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어깨 들썩이게 하는 해학과 풍자의 탈놀이
송파산대놀이는 서울·경기 지방에서 즐겼던 산대도감극(山臺都監劇)의 한 갈래다. 산대도감놀이란 탈을 쓰고 큰길가나 빈터에 만든 무대에서 연행하던 복합적인 구성의 탈놀음을 일컫는다. 춤과 무언극, 덕담과 익살이 어우러진 민중의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놀이는 매년 정월 대보름과 단오·백중·추석에 명절놀이로 공연되었고, 큰 장이 열릴 때면 어김없이 탈놀이패들이 장터를 휘저었다.
송파산대놀이는 200년여 전 송파장이 가장 번성하던 때에 성행하여 오늘날의 놀이 형태로 완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송파에서 탈놀음이 형성되어 발달, 전승된 데에는 상업적 배경이 큰 영향을 끼쳤다. 상인들과 거부들이 장꾼들을 모으고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기부금을 추렴해 놀이판을 후원했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지닌 다른 지방의 유명 연희자들까지 초빙해 산대놀이를 벌이면서 탈판의 규모도 커졌다.
산대놀이가 펼쳐지는 날이면 인근 공터는 축제 마당과 다를 바 없었다. 먼저 탈놀음을 하기 전에 앞놀이로 씨름, 소리판, 땅재주와 같은 민속놀이와 창, 곡예 등이 벌어졌다. 그 뒤에 탈놀이판을 알리고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길놀이가 행해졌다. 송파산대놀이기를 앞세워 악사들이 피리, 징, 장구 등을 연주하며 선두에 서고, 그 뒤에 탈과 의상을 갖춘 연희자들이 행렬을 이뤄 마을을 돌며 공연 장소까지 행진했다. 길놀이는 흥행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잡귀를 쫓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었다고 한다.
송파산대놀이는 탈놀이 열두 마당으로 구성돼 있다. 연희자들이 탈을 배열해 놓고 연희를 무사히 마치도록 고사를 지낸 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된다. 연희 형태는 춤이 주가 되고 시대상을 풍자하는 재담과 창 등 여러 동작으로 이루어진다. 삼현육각(장구, 북, 피리 2, 대금, 해금)으로 음악을 반주하는데 염불 12박, 타령, 굿거리장단 등을 중심으로 자진타령 자진모리, 휘모리장단 등이 쓰인다.
놀이가 시작되면 첫 상좌 역의 연희자가 탈을 쓰고 등장하여 사방에 절을 올리고 둘째 상좌가 나와 함께 춤을 춘다. 송파산대놀이의 첫 마당 상좌놀이다. 이어 옴중(옴이 오른 중)과 먹중(먹장삼을 입은 중)이 등장하여 서로의 얼굴이 못생겼다고 흠을 잡는 내용의 옴중먹중놀이(둘째 마당), 양반들의 못된 행태를 풍자하는 연닢눈끔재기놀이(셋째 마당)가 펼쳐진다.
넷째 마당은 북놀이. 먹중들이 북을 가지고 놀다가 애사당(왜장녀의 딸)을 등장시켜 법고(북)를 치게 한다. 수도자가 여색을 탐하는 것을 풍자하는데 그 대사가 촌철살인이다. “니가 ‘법고’ 친다고 해서 훌러덩 벗고 치는 줄 알았더니 그래 이게 ‘벗고’ 치는 거냐?” 애사당이 북을 연타하다가 북을 들고 있는 먹중의 머리를 북채로 치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수행자들의 게으름을 꼬집는 다섯째 마당 곤장놀이, 부정직한 의술을 비꼬는 여섯째 마당 침놀이 등이 차례로 이어진다. 그런데 모든 마당이 신랄한 현실 풍자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아홉째 마당 취발이놀이에서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열두째 마당 신할애비 신할미 놀이에서는 신할미가 죽자 극락왕생을 비는 굿을 벌이며 살아 있는 자를 위로하는 무속적인 마당이 펼쳐진다.
송파산대놀이의 춤사위는 여타 춤보다 우아하고 섬세한 형식미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염불 거드름춤, 타령 깨끼리춤(깨끼춤), 굿거리 건드렁춤 등 춤의 유형에 따라 40여 종의 춤사위가 세분화되어 펼쳐진다. 연주도 가락이 섬세하고 여타 가면극과 다른 형태를 띠어 춤사위의 멋을 한층 높여준다.
송파산대놀이의 탈들은 주로 바가지와 종이로 만들어진다. 신분과 극중 성격에 따라 눈, 눈썹, 입술 등이 다르게 묘사되는데 투박하지만 소박한 느낌을 자아낸다. 탈 모양은 사실적이지만 요소요소를 과장하여 해학미를 더해준다. 놀이에 쓰이는 탈의 수도, 우리나라 탈놀이 중에서도 가장 많은, 33개에 이른다.
조선 후기에 민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송파산대놀이는 송파진의 성쇠와 명암을 같이했다. 구한말 경인·경부 철도가 부설되어 교통수단이 다양화되고 일제강점기에 다른 상업지들이 발달하여 송파진의 경기가 쇠잔하면서 놀이 문화도 타격을 받게 됐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925년 한강대홍수를 맞아 송파진의 옛 모습이 사라지게 되자 송파산대놀이 또한 쇠락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옛 마을 주민들이 간간이 탈놀음을 하면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던 송파산대놀이는 1973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보호와 전승의 길이 마련됐다. 현재 송파산대놀이는 이병옥 명예 예능보유자와 함완식 보유자를 중심으로 전수 및 공연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자료협조=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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