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29일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의 영결식 후 운구행렬이 한진해운 본사를 빠져나오고 있다. | ||
지난 12월 6일 한진해운은 고 조 회장 지분 일부와 한진해운 주식 일부를 합해 900억 원에 이르는 주식을 출연해 재단법인 양현을 만든다고 발표했다. 11월 26일 조수호 회장 타계 이후 10일 만의 일이다. 재단법인 양현에 대한 출연기금은 고 조 회장 명의의 한진해운 지분 493만 주 중 30% 정도인 164만 주와 한진해운 자사주 164만 주로 조성됐다고 한다.
이로써 고 조수호 회장 명의 한진해운 지분은 현재 4.59%(329만 주)가 남아있는 상태다. 그런데 고 조 회장 미망인 최은영 씨나 장녀 조유경 씨(20), 차녀 조유홍 양(18)은 한진해운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조 회장 타계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한진해운 지분 외 조수호 회장 명의 재산은 ㈜한진 지분 2.23%, 대한항공 지분 1.30% 그리고 서울 성북동 소재 4층 주택(대지 237평, 연건평 214평)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이 집은 별 이변이 없는 한 유족들 명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선 유족이 받거나 앞으로 받을 것이 확실시 되는 조 회장 유산은 성북동 집밖엔 없는 셈이다.
고 조수호 회장은 형인 조양호 한진 회장의 그늘에 가려 있던 인물이지만 그렇다 해도 재벌가의 유족에게 거액의 유산이 전달되지 않을 거라 보는 시각은 드물다. 이렇다보니 재계 인사들은 재단법인 양현에 눈길을 돌리게 된다.
재단법인 양현 설립 신고일은 지난해 12월 18일이다. 한진해운 측은 조 회장 사망 이후 고인의 유지에 따라 장학재단 성격의 공공재단을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고 조 회장은 장기 투병 끝에 타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일각에선 고 조 회장 타계 22일 만인 지난해 12월 18일에 설립 신고 된 재단법인 양현이 조 회장 유족의 재산 상속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에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공공재단으로의 증여는 별도의 상속세가 필요 없다. 재단법인 양현 설립 직후 재단 이사장직은 고 조 회장 미망인 최은영 씨 몫이 됐다. 최 씨가 장악한 재단법인 양현에 고 조 회장 지분이 상속세 없이 증여된 점은 세간의 궁금증을 부풀릴 만한 대목이기도 하다.
재단법인 양현은 설립되자마자 한진해운 지분 3.43%를 확보해 대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한진해운 경영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었던 미망인 최 씨는 양현을 통해 3.43%만큼의 영향력 행사를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재단법인 양현은 증여받은 지분 외에도 얼마 전 목돈을 만지게 됐다. 지난 2월 1일 한진해운이 현금배당을 결정해 대주주인 양현도 배당금을 받게 된 것이다. 이번 배당에서 주당 배당액은 1000원이다. 246만 주(3.43%)를 가진 양현은 이번 배당으로 24억 6000만 원을 챙기게 된 셈이다. 한편 한진해운 측은 조 회장이 생전에 해운업에 10년 이상 종사하면서 생전에 해운물류산업 활성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유지에 따라 재단법인 양현 설립이 이뤄졌다고 밝혀왔다.
▲ 한진해운 지분구조상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은 우호지분이 10.58%에 이르는 조양호 회장이다. | ||
정석기업 주식을 둘러싼 조양호(장남)-조수호(3남) 회장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2남)-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4남)의 분쟁이 일단락된 이후 한진중공업과 메리츠금융은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지분을 거의 대부분 처분했다. 그러나 고 조수호 회장의 한진해운은 아직 대한항공과 분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한진해운 지분구조상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은 조양호 회장이다. 대한항공이 6.25%, 대한항공 계열인 한국공항이 4.33%를 보유해 조양호 회장 우호지분이 10.58%에 이른다. 고 조수호 회장이 한진해운의 대표자격인 역할을 해왔지만 장기투병 등의 이유로 실질적 경영은 박정원 사장이 담당해왔다.
한진해운에 대해 지난해 말부터 칼 아이칸 등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 합병 위험이 거론되기도 했다. 한진해운 측은 부인해왔지만 만약 외부의 인수 합병 시도가 있게 되면 조양호 회장 측이 백기사로 나설 수밖에 없다. 조양호 회장 측이 추가 지분 매입을 하게 되면 외부의 경영권 침공은 막아낼지 몰라도 조수호 회장 유족이 한진해운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그만큼 줄어들 게 되는 셈이다.
고 조 회장 명의의 지분이 미망인 최 씨 혹은 재단법인 양현에 증여된다면 그만큼 최 씨 측의 한진해운 경영에 대한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 그런데 최 씨가 롯데그룹 집안의 자손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 씨는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넷째 여동생인 신정숙 씨의 딸이다.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에 대해 범 현대가 인사들 사이에서 ‘정 씨 기업이 아닌 현 씨 기업이 돼 간다’는 이른바 정통성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일부 재계 인사들은 한진가(家) 장남 조양호 회장이 롯데가(家) 후손인 최 씨 측에 고 조수호 회장 명의 잔여지분이 넘어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 것이란 지적을 하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서 조수호 회장 유산인 한진해운 지분 4.59%의 추후 처리방향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일반인의 상식선상에서 보자면 당연히 유족에게 증여될 지분이 아직 조수호 회장 타계 이후 두 달가량이 지난 현재까지 고 조 회장 명의로 남아있다.
대한항공이 1월 23일 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조양호 회장의 ㈜한진 대주주 명부에 아직 고 조수호 회장(2.23%) 이름이 남아있다. 지난해 12월 22일 현재 고 조수호 회장은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지분 1.30%도 보유하고 있다. 이 지분들이 미망인 최 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법인 양현에 증여되느냐, 혹은 조양호 회장 우호지분으로 흡수되느냐에 따라 경영권 판도가 바뀔 수도 있는 셈이다.
고 조 회장 명의 지분이 경영권 변수만을 지닌 것은 아니다. 고 조수호 회장 명의 한진해운 지분 4.59%(329만 주)를 2월 1일 종가 2만 7950원으로 환산하면 920억 원에 이른다. ㈜한진 지분 2.23%(26만 주)는 2월 1일 종가 2만 7100원 기준으로 70억 원, 대한항공 지분 1.30%(93만 주)는 2월 1일 종가 3만 2950원 기준으로 306억 원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닌다. 총 1300억 원에 해당하는 고 조 회장 명의 지분이 누구의 품에 안길 것인가에 대한 입방아가 재계 호사들 사이에서 당분간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