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선 후보(오른쪽)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밀담을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최근 경제민주화 공약에서 이견을 보이며 사이가 틀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요신문DB |
경제부처 수장들의 발언들도 시기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나이키 형 흐름을 나타낼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일 <로이터>와 가진 인터뷰에서 “올해 경제성장률은 목표로 잡은 3.3%를 달성하기는 어렵다”면서도 “4분기에는 나이키 로고 형태로 완만하게 반등할 것이다. 또 내년 경제는 4%대에 가깝게 성장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박 장관보다는 시기를 1년 정도 뒤로 봤지만 성장세가 높아질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김 총재는 14일 세종포럼 초청 강연에서 “우리 경제는 내년 상반기까지 완만한 성장세에 머물겠으나 하반기 이후 대외 불확실성이 완화돼 성장률이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주택시장 부진, 가계의 부채상환 부담 등이 제약요인이나 가계의 소득여건이 개선돼 소비증가 폭도 확대될 것으로 본다. 정부의 투자활성화 대책, 세계경제의 회복 움직임 등으로 기업의 설비투자도 나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제부처 수장들의 입에서 경제 성장세가 개선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실제 내부에서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지난 9월에 기재부가 발표하기로 했던 중장기 전략보고서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 박재완 장관 |
한국경제가 고성장기를 벗어난 뒤 경제기획원은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됐다. 그런데 경제기획원이 없어지자 장기적인 경제 청사진 마련이 어려워 중장기 경제정책이 정권 교체 때마다 흔들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장기전략국을 신설하고 성장동력 확보와 같은 국가 중장기 과제를 담은 중장기 전략보고서를 마련한다는 방침이었다.
중장기 전략보고서에는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 기후변화와 에너지, 성장 잠재력, 재정의 지속가능성 등이 골자로 담길 계획이었다. 지금까지 인구와 에너지에 대한 중간보고서가 제출됐지만 성장잠재력과 재정에 대한 내용은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성장 잠재력을 언급하기 위해서는 먼저 앞으로 저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상황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성장 잠재력 확충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7·4·7(7%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강국)로 대표되는 경제발전론으로 당선됐다는 점에서 이러한 성장 잠재력에 대한 언급이 어려워졌다. 7%대 성장은커녕 5년간 연 평균 3%의 저성장에 그친 데다 향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더욱 하락하는 저성장 시대가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던 이명박 정부의 핵심 공약이 실패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당초 9월에 발표하기로 했던 중장기 전략보고서는 재차 발표 시점을 늦추다 아예 중장기 전략보고서라는 이름 자체를 바꾸는 것을 고민 중이다.
해외 경제전문기관들은 한국 경제가 경제 수장들이 이야기하는 ‘나이키 형’ 경제회복은커녕 ‘L’자형 장기침체나 향후 경제성장률이 더욱 떨어지는 저성장 지속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2060년까지 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995∼2011년 연 평균 4.6%였지만 2011∼2030년에는 2.7%로 하락할 것이라고 밝혔다. 2030∼2060년에는 경제성장률이 아예 1.0%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2030∼2060년까지의 성장률 전망치는 OECD 회원국 중에서 룩셈부르크(0.6%)를 제외하면 독일, 폴란드와 함께 최하위에 속한다. 우리나라 성장률이 회복되기는커녕 점차 하락하는 추세로 접어들 것이라고 본 셈이다. OECD는 이러한 성장률 급락의 원인으로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민간경제조사단체인 컨퍼런스보드는 ‘2013년 세계 경제 전망’에서 우리나라의 성장률이 2013∼2018년에 2.4%로 떨어지고, 2019∼2025년에는 1.2%까지 추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OECD보다 우리나라 경제가 더욱 빠르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특히 컨퍼런스보드는 세계 경제침체 지속 등 비관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우리나라 성장률은 2013∼2018년 1.5%로 떨어지고, 2019∼2025년에는 0.5%까지 급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9∼2025년 성장률 전망치는 컨퍼런스보드가 전망치를 내놓은 55개국 중 52번째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이 경제성장은커녕 간신히 제자리걸음 정도를 할 수 있는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이러한 해외기관의 전망은 경제부처를 혼란에 빠뜨리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대선 전략까지 흔들고 있는 양상이다. 박근혜 후보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앞세워 경제민주화 이슈를 야당보다 선점했다. 하지만 최근 경제 성장률이 하락하는 데다 향후 한국 경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커지자 박근혜 후보는 성장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김종인 위원장과의 사이는 틀어졌다.
박근혜 후보와 김종인 위원장 간 불협화음으로 경제민주화 이슈는 점차 새누리당과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경제 위기 상황을 앞세워 성장만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경제 살리기에 실패한 새누리당을 다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뽑아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정부뿐 아니라 박근혜 후보 측이 최근 경제를 놓고 오락가락하는 것은 이러한 모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