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원 차명후원 논란, 박기현 회장 “그런 사실 없어”…선관위, 총선 앞두고 선거 법 위반 행위 400여 건 적발
#후배 명의로 후원…수사 확대 가능성은?
서울 중랑경찰서는 최근 박기현 한국공인노무사회 회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해 수사에 돌입했다. 박기현 회장은 다른 사람 명의로 정치인에 후원금을 전달해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박 회장이 15년 이상 차이 나는 한 후배 노무사에 돈을 입금하며 더불어민주당 소속 A 의원에 후원금을 내도록 한 정황을 파악했다. 박 회장과 후배 노무사의 메시지 기록 및 두 사람의 계좌 입출금 내역도 확인했다.
애초 박 회장은 A 의원에 100만 원을 기부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다 주진 못했다. A 의원 측에서 "100만 원은 액수가 크므로 10만 원만 하라"며 90만 원을 돌려줬기 때문이다. 이에 후배 노무사도 10만 원만 후원하고 박 회장에 90만 원을 재입금했다. 단, 소액의 후원금이라도 현행 정치자금법은 '누구든 타인 명의나 가명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경찰은 위법 여부를 계속 살필 방침이다. 특히 박 회장이 다른 사람에 후원금을 대신 내도록 한 사례가 더 있는지도 조사 대상이다.
경찰은 박 회장이 노무사 직역의 확대 혹은 수호하는 법안이 국회를 원만하게 통과하도록 촉구하고자 이같이 시도했다고 보고 있다. 그가 노무사회 입장 등을 전하기 위해 소관 상임위원회 소속 A 의원 등과 만나기 전에 미리 후원부터 했다고 의심한다. 박 회장이 굳이 다른 사람 명의를 쓴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박 회장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그는 일요신문에 "후원금을 대신 내도록 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후배가 노무사회에서 제도개선 관련 업무를 맡으며 A 의원 후원을 회비로 할지 개인 돈으로 할지 고민하기에 제 돈을 보탰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과적으로 A 의원께서 거절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며 "이후 10만 원만 후원했다고는 하는데, 이마저 제 돈이 아니라 후배가 본인 돈으로 기부했고 저로서는 그 외 유사한 행위를 한 적도 단 한 번도 없다"고 부연했다.
다만 일요신문이 확인한 녹취록에는 다른 정황이 나온다. 후배 노무사가 'A 의원 쪽에서 100만 원은 크다며 10만 원만 하라고 연락이 왔다'고 보고하자, 박 회장은 '더 할 계획이었는데 아쉽다'는 취지로 답한다. 구체적으로 박 회장은 "(A 의원에) 마침 더 보태드리는 쪽으로 논의하고 있었는데 왜 돌려보내주시나, 참, 이건 아무 것도 아닌데"라고 했다. 또 "우리는 A 의원님한테 더 보내드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100만 원으로 되겠나 의원님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A 의원실 관계자는 "누가 후원을 차명으로 했는지 저희로서는 알 수 없다"며 "일반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거액 후원을 받지 않기 때문에 돌려드렸을 듯싶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제22대 4·10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한창이던 2023년 12월 발생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일이지만 박 회장이 노무사회장 당선 취소 위기를 딛고 2024년 3월 협회에 복귀하자 업계에서 뒤늦게 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후배 노무사는 사실을 실토하고, 본인 말고도 연루자가 더 있을 수 있다며 박 회장을 직접 고소했다. 그는 일요신문에 "조사에서 있는 사실을 그대로 소명했다"며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전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차명 후원'은 고전적 수법?
이런 일이 흔하다. 예컨대 서울 강동경찰서는 3월 14일 한 농협지점을 압수수색했다. 이 지역농협 임원들이 일부 직원의 동의도 없이 월급에서 10만 원 상당을 공제하고 지역구에 출마한 의원에 기부해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혐의를 살피기 위해서다. 해당 지역농협은 원래 희망자에 한해 정치 후원금을 모집한다고 공지했으나 정작 지원자가 몇 없자 이렇게 나섰다고 알려졌다. 이 농협 직원들은 후원에 나서야만 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고 증언하지만, 사측은 "강압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정치인에 대한 '차명 후원'은 고전적 수법으로 꼽힌다. 연간 1억 5000만 원인 한도보다 많이 후원하려는 경우, 혹은 후원자와 국회의원 사이의 특수한 관계가 들키거나 불필요한 오해를 부르는 사태를 방지하려 할 때 주로 활용한다. 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2007년 회사 임직원 명의로 국회의원 20명에게 총 9800만 원을 후원한 사례가 가장 유명하다. 그는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창원지방검찰청으로부터 벌금 700만 원의 약식기소 처분을 받았다.
시간이 흐르며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들은 더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당장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경우 사무실을 시세보다 낮게 빌렸다는 의혹 등으로 입건됐다(관련기사 [단독] 입주한 건물이 하필이면…한정애 지역구 사무소 둘러싼 의혹).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도 7억여 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도 부산의 한 아파트 임차를 위해 2억 원을 개인적으로 대여한 배경이 미심쩍다며 시민단체로부터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한편 충북 충주는 돌연 4년 전 의혹이 수면에 떠올라 지역 정가가 매우 시끄러운 상황이다. 이곳 후보로 출마한 김경욱 민주당 후보가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둔 당시 지역의 한 사업가로부터 김 후보에 현금 1000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의혹은 제3자 녹취를 토대로 한 보도로 촉발했다. 이에 대해 김 후보는 "완전한 거짓"이라며, 오히려 경쟁자인 이종배 국민의힘 후보가 지역 6명의 시의원한테 지방선거 공천을 대가로 후원을 받았다고 역공에 나서면서 두 후보의 난타전이 이어지고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선거 때마다 고발 등을 남발하는 실태도 문제지만, 후보자들도 시민 눈높이를 반영해 논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더욱 섬세하게 신경 쓸 필요가 있다"며 "특히 정치자금법은 소액으로도 얽힐 수 있으니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4·10 총선을 앞두고 정치자금법을 포함한 선거 관련 법 위반 행위는 2024년 3월까지만 총 469건이 적발됐다. 중앙선관위는 이 가운데 총 105건을 수사의뢰했고, 364건에 대해서는 경고 등 행정조치를 했다. 중앙선관위는 선거 범죄 신고자에 포상금을 지급한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은밀하게 이뤄지는 금품수수나 기부 행위 등을 근절하려면 내부의 신고·제보가 중요하다"며 "공정한 선거 문화를 위해 불법행위에 대한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지난 3월 31일 현재 전국 경찰에 접수된 선거 관련 수사는 총 638건에 1044명에 달한다. 경찰 관계자는 "정치는 생물이라지만 선거철에는 저마다 처지가 바뀌는 탓인지 옛 선거에서 불거진 사건 접수도 많다"며 "주말에도 조사를 해야 업무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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