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에서 한잔하며 자유롭게 토론·지식 교류…부정적 시선 있지만 호평 속 빠르게 확산
베이징 번화가의 한 술집.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술집 한편에 대학생 무리들이 모여 있었다. 테이블 위엔 술과 안주들이 놓여 있었고, 자리에 앉아있는 학생들은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여느 술집과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또 그렇지 않았다. 이들은 칸트의 비판철학을 얘기하고 있었다.
이 자리는 베이징사범대에 재학 중인 리샤오카이가 주최한 학술대회였다. 그는 “엄연한 학술대회다. 우리는 칸트, 다윈 등 철학의 여러 대가들에 대해 논의했다. 장소만 술집이지 나머지는 학술대회와 똑같았다. 진행자도 있고, 패널도 있다”면서 “참석자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했다. 이날 리샤오카이는 자신의 연구과제인 사상사를 발표한 뒤, 참석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학술집’이라는 용어를 누가 먼저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올 초부터 SNS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고, 이젠 대학생들에겐 익숙한 단어다. 우한의 한 대학생은 “학술집을 이용하려는 학생들에 비해 장소는 아직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대기가 많이 밀려 있는 곳이 많다”면서 “학술집이 새로 생기면 SNS 등을 통해 공유하는 사이트도 있다”고 귀띔했다.
학술집이 가장 많은 곳은 베이징이다. 대학교가 많은 우다오커우, 차오양구, 룽푸쓰 등엔 다양한 형태의 학술집이 있다. 처음엔 술집이었다가 학술집으로 바뀐 곳도 있고, 아예 처음부터 학술집으로 개업한 곳도 있다. 학술집에서 다뤄지는 내용은 역사, 철학, 예술, 컴퓨터, 반도체 등 전 학문을 망라한다.
리샤오카이는 “학술집에서 나와 비슷한 관심이 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많은 깨우침을 얻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학술집이 조금 어수선할 수 있겠지만 학교에서 할 때보다 훨씬 더 허심탄회한 논의가 이뤄질 때가 많다. 미리 등록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학술대회에 참여하는 이들도 간혹 있다”고 덧붙였다.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프로그래머’라는 닉네임으로 우주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는 두 아무개 씨도 종종 학술집에 간다. 두 아무개 씨는 “은은한 조명, 아무렇게나 놓인 좌석, 칵테일 등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든다. 지루한 학술대회보다 훨씬 몰입감이 좋다”면서 “기존의 학술대회보다 참석자들의 참여 분위기가 훨씬 뜨겁다”고 했다.
베이징에서 올해 3월 학술집을 개업한 왕 아무개 씨는 “일반 손님도 받긴 한다. 하지만 콘셉트가 학술집이기 때문에 최대한 그런 분위기를 내기 위한 인테리어를 했다. 음악도 조용한 걸 틀어 놓는다”면서 “손님들 중 절반 이상이 학술과 관련된 사람들이다. 술집 전체가 마치 시끄러운 도서관 같다”고 했다.
베이징 외에도 상하이 시안 선전 광저우 등 주요 도시 대학가에선 학술집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20~30대가 모여드는 장소에서 학술집 간판을 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교수들의 참여율이 높아졌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베이징의 한 대학교수는 “처음엔 그런 곳에서 공부가 되겠느냐고 의심했지만, 직접 몇 번 가보니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았다. 공부를 하는데 장소가 뭐가 그리 중요하겠느냐”고 했다.
물론, 학술집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긴 하다. 여러 방송, 인터넷 등엔 “술을 마시면서 하는 공부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 “학문을 경시하는 태도”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한 핑계” 등과 같은 비판도 많다. 일부는 “장사꾼들의 상술”이라며 학술집을 폄하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교사인 장익비는 학술집 옹호론자다. 그는 “가장 효과가 좋은 학습방법은 마음의 긴장을 이완하고, 편한 자세로 할 때”라면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어떻게 하면 편안한 수업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지 가장 고민한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이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고 능동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이기를 기대한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대학생들이 즐겨 찾는 학술집에 적극 찬성한다”고 했다.
앞서의 대학교수도 “나는 학술집을 ‘아카데미 바’라고 부른다. 모두가 편안한 분위기에서 다양한 토론을 수행하고, 또 여러 관점을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미묘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 학생들에게 좋은 자극을 준다”고 했다. 이어 그는 “학술집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학생들이 서로 어울린다는 것이다. 좋은 사교의 장이 되고 있다”고 했다.
미디어대학 교수인 랑진쑹 역시 학술집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는 지식의 대중화라는 측면에 주목한다. 지식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선 다양한 수단을 모색해야 하는데, 학술집이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랑진쑹은 “아이디어의 교환, 공유는 특정 공간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누구나 어디서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랑진쑹 교수는 “술집에서 강좌를 여는 것은 학습과 여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현대 젊은이들의 새로운 생활 스타일이다. 능동적으로 탐구를 하려는 자세를 높게 산다”고 강조했다. 다만 랑진쑹은 “다만 ‘술집 강의’의 내용이 순수한 개인적 견해인지, 또 체계적인 학문인지를 선별할 수 있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 누군가 중심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면서 “학문이 상업적 홍보의 속임수가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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