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재판장 회의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을 답답한 속으로 지켜본 재계인사가 있을 법하다. 현대차 비자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정 회장은 지난 2월 5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법정구속은 모면했지만 내심 집행유예를 기대했을 법한 정 회장 입장에선 충격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법원이 항소심의 1심 파기율을 줄이겠다고 나섰으니 2심에서나마 집행유예를 바랐을 정 회장의 속이 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정 회장은 최근 재판을 받은 재벌총수들 중 유일하게 동정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 4월 28일 구속 수감돼 6월 28일 보석으로 풀려나기까지 두 달간 옥고를 치르는 동안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의혹 사건과 관련해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해선 소환조차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형평성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박용성 전 회장을 비롯한 두산 총수일가는 회삿돈 286억 원을 횡령하고 2838억 원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1심과 2심에서 모두 집행유예를 받았고 박용성-박용만 형제는 올 초 특별사면까지 받았다. 두산 총수일가 판결 당시엔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비판론이 일어나기도 했다. 옥고는 옥고대로 치르고 1심에선 실형 선고까지 받은 정 회장과는 대조될 수밖에 없었다. 현대차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다른 기업에 비해 크다는 점도 정 회장 동정론을 부추겼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 1심 선고 이후 지난해까지 서울고법 형사4부 부장판사를 지낸 석호철 변호사를 변호인단에 새로 합류시켜 법무진용 강화를 꾀했다. 최근 그룹 조직 재정비를 통해 분위기 쇄신에 나선 현대차 입장에선 항소심 재판장 회의 결과가 달가울 까닭이 없다.
일각에선 법원이 재벌총수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다는 비판론에 대해 대응한 것일 뿐이며 정 회장의 항소심 선고는 집행유예로 결론날 것이라 단정 짓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래저래 다른 재벌총수들에 비해 무거운 벌을 받아오며 항소심을 준비하는 정 회장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