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안하는데… FA 계약 후 두문불출하던 홍성흔을 일요신문이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자신의 진가에 대한 평가는 내년 시즌을 마친 후 해달라고 주문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FA 신분으로 팀을 옮긴 게 무슨 죄라도 된다는 말인가. 나를 더 인정해주고,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팀으로 가는 건 FA 선수들의 권리다.
▲그러게 말이다. 만약 이렇게 찾아오시지 않았다면 공식 기자회견 외엔 개별 인터뷰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4년 전 두산에서 롯데로 갔을 때보다 롯데에서 두산으로 돌아가는 데 대한 후폭풍이 더 거센 것 같다.
―협상 과정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 롯데의 25억 원을 거절하고 FA 시장으로 나온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었나.
▲계약기간이었다. 롯데와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구단 관계자분께 부탁드린 부분이 있었다. 계약 내용을 갖고 밀고 당기기 하지 말고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최선의 제안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보통 구단에선 첫 협상 때 가장 낮은 금액을 제시한다. 만날 때마다 수정안을 내놓는 게 대부분이라 이번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구단에서 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계약 내용을 만들었는지 궁금했고, ‘밀당’보다는 처음에 서로 원하는 부분을 공개하고 빨리 협상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롯데에선 첫 협상 때 그런 제안을 해오지 않았던 건가.
▲그렇다. 처음엔 계약기간 2년에 계약금 4억 원, 연봉 4억 원, 옵션이 2억 원으로 총 14억 원을 제시했다. 네 차례 협상 끝에 총액 25억 원이 나온 것이다. 난 금액보다 계약 기간을 4년으로 해달라고 요구했다. 롯데에선 3년까지 조정해주었지만 4년은 도저히 안 된다고 얘기하시더라. 그때 난 서울에서 MBC <붕어빵> 녹화가 있었다. 롯데 측으로부터 4년은 어렵다는 얘기를 들은 시간이 오후 8시쯤 됐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12시까지 전화를 기다렸다. 롯데 측에선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았다.
―계약기간이 4년이었다면 돈의 액수와는 상관없이 롯데와 계약을 했을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
▲3년과 4년의 차이가 나한테 중요했던 이유는 나에 대한 가치를, 내가 선수 생활을 오랫동안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4년 전 두산과의 계약이 결렬되고, 갈 곳 없던 나를 받아준 팀이었고, 롯데에서 정이 들 만큼 들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남고 싶었다. 그런데 계약 기간 때문에 협상이 결렬됐고, 그렇게 해서 11월 16일 밤 12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 두산 시절의 ‘홍포’ 홍성흔. 연합뉴스 |
―두산 외에 다른 구단에선 러브콜이 없었나.
▲있었다. 팀 이름을 말할 수는 없지만 17일 오전에 모 구단의 팀장님이 나한테 전화해선 원하는 액수를 말해달라고 하시더라. 그쪽에서는 내가 원한다면 40억 원도 맞춰 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왜 그쪽과 계약을 하지 않았나.
▲당시엔 두산으로부터 문자밖에 받은 게 없었지만 난 이미 두산으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새벽에 쏟아진 두산 관계자 분들의 문자들을 받고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롯데가 아닌 다른 팀으로 가야 한다면 그래도 친정팀인 두산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팀 관계자분이 40억 원을 거론하셨을 때 아직 계약을 맺진 않았지만 마음에 두고 있는 팀이 있고, 그런 상황에서 두 팀을 놓고 저울질하기는 싫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오히려 그 분이 더 놀라셨다. 몸값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그걸 거절한다면서.
―두산에선 처음부터 계약 기간을 4년으로 제시했던 건가.
▲두산 김태룡 단장님을 만나니까 계약서부터 내미시더라. 돈의 액수보다는 계약기간을 먼저 확인했다. ‘4년’이었다. 그래서 바로 사인했다. 그런데 또 감동한 부분이 있다. 옵션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알아서’ 옵션 조항을 만들었다. 타율, 타점, 홈런 등을 내가 적어서 냈다. 옵션이 없을 경우 자칫 나태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선수가 옵션을 만든 것이다. 김 단장님은 내가 필요한 건 다 쓰라고 했다. 계약금이나 연봉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숫자를 고쳐도 된다고 하셨다. 4년 전의 두산이 아니었다(웃음).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칠 게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몸무게라고. 체중이 100㎏ 정도 나가는데 계약서에는 90㎏으로 돼 있더라(웃음).
―기분 좋았겠다.
▲그냥 감동 그 자체였다. 두산은 내 마음을 샀다. 날 다시 데려가면서 4년 전 못해줬던 부분에 대해 충분히 미안해했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날 이해시키려 했다. 두산 프런트 대부분이 4년 전에 계셨던 분들이다. 지금의 사장님이 당시 단장님이셨고, 지금의 단장님이 당시 부장님이셨다. 마치 오랜만에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다시 만난 기분이 들었다. 두산과 계약을 맺고 나서 롯데 구단 관계자 분들한테 모두 문자를 보냈다. 배재후 단장님을 비롯해 이문한 부장님, 홍보팀장님, 트레이너한테 그동안 감사했다는 문자를 보냈고, 선수들한테도 일일이 문자를 보냈다.
▲ 홍성흔은 롯데 시절 팀의 중심타자였을 뿐 아니라 파이팅 넘치는 더그아웃의 리더였다. 지난해 10월 20일 인천에서 열린 SK와 롯데의 플레이오프 4차전.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두산팬들이 홍성흔 선수의 영입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이유들 중 한 가지가 수비 문제다. 수비가 안 되는 지명타자를 영입하면서 거액의 돈을 들여 데리고 왔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걸 판단하는 건 구단의 몫이 아닌가. 두산에서 나한테 원하는 건 단순한 성적만이 아니다. 선수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파이팅 넘치는 팀이 될 수 있게끔 이끌어 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물론 난 수비가 안 된다. 롯데에서 외야수를 맡아 ‘허당 쇼’를 펼쳐보이기도 했지만 난 지명타자가 전공이다. 야구장에서는 성적으로, 야구장이 아닌 곳에서는 선수들의 리더로 구심점 역할을 하는 선배가 될 것이다. 평소 잘 알고 있는 선수들이라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난 당당하게 두산의 부름을 받고 서울로 가는 것이다. 지명타자한테 왜 수비가 안 되느냐고 묻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내가 이런 일로 비난받는다는 것도 이상하다. 나한테 수비를 원하는 건 감독의 몫이다. 감독이 결정하면 어떤 역할이든 믿고 따를 것이다. 설령 다시 포수를 보라고 해도 말이다.
홍성흔은 두산 팬들에게 2013 시즌이 끝난 뒤 자신의 진가에 대해 평가해주길 바랐다. 지금의 모습이 아닌 ‘두산맨’으로 한 시즌을 마친 뒤 홍성흔이 두산에 필요한 선수인지 아닌지를 얘기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두산과 계약을 하기 전까지 열흘 간 시즌 때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홍성흔은 마지막으로 롯데 팬들에게 이런 인사를 남긴다.
“4년 동안 저한테 많은 응원과 격려 보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롯데에 있는 시간들이 저한테는 행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사는 홍성흔이 되겠습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