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일각에선 ‘검사장급 승진 후보자들에 대한 계좌추적이 이뤄질 것’이란 이야기도 들려온다. 검사장급 인사가 관례보다 낮은 기수 위주로 이뤄져 선배 기수들이 옷을 벗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란 관측도 있다.
검찰 인사철에 나도는 주된 소문들 중 외압설을 빼놓을 수 없다. 청와대나 정치권 그리고 권력기관의 이해관계와 당시 정치상황에 따라 특정 지역 출신에 대한 승진 외압 소문이 심심치 않게 나돌던 전례가 있는 까닭에서다.
그런데 이번 인사를 앞두고 검찰청사 안팎에 주목할 만한(?) 외압설이 등장했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삼성그룹이 검찰 고위직 인사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호화 법무진용을 갖춰 한때 ‘삼성공화국’론을 낳기도 했던 삼성그룹의 입김이 주요 검사장급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검찰청사 안팎에 포진한 여러 인사들의 시선이 쏠리는 중이다.
검찰 인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문은 검사장급일 것이다. 이번 인사를 앞두고 특정 지검의 검사장급 인사에 대한 하마평이 검찰 안팎의 최대 이슈로 등장한 상태다. 해당 검사장급 승진대상으로 거론되는 유력 후보군은 A 씨와 B 씨 두 사람으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A 씨가 B 씨의 사법연수원 1년 선배로 두 사람 다 여러 지검의 공안부 특수부 등에서 주요 경력을 쌓아왔는데 현재 대검 고위층 사이에선 A 씨를, 법무부 고위층에선 B 씨를 밀어주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검찰청사 안팎의 소문에 따르면 삼성 측에서 A 씨를 달가워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의혹 사건과 관련해 A 씨는 검찰 안팎은 물론 재계에도 이름을 알린 바 있다. A 씨가 에버랜드 담당 검사를 불러 “이건희 회장을 소환하고 빨리 사건을 매듭지어라”고 당부했다는 소문이 지난해 정보 수집 담당자들 사이에 퍼졌던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반면 법무부 고위층이 밀어주는 것으로 검찰 안팎에 알려진 B 씨는 삼성 측이 선호할만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평이다. 최근 김성호 법무장관이 보여준 친 기업성향 행보 때문이다. 지난 2006년 취임사에서 김 장관은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법률적 지원을 하겠다”고 언급한 데 이어 2007년 신년사에선 “기업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한때 ‘청와대가 김 장관의 기업인 사면 및 상법개정안 검토 언급과 관련해 주의를 줬다’는 이야기가 나돌아 청와대와 법무부가 이를 부인하는 일도 있었다. 친 기업 성향을 보인 김 장관의 법무부 조직이 B 씨를 선호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삼성 입장에선 A 씨보다는 B 씨의 검찰 고위직 입성을 반길 수밖에 없는 셈이다.
최근엔 A 씨를 둘러싼 음해설이 검찰 안팎을 드나드는 여러 정보맨들 사이에 퍼진 바 있다. A 씨가 동향 출신 검사를 통해 비자금을 받았다는 이야기나 A 씨가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던 특정 법인의 주식을 받았다는 등 대부분 미확인 소문들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유포되는 것에 대해 A 씨는 물론 A 씨의 우군세력으로 알려진 대검찰청 인사들이 불쾌해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런데 A 씨 관련 소문 유포 배경을 두고 삼성그룹을 미심쩍게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둘 생겨난다는 전언이다. 삼성 수사에 대한 A 씨의 강경 자세를 삼성 측이 부담스러워 할 것이란 전제에서 시작된 추론이다. 이렇다보니 검찰청사 주변에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삼성이 A 씨 대신 B 씨가 해당 검사장직에 입성하도록 힘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돌게 됐다. 극단적 호사가들 사이엔 ‘A 씨 음해 소문 출처가 삼성 인맥일 수도 있을 것’이란 추론마저 등장한 상태다.
이에 대해 검찰·법원 인사들은 “유리한 국면 조성을 위해 삼성이 애는 쓰겠지만 검사장급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는가”라며 언급할 가치도 없다는 반응이다. 삼성 측도 “절대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일축한다.
그러나 재계와 법조계의 일부 인사들은 “검찰·법원 조직에 대한 인맥 관리가 탁월한 삼성의 영향력이 검찰 인사에 미칠 가능성을 전면 배제할 수 있겠는가”라며 여지를 남겨놓는다. 삼성이 법무부 법무과장과 검찰 제1과장을 거쳐 대검 수사기획관을 역임한 이종왕 법무실 고문을 비롯해 법조경력이 화려한 여러 인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보니 그 영향력에 대한 이런저런 추측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의혹 사건 관련 인사들에 대한 선고공판 일정이 계속 미뤄지고 이건희 회장 소환 가능성이 희박해진다는 평가 속에 ‘검찰 조직에 대한 삼성의 영향력을 간과할 수만은 없다’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 검찰 인사와 삼성을 둘러싼 소문의 진위는 곧 이뤄질 검찰 고위직 인사의 뚜껑이 열리고 나서야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