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한때 트렌드였지만 수익성 의문부호…클라우드 사업도 연구개발 집중 단계, 실적 못 내
안랩 최대주주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2012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안랩 이사회 의장에서 사임했다. 이후 안 의원은 안랩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강석균 안랩 대표는 2020년부터 안랩의 실질적인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강 대표는 신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안랩은 2022년 블록체인 사업을 전담할 자회사 ‘안랩블록체인컴퍼니’를 설립했다. 안랩블록체인컴퍼니는 2022년 말 ‘ABC 월렛’을 출시하는 등 본격적인 사업에 나섰다. ABC 월렛은 암호화폐(가상화폐), 대체불가토큰(NFT) 등 디지털 자산의 보관·관리·거래를 지원하는 서비스다. 강석균 대표는 직접 안랩블록체인컴퍼니 대표에 취임해 경영을 맡고 있다.
안랩블록체인컴퍼니는 최근에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5월 웁살라시큐리티와 ‘차세대 가상자산 자금세탁방지(AML) 보안기술 협력을 위한 전략적 제휴협약’을 체결했다. 비슷한 시기 서강대학교와 암표 거래 방지를 위한 ‘NFT 티켓 시스템 기술개발 및 실증을 위한 산학협력’을 맺었다. 지난 6월에는 에그버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문제는 안랩블록체인컴퍼니의 실적이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안랩블록체인컴퍼니는 올해 상반기 매출 1억 950만 원, 순손실 21억 6386만 원을 거뒀다. 사실상 제대로 된 수익 활동이 없는 셈이다.
블록체인은 한때 IT업계 트렌드로 불렸지만 현재는 수익성에 의문부호가 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IT 업체들은 블록체인 사업에서 발을 빼고 있다. KT는 올해 초 NFT 발행·관리 플랫폼 ‘민클’ 서비스를 종료했다. 블록체인을 게임에 적극적으로 접목했던 위메이드도 최근 ‘우나 월렛’ 서비스를 종료했다. 우나 월렛은 디지털 자산을 한데 모아 관리하고 거래할 수 있는 암호화폐 지갑이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블록체인은 제품이 아닌 기술이므로 수익을 위해서는 그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를 개발해야 하는데 이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고, 시행착오도 거쳐야 할 것”이라며 “디지털 자산에 대한 관심도 줄고 최근에는 투자자들의 관심도 예전 같지 않다”라고 말했다.
안랩은 클라우드 사업에도 진출했다. 안랩은 2020년 클라우드 보안 솔루션 ‘안랩CPP’를 출시했다. 또 올해 4월에는 클라우드 전문 기업 클라우드메이트를 150억 원에 인수했다. 안랩은 올해 7월 기존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조직과 클라우드메이트를 통합한 법인 ‘안랩클라우드메이트’를 출범시켰다. 안랩클라우드메이트의 전문 분야는 클라우드 운영관리 서비스(MSP)다. 안랩의 보안 역량과 클라우드메이트의 전문성을 결합한 것이다.
안랩클라우드메이트와 제이슨의 시너지 효과도 노려볼 수 있다. 제이슨은 안랩이 2020년 인수한 인공지능(AI) 기반 보안 스타트업이다. 제이슨은 장애 예측 시스템 ‘제이머신’을 개발한 곳이다. 안랩은 제이슨을 활용해 AI 기반 클라우드 보안 사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안랩클라우드메이트와 제이슨 모두 실적은 좋지 않다. 클라우드메이트는 2022년 매출 60억 원, 순손실 3억 8900만 원을 기록했다. 안랩클라우드메이트는 올해 상반기 매출 19억 원, 순손실 2억 5306만 원을 거뒀다. 실적만 놓고 보면 통합에 따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제이슨 역시 올해 상반기 매출 16억 원, 순손실 6억 4876만 원을 거뒀다. 이들 역시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단계라 당장의 실적은 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사업에 따른 안랩의 투자비용은 늘어나고 있다. 안랩은 연구개발 비용으로 지난해 653억 원을 지출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332억 원을 썼다. 안랩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 비용은 지난해 27.29%에서 올해 상반기 30.34%로 증가했다. 안랩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상반기 65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 36억 원으로 44.84% 감소했다. 안랩은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전반적인 연구개발(R&D) 분야 투자의 지속으로 상반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에 일부 영향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안랩으로서는 보안 사업에만 의존할 수는 없고, 실적 상승을 위해서라도 신사업의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다. 사이버 보안 시장 전망은 나쁘지 않다. 지난 7월 미국 사이버 보안 업체 크라우드스트라이크(CRWD)가 진행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에서 문제가 생기며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우가 셧다운 되는 ‘블루 스크린 오브 데스(BSOD)’ 현상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IT업계는 사이버 보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김승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 사건은 오히려 사이버 보안 필요성을 피부로 체감하게 만든 이벤트라 판단한다”며 “몇 시간 동안의 사이버 오류가 만들어낸 여파가 이 정도임을 감안하면 보안 필요성이 높아질 여지는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경쟁사들은 최근 호실적을 거두고 있다. SK쉴더스, 시큐아이 등 경쟁사는 사이버 보안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SK쉴더스와 시큐아이는 매년 사세를 확장해 매출이 상승하고 있다. SK쉴더스의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 8927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 9624억 원으로 7.82% 늘었고, 같은 기간 시큐아이의 매출은 728억 원에서 802억 원으로 10.25% 증가했다. 반면 안랩의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 1104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 1094억 원으로 0.89% 줄었다.
강석균 대표는 해외 시장 개척에도 적극적이다. 안랩의 매출은 90% 이상이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다. 안랩은 올해 상반기 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SITE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서류상의 문제로 합작법인 설립은 지연되고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협력 관계는 유지하고 있다.
강 대표는 지난 10월 2~3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개최된 글로벌 사이버 보안 포럼 ‘GCF 2024’에도 참여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추진하는 네옴시티 프로젝트에는 IT 기술이 대거 접목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SITE와 안랩의 합작법인도 네옴시티 프로젝트에서 일정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투자 축소 소문이 도는 등 불안 요소가 없지는 않다.
강석균 대표의 임기는 2026년 3월까지다. 사실상 내년이 강 대표가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해인 셈이다. 일요신문은 안랩에 신사업 수익 개선책과 관련해 질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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