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군복무·부친상으로 슬럼프 겪다 극복…“상승세 비결은 아내의 내조”
이상희는 투어 통산 4승, 일본투어 큐스쿨 수석 합격 등의 기록을 갖고 있다. 투어 생활 중 현역 군복무, 부친상으로 흔들리던 시기도 있었다.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나 '제2의 전성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의 올 시즌 1차 목표는 시드 확보였다. 이상희는 "우승으로 확보해놨던 시드가 올해까지였다. 투어 생활을 이어가려면 시드 연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비해 향상된 성적 덕에 이대로라면 시드 확보는 충분해 보인다. 그는 "지난해 어려웠기에 겨울 동안 준비를 많이 했다"며 "지금 정도면 내년 시드는 확보된다. 그래도 우승을 목표로 더 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희는 프로 데뷔 시즌 곧장 우승을 하며 당시 투어 프로 신분 최연소 우승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듬해 일본투어도 수석으로 뚫어냈다. '골프 천재'로 불리던 시절도 이때다. 그는 '운이 좋았다'며 겸손함을 보였다. 스스로를 "어릴 때부터 항상 잘하기만 했던 선수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아버지께서 골프를 워낙 좋아하셨다. 그냥 옆에 따라다니다 스윙도 해보면서 재미를 느꼈다.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태국에도 1년 가까이 다녀오고 했지만 다른 유명한 선수들처럼 우승을 쓸어 담지는 못했다. 초등학교 때는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한 번 해봤다. 중학교 때도 별다른 성적이 없다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우승을 한 번 하더니 골프가 잘됐다. 그때부터 자신감도 생겼는지 성적이 좋았고 처음으로 국가대표 상비군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우승 많이 했다(웃음)."
골프를 하며 아쉬움을 느끼던 순간도 있었다. 그는 "18세 때 미국에서 큐스쿨에 참가했다. 국가대표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려면 특정 대회에 나갔어야 했는데 아버지와 상의해서 미국 큐스쿨을 선택했다. 나름 과감한 선택이었다"면서 "큐스쿨을 통과하지 못했다. 최종 한 타 차이로 떨어졌다. 중간에 한 번 캐디를 봐주신 분이 벌타를 먹은 것이 아쉬웠다. 아깝게 떨어졌기에 너무 속상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프로 입회를 결정했다. 그는 "19세에 국가대표 상비군을 반납하고 프로로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시드전에서 2등으로 통과해서 1부리그에 바로 나갔다"며 "처음엔 성적이 좋지 않았다. 1부투어에서 마지막으로 나설 수 있는 대회에서 극적으로 첫 우승을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선수생활을 이어오던 그에게 제동이 걸린 것은 군복무였다. 아시안게임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수 있었다.
"아버지와 종종 '그때 미국 큐스쿨을 1년 미루고 아시안게임에 도전해봤으면 어땠을까'라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다 지난 일이고 단지 그런 이야기만 했을 뿐 의미 없는 생각이다. 내가 도전한다고 해서 아시안게임에 나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고 나가서 금메달을 땄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군 생활 통해서 얻은 것도 많다고 느낀다."
이상희는 복무 기간 동안 체력이 향상됐다고 자부한다. 그는 "거의 매주 행군을 했다. 당시 지휘관께서 우리를 '정예부대'로 만들고 싶으신 것 같았다(웃음). 강원도 화천에 있는 7사단에서 복무를 했는데 평지가 없어 정말 힘들었다. 나중에서야 월 2회로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군 생활 중 골프선수로서 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가면 골프를 다시 해야 하니까 안에서 어떻게든 골프채라도 잡아보고 싶었다. 골프 동아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제안을 드렸다. 허락은 받았는데 기구 등을 설치하는 절차가 오래 걸렸다. 볼이나 매트 등 다 내가 직접 준비를 하는데 당시가 코로나19가 심할 때였다. 외부 물건을 부대로 들이는 것도 정말 어려웠다. 어설프게나마 인프라를 갖추기까지 1년 가까이 걸렸다. 남은 군 생활 3개월 동안 스윙이라도 좀 해보려고 했는데 만들어 놓으니까 골프에 관심 갖는 병사들이 너무 많아졌다. 주말에는 또 간부들이 알려 달라고 찾아왔다(웃음). 내 연습은 거의 못했다."
군 제대 후 돌아온 투어에서 2022시즌 그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그는 "준우승을 두 번 했다. 그런데 내가 잘 계획한 대로 됐다기보다 뭔가 운이 따르고, 잘 풀려서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군대 갔다 와도 다 할 수 있네'라는 자신감이 들었다"면서도 "쇼트게임 감각은 확실히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병환이 있던 아버지의 건강이 더욱 악화됐다. 2023년 초 그는 아버지와 작별을 했다.
"마음도 불안하고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슬럼프에 빠졌다. 아버지를 곁에서 모셔야 해서 전지훈련도 짧게 갔다 오면서 연습량도 부족했고 체력도 만들어 놓지 못했다. 지난해 성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 시즌 일정이 남았으나 톱10만 4회를 기록했다. KPGA 투어 제네시스 포인트 순위에서 전체 13위를 달리고 있다. 그는 "지난해 부족했기에 이번 시즌을 앞두고선 준비를 많이 했다"면서 "지금 나를 봐주고 계시는 앨런 프로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 지난 시즌을 치르는 중에는 방향을 바꾸기 어려웠다. 올해는 스윙 등에 조금 변화를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또 한 가지 이상희에게 지난 시즌과 크게 달라진 점은 아내의 존재다. 2022년 12월 동갑내기 박혜미 씨와 결혼을 했다. 박 씨는 지난해까지 직장생활을 했으나 올 시즌부터 모든 대회에 이상희와 동행하며 내조에 나서고 있다.
"운전도 해주고 도와주는 부분이 많아서 골프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내가 대회에 나서는 과정을 아내가 바로 옆에서 모두 지켜보면서 골프선수의 생활을 더 이해하게 된 점도 도움이 된다. 아내가 지켜보고 있으니 마음가짐도 다르다."
인터뷰 자리에 동행한 박 씨는 "처음 갤러리로 대회에 갈 땐 '그냥 사진 예쁘게 찍어 줘야지'라는 생각이었다. 응원만 하는 사람에서 도와주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다. 오랜 기간 어머님이 뒷바라지를 해주셨기에 배우는 중이다. 어머님은 정말 노련하시다"라고 전했다.
이상희는 향후 목표로 '우승'을 여러 차례 반복해 말했다. 그는 "목표는 우승이다. 마지막 우승 이후 군생활 포함 6년 정도가 지났다. 작년보다 우승에 가까워졌다고는 생각한다. 최근에는 챔피언조에서 경기를 할 때도 있었다"며 "중요한 순간에 힘을 내서 치고 나갔어야 하는데 압박감을 견뎌내지 못한 것 같다. 이제는 기회가 온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내 박혜미 씨는 "남편이 올해 꼭 우승하길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10월 말 제네시스 챔피언십이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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