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미경 씨(원안) 모녀가 운영하는 유원실업이 최근 이전한 것으로 알려진 롯데그룹 한 계열사 소유의 반포동 건물.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이를 놓고 그동안 사정당국 주변에선 ‘위장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과 같은 의혹이 끊임없이 나돌기도 했다. 그런데 <일요신문> 취재결과 최근 유원실업이 롯데그룹 계열사 소유의 건물로 사무실을 이전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또한 유원실업이 주식회사 형태에서 유한회사로 변경된 사실도 확인됐다.‘롯데 별당마님’으로 불리는 서미경 씨는 1977년 제1회 미스롯데 출신이다. 각종 CF와 TV 등에 출연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서 씨는 1980년대 초 돌연 종적을 감췄다. 그 이유는 몇 년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신격호 회장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신유미 씨를 호적에 올리면서 서 씨 행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그 이후 두문불출하던 서 씨는 2000년 초부터 기업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 씨 모녀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유원실업과 유기개발을 통해서다. 두 회사는 사실상 모기업인 롯데그룹의 든든한 지원 속에 ‘알짜배기’ 회사로 성장했고, 서 씨 모녀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다줬다. 지난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쇼핑이 유원실업에 부당 지원을 해줬다며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서 씨 모녀가 본격적으로 재계에 이름을 알린 것은 롯데그룹 일부 계열사 주주 명부에 오르면서부터다. 이를 놓고 재계에선 “서 씨 모녀가 정식 롯데가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동안 그룹 내에서 언급되는 것조차 금기시됐던 서 씨 모녀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방증하기도 한다. 서 씨 모녀는 롯데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 지분 0.21%를 보유한 대주주다. 흥미로운 점은 서 씨는 기타, 유미 씨는 친·인척으로 분류돼 그룹의 특수 관계인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유미 씨는 롯데 계열 편의점에 삼각 김밥을 납품하는 비상장 계열사인 롯데후레쉬델리카 지분도 9.31% 정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롯데호텔의 ‘고문’직에 올라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서 씨 모녀가 신 회장의 다른 형제들과 어떤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그들도 어엿한 롯데 일가임은 분명하다. 특히 신 회장이 딸인 유미 씨를 각별히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신 회장이 자신의 사후를 대비해 부인과 어린 딸을 챙기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처럼 그룹 내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서 씨 모녀의 경제적 기반이 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유원실업이다. 지난 2002년 설립된 유원실업은 서 씨와 유미 씨가 각각 57.82%와 42.18%의 지분을 갖고 있어 사실상 서 씨 모녀의 개인 회사나 다름없는 곳이다. 서 씨는 친오빠와 함께 유원실업 등기이사에 올라 있다. 유원실업 매출액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통상 극장 수입의 절반가량이 매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작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유원실업의 연 매출액은 적어도 200억대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그런데 얼마 전 유원실업이 사무실을 이전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초 유원실업은 방배동에 위치한 서 씨 명의의 건물에 입주해 있었다.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인 이 건물은 대지 502.6㎡(약 152평)로 시가가 60억 원가량에 달한다.
유원실업이 10년간 사용해오던 이 건물을 떠나 둥지를 옮긴 것은 2012년 9월 초다. 유원실업은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XX빌딩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11월 13일 <일요신문> 취재진이 XX빌딩을 방문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유원실업은 4층에 위치해 있었다. 빌딩 관리인은 “어떤 회사가 입주해 있는지는 모른다”면서 “이곳이 롯데그룹 소유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유원실업이 새롭게 옮긴 빌딩의 소유주는 취재 결과 다름아닌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건설이었다. 이는 유원실업이 롯데그룹과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음을 알려주는 또 다른 방증이기도 하다.
롯데건설이 XX빌딩의 건물과 토지를 구입한 것은 2002년 10월경이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대목은 XX빌딩이 서 씨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XX빌딩 원 소유주는 이 아무개 씨로 서 씨의 지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씨는 서 씨가 신 회장과 만난 직후인 1982년 해당 부지에 대한 권리를 확보했다. 이를 놓고 재계 일각에선 서 씨가 신 회장과 만나는 조건으로 XX빌딩을 얻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서 씨는 1991년부터 이 씨와 함께 XX빌딩에 대한 공동 명의자로 등장한다. 서 씨는 XX빌딩을 담보로 2002년 8억 원가량의 근저당권을 설정하기도 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롯데건설이 2002년 서 씨와 공동 명의자로부터 빌딩을 사들였고, 그 덕분에 서 씨는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면서 “그런데 다시 서 씨 회사가 이 빌딩으로 들어간 것은 해당 건물에 대한 차명 보유 의혹을 제기할 수도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유원실업이 사무실 주소만 바꾼 것은 아니다. 유원실업은 지난 2010년 초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상법상 회사 형태를 변경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한회사는 주식회사에 비해 폐쇄적일 뿐 아니라 주주의 책임이 덜한 형태다. 유원실업과 함께 서 씨 모녀의 개인회사로 분류되는 유기개발 역시 지난해 11월 말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삼일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는 “유한회사는 절세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연말에 이뤄지는 감사 부담도 덜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투명한 경영을 해야 하는 대기업의 계열사가 유한회사로 전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서 씨 모녀와 깊은 관련이 있는 두 회사가 유한회사로 연이어 전환한 배경에는 세간의 시선을 덜기 위한 ‘꼼수’가 내포돼 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특히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유원실업 등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이유로 꼽히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 역시 “서 씨 모녀는 조용하게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데 자꾸 이슈가 되니깐 유한회사로 바꾼 것 아니겠느냐”면서 “(유한회사가)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는 것도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 씨 모녀의 ‘수상한 행보’ 소식을 접한 관계자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으니 음지로 숨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기자가 롯데그룹 홍보실에 유원실업의 사무실 이전 및 유한회사 변경 이유 등을 묻자 홍보실 측은 “유원실업과 관련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며 답변을 피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