 넣어두었던 시신에서 악취가 나자 커다란 나무상자에 담아 벽에 넣고 콘크리트를 발라서 마무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
송아무개 씨는 색소폰 연주자로 활동하며 성남시 신흥동의 한 단란주점을 운영해 왔다. 나이가 들면서 가게 운영이 힘에 부치자 그는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팔기로 결정하고 지난 5월 말 김 아무개 씨(여·38)와 동거남 박 아무개 씨(44)에게 주점을 넘겼다. 주점을 판 금액은 4500만 원. 그러나 김 씨는 돈이 부족하다며 2000만 원을 잔금으로 남긴다.
가게를 인계한 뒤에도 주점 무대에서 계속 연주를 하던 송 씨는 김 씨가 계속 잔금을 주지 않자 독촉하기 시작했다. 결국 박 씨는 송 씨에게 자신이 돈을 마련해 주겠다고 말했다.
지난 9월 6일 오후 6시 송 씨와 박 씨는 단란주점에서 둘이 만난다. 박 씨는 잔금 1700만 원을 송 씨에게 넘겨주려 했지만 송 씨는 나머지 돈까지 달라고 요구했다. 둘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고 송 씨는 박 씨의 동거녀인 김 씨에 대해 욕설을 퍼부었다. 이에 격분한 박 씨는 송 씨를 밀어 넘어뜨렸다. 넘어진 송 씨의 목을 밟아 정신을 잃게 한 박 씨는 주방에 있는 호스를 가져다 목을 졸라 살해한다.
박 씨는 송 씨의 시체를 비닐로 싸서 노끈으로 묶고 여행용 가방에 넣었다. 가방은 단란주점의 다용도실에 숨겼다. 다용도실에 시체를 넣어두고도 박 씨는 버젓이 영업을 계속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자 주점 종업원들이 “다용도실에서 악취가 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겁이 난 박 씨는 시신을 더 안전한 장소에 유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혼자 들고 나갈 수도 없어 주점 안에서 장소를 물색했다.
박 씨는 9월 13일 영업시간 전 자신이 직접 만든 나무상자(가로 113cm, 세로 40cm, 높이 80cm)에 시신을 여행용 가방 통째로 넣었다. 못질을 하고 악취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상자의 모서리에 실리콘을 발라 밀봉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다음날 박 씨는 “주점 홀 벽면에서 물이 샌다”며 방수설비업자 우 아무개 씨를 불렀다. 우 씨가 시공을 하기 위해 주점 홀 벽을 뜯어내자 박 씨는 시신이 든 나무상자를 가져와 “이 상자를 벽면에 넣고 콘크리트를 발라 달라”고 요구했다.
우 씨가 “나무상자는 뭐냐”고 묻자 박 씨는 “방습제를 넣은 상자니 그냥 공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공사가 끝난 후 주점의 벽면은 상자 때문에 아래쪽이 불룩 튀어나온 이상한 모양이 됐다.
우 씨는 경찰 조사에서 “박 씨의 지시에 따라 작업했을 뿐 시신이 담긴 상자인지 몰랐다”고 진술했다. 이어 그는 “벽돌을 쌓는데 박 씨가 자꾸 옆에서 방향제를 뿌리면서 ‘냄새 안 나게 신경 많이 써 달라’고 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런 그의 범행이 들통 나게 된 것은 송 씨의 며느리가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부터다. 지방에 살고 있던 송 씨의 아들내외가 지난 10월 10일 “혼자 사는 아버님이 한 달째 연락이 안 된다”며 실종신고를 한 것.
성남수정경찰서 실종수사팀이 확인한 결과 송 씨가 살던 집 주인도 “송 씨의 모습을 한동안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박 씨는 수사에 혼선을 줬다. 송 씨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송 씨의 아들 행세를 하며 단란주점 건물주와 송 씨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실종이 아닌 가출로 보이게 한 것이다.
그러나 실종수사팀은 송 씨 주변을 탐문하던 중 단란주점 인수 잔금 문제로 박 씨, 김 씨와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경찰은 박 씨와 김 씨를 용의선상에 올리고 조사를 진행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관계자는 “지난 6월 송 씨에게 돈을 줬다고 하는 둘의 진술이 엇갈렸다. 그외에도 의심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박 씨의 행적과 휴대전화 통화기록 등을 추적하던 중 송 씨가 사라진 그 무렵 박 씨가 단란주점 내부에 방수공사를 한 사실을 입수했다. 방수공사 과정에서 나무상자를 넣고 공사를 했다는 것도 확인했다.
실종수사팀은 지난 13일 오전 박 씨를 붙잡아 추궁했고, 결국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성남수정경찰서는 박 씨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